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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민희 Dec 28. 2019

2. 이야기의 힘

소설은 개별자가 타인의 아주 개인적인 맥락을 접하는 통로다. 익숙한 말로 간접 경험. 그러나, 그 의미는 읽는 이의 경험치와 사고의 깊이만큼 달라진다. 그저 나와 다른 삶을 들여다봤다는 감상에서부터 본질적으로 나와 다르지 않은 삶이라는 위로와 연대까지. 이야기의 힘이 작동하는 지점은 여기다. 한 개인의 복잡한 맥락 속 뒤섞인 감정을 그저 화, 슬픔 등의 단어로 납작하게 만들지 않고, 따라서 타인을 함부로 판단할 수도 없게 된다. 한때 몇 백 쪽에 달하는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고서 내가 얻은 건 결말과 진부한 교훈 따위 인가?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이젠 단편 소설의 문장 하나도 무심하게 지나치지 못할 때가 많다. 주인공의 말과 행동 이면의 맥락들을 이해하고, 과거 내 경험에 떠올리기 때문이다. 항상 간단명료한 걸 선호하면서도 혼란과 모순을 품고 사는 내가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 이야기의 힘을 믿는 이유다.



박상영 작가의 단편 소설 '재희'를 읽었습니다. 나와 재희, 두 사람의 우정을 다룬 이 소설은 '모든 아름다움이라고 명명되는 시절이 찰나에 불과하다는 것을 가르쳐준 재희는, 이제 이 곳에 없다.'는 말로 끝을 맺습니다. 예전보다 느슨해진 관계로 끝난 결말을 고려하면 그저 당연한 소리처럼 다가올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야기를 통해 두 사람의 개별적인 맥락을 이해하면 이 문장은 훨씬 아리게  다가옵니다. 80쪽에 불과한 짧은 이야기였지만, 소설을 다 읽고서 먹먹해진 마음을 생각하다 이 글을 썼습니다.


# 놀러와요, 글-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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