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몰라, 인정. 그래서 계속해보려고.
"사람들이 내 미래를 어떻게 알아요, 나도 모르는데."
주수인(이주영)은 똑똑하다. 모르는 걸 모른다고 말하니까. 수인은 모르니까 계속한다. 여자 프로 야구선수는 전례가 없다 해도 자기가 최초가 될 수도 있지 않냐고, "왜 해보지도 않고 안 된다고 하느냐"라고 하면서. 이른 새벽 모래주머니를 두 다리에 찬 채 운동장을 뛰고 손에 피가 날 때까지 공을 던진다.
직구 대신 '너클볼' 훈련도 한다. 남자 선수처럼 빠르고 곧게 던지지 못해도 공을 회전시켜 타자의 밸런스를 무너뜨릴 수 있게. 그러면 "느려도 이길 수" 있으니까. 그렇게 주수인은 이겨나간다. 연습 경기, 프로 선수 선발전 그리고 '넌 안 돼'라고 말하던 주변 세상까지.
수인도 모든 세상 사람처럼 미래에 관해선 무지하다. 누구나 100% 완벽할 게 예측할 수 없는 게 미래다. 하지만 수인처럼 모르는 걸 모른다고 인정하는 사람은 드물다. 사람들은 말로는 미래는 알 수 없다며 궁금해한다. 사주나 타로를 보는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사실은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태풍이 지나가고>의 싱고(요시지와 타이요)처럼.
싱고는 청소년부 야구 선수다. 경기에서 싱고는 배트를 휘두르지 않는다. 볼넷으로 1루에 가기 위해서다. 싱고의 꿈은 야구 선수가 아닌 공무원이다. 자신은 선수가 될 재능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해보지도 않고 어떻게 아느냐는 아빠 료타(아베 히로시)의 질문에 덤덤히 답한다. "안 해봐도 알아."
싱고는 자기 미래를 안다. 알 수가 없는데, 안다고 말하고 노력조차 포기하니 똑똑하지 않다. 주수인과의 차이점이다. 프로 선수가 될지 안 될지 모르는 불확실성이 수인에겐 도전할 수 있는 이유가 됐고 싱고에겐 포기해야 할 이유가 됐다. 이 두 사람은 달리 미래를 만들어갈 것이다. 모른다고 한 만큼 열리고, 안다고 한 만큼 닫힌 미래를.
누군가는 빨리 포기하는 것도 똑똑한 거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영화에서 수인의 엄마(염혜란)가 그랬다. "너랑 같이 운동하는 애들 중에 밥 벌어먹고 살 애들은 이미 정해져 있어." 그걸 수인이만 모른다며 타박한다. "허송세월 안 보내려면 계획을 딱 세워서 움직여야 해"라고도 조언한다. 틀린 말 하나 없다. 부모의 마음이라면 더 이해된다.
하지만 "그게 꼭 정답은 아니"다. 수인은 야구가 어려운 운동인 거 알고, 프로 야구 선수가 못 되면 무얼 할지 계획조차 없다. 오히려 헛똑똑이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구단의 선수가 되고 싶다며 프런트 영입 제안도 마다한다.
그럼에도 수인은 자기 미래를, 모르니까 상상하는 모습대로 만들어가려 애쓴다. 영리하진 못해도 우직한 방법으로 말이다. "느려도 이길 수 있"다는 말은 자기 확신의 언어다. 결국 또는 다행히도 수인은 프로 2군 선수가 된다.
결말에 '영화니까'하고 실망했거나 "느려도 이길 수 있"다는 대사에 너무 오래 걸리면 어떻게 해, 남들처럼 사는 것도 쉽지 않아, 와 같은 말이 마음속에서 치인다면 자문해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내 미래를 안다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
우리가 확신을 가져야 할 것은 뻔히 내다보인다는 미래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것일 테다. 물론 자기 확신이 없을 때도 계속하는 건 우직한 게 아니라 더 헛똑똑이다. 포기할 용기조차 없다는 거니까. 그게 아니라면 이 야구소녀처럼 살아봐도 되지 않을까. 나는 자문자답한다. 답은 예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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