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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민희 Feb 13. 2020

46. 진실한 품위

"품위는 언제나 이겨." 영화 <그린북>의 흑인 피아니스트 돈 셸리의 말. 품위를 지키는 일은 그가 차이에 차별이란 폭력을 휘두르는 세계에서 살아가는 방법이다. 나 역시 그 말을 믿는다.


화가 나면 눈빛이 돌변하고 얼굴은 붉어져 나를 물듯이 달려드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 상대 앞에서 나는 울지 않는다. 그저 쳐다본다. 그러자면 나는 상대의 모습이 개가 짖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다.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함인 건 알고 있다. 그러나 그때 모든 상대의 언어적, 비언어적 표현은 이성을 잃어보였다. 인간으로서 자신과 타인의 마음을 성찰하는 사고가 마비된 상태.


나를 인격으로서 존중하지 않는 상대의 폭력 앞에서 내 대응은 돈 셸리와 같았다. 품위를 지키는 일. 그와 똑같이 행동해서 이기기보다 거리를 두고 싶어진다. 나는 절대 당신처럼 행동하지 않을거야, 라는 다짐과 함께.


품격의 중요성을 온몸으로 느끼고 어릴때부터 학습해온 나는, 덕분에 격한 갈등 상황에서도 조금은 차분한 사람이 됐다. 때론 상처였던 폭력의 순간들이 날 성장시켜줬다고 긍정하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 발성 연습을 위해 녹음한 내 목소리를 듣다가 문득 다른 생각이 들었다. 처음엔 목소리가 내 마음처럼 단단하고 차분한 듯 들렸다. 듣다보니, 그것은 틔여서 나는 소리가 아니라 꾹꾹 삼켜서 내는 낮고 강한 음색이었다. 리플레이하다보니 듣는 내가 답답해질 정도.


순간 내 목울대에 무언가 막힌 느낌이 들었다. 소리를 눌러 말을 삼키듯 목소리를 내다보니 목에 무리가 간 것. 스피치 학원에서도 같은 피드백을 받은 적 있었다. 목울대를 눌러 내는 목소리라 나중에 무리가 올 수도 있다고 했다.


순간 생각했다. 지금껏 지켜온 품위와 그것을 표현하는 수단 중 하나인 목소리가 사실은 내 감정을 억누르고 잠재우며 꾸며내온 것일 수도 있단 것.


나의 노력이 무가치하단 뜻은 아니다. 이제 품위를 버리겠다는 것도 아니다. 꾸밈이 진심이 될 수 있는 시간을 인내하되, 나 자신이 자연스러울 수 있는 무기는 챙겨두잔 생각. 진실한 품위를 위해서.


# 놀러와요, 글-놀이터!

https://room-alon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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