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를 갈아 넣었어요. 오늘 밤에는 발 뻗고 잠들겠네요.'
담당자에게 파일을 전송하면서 덧붙인 메시지다. 스스로 생각해도 표현이 원색적이고 세다. 그러나 이 일을 임하는 자세가 그러했고 이 일을 끝내는 시점에서 뼈에 새길 만한 통찰을 얻기도 했다. 코칭의 강력한 질문 중 하나,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이 주는 유익, 혹은 좋은 일은 무엇일까요?"
내면이 불평 불만으로 그득하거나, 안 좋은 일을 겪고 망연해있는데 이런 질문을 받을 때 처음에는 참 어이가 없었다. 짜증나 죽겠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얻는 유익이 뭐냐라니? 내면에서 반발이 올라왔었다. 나는 지금 타인에 대한 원망과 미움으로 그와 단절할 것을 목적으로 씩씩대고 있다. 내 생각과 결단이 참임을 증명함으로써 이기고 말겠다는 게임을 시작한 참인데 김 빼놓는 질문임이 틀림없다. 확실히 이 질문을 받게 되면 지금껏 누적한 승기의 말머리를 돌려 놓게 된다.
언제가 되든 꼭 큰 일 한 번은 함께 해야겠다고 오래도록 생각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누구보다 진정성이 있고 성실한 친구들인데 현실적으로는 채 꽃을 피우지 못하고 있는 듯해 보여서 안타까웠다. 어쩌면 그들을 통해서 나를 투사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 서로 어려울 때 다독인 시간들을 귀하게 여겨서 꼭 한 번은 영광을 누리게 해주고팠다. 그런데 그들이 나와는 성향도, 일하는 스타일도 달라서 막상 뭔가를 해보려 하면 이것저것 걸림돌이 많았다. 물리적인 장애물도 있었지만 극복하기 힘든 심리적 요인, 세대 차이에서 오는 불협화음도 확실히 있었다. 정서적인 지원이나 심리적 안정감을 주고 받는 관계로는 더없이 좋고 고마운 존재들인데 막상 업무적인 일로써 만들어가려 하면 답답함이 느껴졌다.
모처에서 확실하지는 않으나 급하게 '교육'에 관한 컨셉만이라도 잡아 봐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혼자서 급하게 초안을 보내봤는데 괜찮은 것 같으니 정식으로 형태를 갖추어 제안을 하란다. 선정이 되면 제법 큰 사업이 될 터였다. 어쩌면 내가 꿈꾸던 치유와 사명 복원, 미래통합을 다 아울러 혁신적 문화운동이 되겠다 싶어 의미가 있었다. 진성아카데미를 비롯해 내가 의미를 두고 활동하는 선한 그룹들이 대거 투입될 수 있을 듯하니 내가 드디어 기여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겠다 싶어 가슴도 뛰었다. 다른 한편 저 친구들을 스탭으로 해서 함께 머리를 맞대고 일을 만들어가면 좋겠다 싶어서 일고의 망설임없이 착수에 들어갔다.
그런데 첫 만남조차 쉽지 않았다. 심지어는 줌으로 회의하는 것마저 서로의 시간이 어긋나서 맞추는 게 힘든 상황이었다. 내 머리 속에 컨셉은 대충 짜여졌지만 이를 풀어서 표현해내고 공감을 이끌기 위해선 서로 충분히 얘기를 나누고 정리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았다. 그들은 다른 일을 하고 있어서 전념하기 힘들고 나는 몸과 마음의 피로도가 너무 쌓여서 의욕이 자꾸 꺾이는 상태였다. 이러저러 2차 짧은 보고용 가안을 한 친구가 전담하다시피해서 작성한 후 피드백이 왔다. 대상자부터 대폭 수정해야 하는 상황이라 컨셉, 컨텐츠가 다시 완전히 뒤집히게 되었다. 그 피드백을 전하는 과정에서 서로가 소통이 충분하지 못했다. 결국 작성했던 친구가 사용한 단어 선택과 말투가 문제가 되었다. 감정이 상한 상태에서 향후 일을 어떻게 도모할 것인지에 대해 흐지부지한 채 통화를 끝냈다.
그러고보면 이번 한 번이 아니었다. 일을 하는 과정에서는 거의 패턴처럼 겪은 일이었고 다음에 어떤 식으로 대처하는지도 결과지가 뻔했다. 나는 감정 소모에 대한 피로감이 느껴졌다. 그와 동시에 이전에 치른 일전들에서 해결하지 못했던 억울함이나 속상함이 다 드러나 올라왔다. 그냥 참고 넘어가자 넘어가자 했던 이면엔 관계가 깨지거나 나빠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깊게 자리하고 있었다. 관계의 유지를 위해서 '나'를 돌보지 않았다. 나를 자꾸 외롭게 내버려뒀구나 하는 마음이 올라오면서 이번만큼은 내 경계를 내가 세워야겠구나, 나를 먼저 보호하자는 마음이 섰다.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는 상황도 아니고 선정이 되어야 그 다음일이 진행되는 것이니 내가 알아서 하고 정리가 필요한 부분은 유료 서비스를 받는 한이 있어도 모든 걸 나 혼자 처리하면서 예상될 갈등을 피하는 게 좋겠다, 내 마음을 내가 보호하겠다는 의지가 생겨났다. 일주일 여를 카폐에 출근하지도 않고 이 일에 전념했다. 혼자 조사하고 설계하고 영감을 일깨우며 나만의 속도로 가느라 시간이 많이 필요했지만 온전한 상태로 내 에너지를 보호할 수있었다. 뭔가 윤곽이 잡혀 나가는 중, 월요일 밤에 기어이 사단이 났다. 긴 호흡으로 몰아치듯 작성한 문서가 일시에 날아가버린 사태가 벌어졌다. 한 밤중에 혼자서 외롭고 속상해서 몇 시간을 펑펑 울었다.
다양한 층위의 감정들이 올라와서 감당이 안될 정도로 오열을 쏟았다. 씩씩한 척 하느라 뒤집어썼던 가면들이 일시에 허물을 벗어나갔다. 못된 소가지를 감추었을 뿐, 내 내면에 다양한 층위의 원망이나 부정적인 감정들이 똬리를 틀고 있다가 봇물이 터진 셈이었다. 관련되었던 일련의 시간들, 관계에서 오는 불균형적 상태, 사랑의 힘이 아닌 괴물의 위력이 되어버린 횡포 등 혼란의 회오리에서 지독한 외로움과 소외를 느꼈다. 미해결된 감정의 과제들이 연쇄적으로 나쁜 일을 만드는 거라고 믿기 시작했으며 그 게임에서 지지 않으려고 그 왜곡된 신념을 뒷받침할 증거들을 어느새 수집하고 있는 독기어린 내가 있었다.
Q. 이 게임에서 이긴다고 내가 얻는 유익은 뭘까? 나는 왜 이 게임을 하고 있나?
A. 호흡부터 가다듬었다. 설사 그렇건 그렇지 않건 내가 이것에 집착한 마음과 게임을 벌여서 무엇을 얻으려는 것이었을까? 천천히 들숨과 날숨을 잘 옮겨놓으면서 그 어떤 상황에서든 내가 느낀 감정은 옳았다고 수용을 해주기 시작했다. 조금씩 고요가 찾아들었다. 나는 드디어 이 말도 안되는 게임을 더 이상 하지 않겠다는 파기 선언을 하게 되었다. " 나는 더 이상 이 소모적인 게임을 하지 않겠다. 불합리한 증거나 부족한 증거를 끌어모으면서 견고한 성을 쌓는 행위는 망상이다." 나는 새로운 게임을 하기로 재선택을 했다.
"나는 나의 강한 책임감과 순수한 열정으로 결국은 이 일을 시간 내에 해내고 말 것이라는 것을 잘 안다." 라고 게임의 내용을 바꿨다. 다시 나는 이 일을 왜 하고자 했으며, 이 일, 그리고 이 일을 이루기 위한 고난의 과정에서 무엇을 얻었는지를 정리할 필요를 느꼈다. 요즘 코칭의 영역에서 많은 영감을 얻고 있는 폴정의 코칭도서관의 자료들이 생각났다. 그 중 성찰 과정 3P 셀프코칭으로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다.
Q. PRESENCE(현존) : 깨어있는 알아차림으로 나는 현존의 상태에 있는가?
A : 호흡을 가다듬고 이전의 낡은 게임을 파기하고 새로운 게임을 선언했다. 나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여 평온한 상태로 나아간다. 지금 내 마음에는 조용한 시냇물이 흐른다.
Q. POWER(경청과 사랑의 힘) : 참자아(True Self)를 충분히 북돋아 주고 있는가?
A : 모든 게 내 탓이라 비난하지 않고 도망가려는 마음도 그럴 수 있다고 그 두려움을 읽어주었다. 충분히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힘을 내 자신에게 있음을 따듯한 기운으로 북돋았다. 또한 나는 그 어떤 것보다 책임감이라는 좋은 덕성을 가진 사람이라고, 그 힘을 믿으라고 스스로 한껏 지지했다.
Q. PURPOSE(목적) : 나는 이 일을 왜 하고자 했는지 그 목적성과 방향성이 분명한가?
A : 나는 내 개인의 유익도 있지만 미래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교사들에 대해 애정이 있으며 그들이 선구자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내면의 근육을 키워고 성장하여 뉴노멀 시대의 참된 리더들이 되는 문화가 확산되길 진심으로 원한다.
성찰과 기록으로 자신의 상태를 분명히 하고보니 거짓말처럼 고요가 찾아왔다. 화요일부터 나는 무섭게 몰입해서 작성하기 시작했다. 스스로에게 지지받고 충분하게 수용받았다. 또 다른 후원 환경의 사람들이 따듯한 눈빛과 말로 지지해주자 날개를 다는 듯 기억들이 복원되었다. 사랑의 힘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참나를 드러나게 해주는 거구나라는 깊은 체험은 나를 단단하게 세워줬다.
마지막 취약한 부분인 예산을 세우는 일이 남았는데 시간도 촉박하고 문외한 지경이라 난감했다. 그런데 참으로 고맙게도 문서정리를 유료로 도와주기로 한 분이 그 영역까지 커버가 되었다. 게다가 아주 유쾌한 이여서 일을 쉽게 신명나게 알차게 하는 스타일이었다. 막판 스퍼트를 그녀의 도움으로 결국은 완성해낼 수 있었다. 타인을 부리거나 부탁하는 일을 참 어려워한다. 그런 내가 수시로 수정하면서 요청사항을 반영해달라고 부탁할 수 있었으니 참 자유로웠다. 금요일 저녁 8시 파일 전송을 하며 미소로 피날레를 찍었다. 내 손을 떠난 기획서는 이제 그 쓰임 따라 운명이 결정될 테다. 그 이상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을 수 있다.
이 과정은 내게 어떤 유익을 주었을까? 나는 우선 나 자신에게 나를 증명해보였다. '나'라는 존재의 지지와 사랑만으로도 '참나'는 이미 충분했다는 것. 또 그 선한 뜻은 어떤 식으로도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다는 것. 내가 나를 보호하고 자기자비로 사랑하게 될 때 비로소 타인에 대한 여지도 열린다는 것. 일을 도모하는 데 있어서는 과감한 결단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는 것. 그래서 순수한 의도와 목적만이 끝까지 갈 수있는 힘을 가지는 것이라고. 내가 어떤 의식을 품고 행동하느냐에 따라 과정도 결과도 조화를 이루게 될 거란 거.
이 프로젝트가 이번에는 연이 닿지 않아도 이미 충분하다. 이 일련의 시간들 안에서 나는 또 한 뼘 자라나 있음을 절감하고 있으니. 도량이 따로 없음을 다시 배운다. 내 앞에 펼쳐지는 삶과 사람들과의 현존만으로도 이미 충분하다. 사랑을 실천하고 지금 여기의 삶을 사랑하기에......
티치아노 베첼리오의 <시지프스>
신들을 기만하고 장수를 누렸던 시지프스는 죽고 나서 신들의 노여움으로 결국 영원히 벗어나지 못하는 형벌을 받았다. 바위를 굴러 올려 정상까지 이르고 나면 다시 바닥으로 떨어지는 바위를 또 굴려 올려면서 끝없이 '가치가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의 명제를 받아든다. 끊임없이 고난을 헤치며 같은 일을 반복하는 듯한 이 뻔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 카뮈가 부조리한 삶이어도 여전히 살아내야 한다고 믿은 것처럼 삶이라는 무거운 형벌을 그래도 묵묵히 수행하면서 삶이라는 순수한 불꽃을 살아내는 그 자체가 어쩌면 삶의 가치가 아닐까 생각해보게 된다. 일을 수행해내는 과정이 참 지난하고 힘들었지만 그래도 정상을 향해 그래도 걸어간 시지프스의 마음이 되어 그 자체에 의미를 두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