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차 : 사랑의 반창고, SEA

SEA(Support 후원/Encouragement 격려/Accounta

새벽길을 달려 인천에 갔다. 작년에 함께 교육사업을 했던 연수문화재단이 올해 다시 진행할 사업에 대해서 회의를 하고 싶다고 요청이 왔다. 작년에 신중년을 위한 주거문화예술 교육프로그램을 기획, 연구개발, 프로그램 운영까지 하면서 사업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내년에 심화과정을 할 수도 있다는 언질은 있었다. 작년에 코로나19 사태로 여러 어려운 상황이 있었음에도 제법 멋지게 사업을 수행해냈다. 마음앓이가 있었어도 수강생들이나 재단, 또 지원기관인 교육진흥원에서 뜨거운 호응이 있었기에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기관 지원 사업이란 워낙 가변성이 많아서 장담하기 힘들었는데 다시 불러주니 고마운 상황. 가서야 알았다. 작년에 전국에서 5개 문화재단이 선발되었고 시행했으나 우리 재단처럼 해낸 곳이 없었단다. 그래서 심화 사업을 전면적으로 없애려다가 연수문화재단에서는 더없는 희망을 봐서 이곳에서는 심화반을 한 번 꾸려보겠다고 유일하게 지원금이 나왔단다. 물론 지원 규모는 팍 줄어들었어도 유일하게 지속되는 사업이었다. 참 고맙고 다행이었다. 진성리더십, 코칭, 로고 테라피 등을 녹여낸 자아성찰 프로그램으로 10주를 간 거였고 여태껏 전무후무한 실험적 성격이 강했는데 통했다.



재단 직원들은 구세주를 만난 양 격렬하게 반기며 환영했다. 함께 고생하면서 정도 들어서 다시 일한다는 게 서로들 신나했다. 그런데 그들은 컨셉이 도저히 안 잡혀서 시름 중이라면서 이내 울상을 했다. 회의를 하는 동안에 나는 우선은 그들의 고민이라고 생각하는 부분들을 잘 듣고 오늘 회의가 끝나면 어떤 상태가 되면 좋겠는지를 물었다. 당연히 컨셉을 잡고 가안의 계획서가 나오면 좋겠다고 했다. 그렇게 되면 그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물었다. 신중년이라는 대상은 개념이 모호하고 그들의 욕구도 너무도 다중적이어서 감을 못잡겠어서 자꾸 한숨만 나오고 자신들이 한심해 보이고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는 것이다.



의식하지 않았는데 나는 어느새 5R(Refocus/Reality/Relation/Resources/Responsibility)에 따라서 그들의 과제 상황의 초점을 재설정하여 무엇을 바라는지 질문을 던지고, 그들이 처한 현실에서 어떤 장애가 있는지, 선결해야 하는 조건들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또 이 일이 결국 자신들과는 무슨 의미이며 수강자들에게는 어떤 의미였으면 좋겠는지를 나눴다. 하나하나 짚으며 풀어가다 보니 그들은 어느새 이 대화를 즐기고 있었다. 몰입을 하니까 지역에서 끌어들일 수 있는 인재를 떠올리기고 하고 타 사업들과의 변별점을 찾기 위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끝내 자신들이 지금 회의가 끝나면 무엇부터 착수해야 하는지 실행 계획까지 나왔다.


죽을 상을 하고 있던 그들은 어디로 가고 어느덧 하하호호 웃으며 재미난 카피까지 생각해내는 거다. 우리는 코칭적 대화법으로 회의하는 중에 서로의 역량을 더더욱 발견했고 사업의 비전에 대해 한껏 고무되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터져 나와서 전혀 다른 방식으로 파생시킬 수 있는 사업까지 컨셉을 잡을 수 있었다. A안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플랜 B까지 수립하면서 사업 기획 발표회때 예상되는 질문에 대비해서 설득할 근거들을 준비하게 되었다. 다들 만족스러운 회의 결과로 웃음꽃이 활짝 폈다.


직원 중 한 명이 다른 직원들과 문화살롱에 오는 지역의 방문자들을 위해서 준비했다는 포춘 카드를 나더러도 집으라고 했다. 하나 하나 접으면서 구성원들을 한번씩은 떠올렸을 그 정성과 사랑이 이뻐서 나도 눈을 감고 골랐다. 초록의 잔 꽃무늬가 새겨진 볼이 나왔다. 조심스레 개봉해보니 안에 가늘고 길다란 포춘 카드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2021년 당신에게는 대인운이 찾아왔습니다. 참으로 귀한 사람이 당신과 함께 당신의 고민을 해결해주고 길을 열어줄 것입니다.” 순간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 이미 내게는 그런 귀인들이 한 명도 아니고 여러 명이 나를 에워싸고 후원환경을 만들고 있지 싶어지면서 가슴이 따듯해 왔다. 아닌게 아니라 이들조차 어떻게든 내가 기여해주려고 마음을 썼다. 작년에 계산 잘못해서 내 강사료로 부족분을 메운 일이 있었다.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그들이 일착으로 회계 업무나 잡다한 일에서 나를 해방시켜 주었다. 요청하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마음을 내는 일은 우러나와야지 할 수 있는 선의이기에 기분이 좋았다. 내가 사랑받고 대우받는 느낌이 들었다.



점심을 먹으러 가서 자연스레 A의 자녀 얘기가 나왔다. 초등학교 입학을 했는데 아침마다 학교를 가지 않으려고 울어서 힘들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할 때 어떻게 하느냐고 되물었다.


“ 효준아, 엄마도 일하러 가기 힘들 때도 있지만 꾹 참고 가잖아. 효준이도 참고 가면 괜찮아질 거야. 학교는 가야 되잖아” 라고 설득을 한다는 요지의 말을 했다. 자신은 큰 소리도 안 내고 잘 말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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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 학교를 안 가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요?

A1. 학교 안 가도 괜찮아요. 전 애에게 바라는 욕심 크게 없어요.


Q2. 효준이가 울 때 말로써 설득하는 일 외에 다른 어떤 행동을 할 수 있을까요?

A2. 아, 생각 안 해봤는데, 안고 토닥일 수가 있겠네요.


Q3. 또 어떤 제스처 혹은 행동을 할 수 있을까요?

A3. 잠시 안아주고 진정시키고 왜 가기 싫은지 물어줄 수 있을 것 같아요.


Q4. 왜 지금 말씀하신 방법들을 왜 써보지 않았나요?

A4. 제가 출근을 해야 하는데 지체되는 것에 조바심이 났고, 반복적으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들에 대해 짜증도 났네요. 아, 갑자기 너무 미안해져요.


Q5. 어떤 마음이 드나요?

A5. 제가 아이의 마음은 전혀 돌보지 않았구나 싶어서 죄책감이 들어요. 그러고 보니 효준이가 4살 때 유치원에서 애들에게 학대당한 적이 있어요. 그때 아이가 많이 불안해했고 그때부터 많이 예민해졌어요.


Q6. 지금 눈이 빨개지셨어요. 어떤 마음인 거에요?

A6. 애가 힘들었을 것을 짐작조차 못한 내가 ......


Q7. 지금 자신의 잘못인 듯해서 마음이 아프세요?

A7. 네, 아 제가 문제였네요. 제가 잘못한 거에요.


Q8. 효준이는 엄마에게 이유도 말하지 못하면서 엄마가 어떻게 해주길 바랐을까요?

A8. 자기 편이 되어주길 바랬을 것 같아요. 외로움을 느꼈을 것 같아요.


Q9. 샘은 이전에 8살짜리 엄마 되어 본 적 있나요?

A9. 아니요. 아이 하나밖에 없어서 저도 처음 맞는 일이죠.


Q10. 무엇을 알아차리셨나요?

A10. 저도 효준이도 모르는 것지, 잘못한 건 없어요.


Q11. 알아차리고 나니 어떠신가요?

A11. 아. 학교 가기 싫다고 하면 이제 그냥 일단 아무 말없이 안아줘야겠어요.


Q12. 그리고는요?

A12. 학교 정말 못 가겠다고 하면 안 보낼 생각도 하면 될 거 같아요.


Q13. 학교 안 가면 큰 일 나는 거 아닌가요?

A.14. 무슨 큰 일이 나겠어요? 우리 효준이에게 엄마가 자기를 지지하고 있다는 안심을 주는 일이 제일 급할 듯해요. 아니, 그거면 다에요.


Q15. 그걸 뭐라고 이름붙이면 좋을까요? 어떤 가치 때문에 그런 마음이 올라오나요?

A15. 아, 사랑이요. 제가 아이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를 아이에게 느끼게 하는 거요.


Q16. 그럼 정리해서 한 번 말씀해보실래요?

A16. 아이는 어쩌면 어렸을 때 있었던 일들에 대한 불안감을 잊지 않았을 수 있고 그 아픔에서 걸어나올 준비가 안 되어 있을 수 있어요. 그래서 제가 기다려줘야 하고 언제나 너를 사랑한다는 마음을 느낄 수 있도록만 하면 될 것 같아요. 저는 몇 년 전, 한 해동안 한 달씩 간격을 두고 제가 제일 사랑하던 아버지를 여의고, 한 달 후 오빠, 또 한 달 후 외할아버지, 또 한 달 후 외할머니를 보내드렸어요. 그런데 우리 효준이도 그 과정을 다 봤거든요. 어쩌면 그 아이에게도 자기를 예뻐하던 어른들이 하나씩 사라져간 일이 큰 아픔이었을 것 같아요. 저도 그 일들을 겪으면서 다른 일들은 다 사소한 문제로 여겨졌는데 그러네요. 뭐가 중요한데요. 지금 함께 하는 시간에 많이 웃고 사랑하는 일이 중요했어요. 나머지는 아무 것도 아니었네요.



눈시울이 붉어지는 그녀가 더없이 사랑스러워보였다. 그래, 서로 사랑하는 일 외에 이 세상에 더 급하고 필요한 뭐가 있을까? 나는 오늘 내가 참 멋져 보인다. 나를 믿고 좋아하는 한 분을 맘껏 Support 후원해드리고, Encouragement 격려를 아끼지 않았으며 Accountability상호책임을 잊지 않았다. 그녀 역시 내가 그녀에게 보여준 태도에서 자신이 비난받거나 평가받는 것이 아니라 보호받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내 잘못일까봐 겁이 났는데 자신을 따뜻이 안아주기만 하셨다고, 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자기를 위해주셨다고. 그거면 충분하다. 더 이상 뭘. 그녀는 이제 자기가 지지받은 그 느낌 그대로 자신의 아들에게 그런 사랑을 선물하겠지. 그래도 잊지 않고 덧붙였다. 또 똑같은 오류를 반복하게 될 지도 모른다고. 그래도 알아차림의 속도와 정도는 다를 것이고 그렇게 훈련을 하고 시나브로 엄마가 되어 간다고.



SEA(Support 후원/Encouragement 격려/Accountability상호책임)의 파워를 일상에서 수시로 만나고 있음을 깨닫는 지금, 나는 살짝 달뜬 행복감에 젖는다.



박수근의 <모자상>은 15여 년 전, 강원도 양구의 박수근미술관에서 사온 판화본이다. 가족이 함께 여름휴가를 다녀오며 해거름쯤에 들렀다. 뉘엿뉘엿 넘어가는 해를 등지고 앉아 망연히 너머를 바라보고 있는 박수근의 조각상과 한참을 앉아 있었다. 한국여인들의 모성을 특히 사랑하고 그 생명력을 사랑했던 작가의 정서가 깃든 작품들을 사랑한다. 특히 엄마의 모성을 한껏 받고 자란 나는 영원토록 그 사랑 안에 머물러 있다. 온전한 사랑이 무엇인지 체험하게 해줬던 엄마, 나는 내 엄마의 그런 성정과 헌신을 닮진 못했어도 그 느낌만은 공유할 수 있었던 이생에 감사한다. 사랑 그 자체로 살고 싶다 누군가 단 한 사람에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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