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노동자들의 삶을 죽음으로 대변한 이한빛PD를 추모하는 엄마의 육성
전태일은 청계천 봉제 노동자로 일했다. 어린 소녀 동료들의 고통을 차마 모른 체 할 수 없어 피를 토하고 노동 운동을 했다. 어떻게도 깨어지지 않는 사회의 부당함에 항거하며 1970년, 분신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는 사랑하는 자녀의 유지를 이어가느라 노동자들의 어머니로 살았다. 그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악령들은 여전히 활개를 치고 다닌다. 고통받는 이웃의 십자가를 대신 진 순수한 영혼들의 넋을 앗아간다. 전태일이 소환된 듯한 기시감, 46년이 더 지나 서울 ‘이한빛’이라는 영혼이 맑은 청년이 있었다. 집에서도 다정다감하고 모범적인 삶을 살았던 청년. 청년은 2016년 서울대를 나오고 CJ E&M(TVN)에 입사했다. 제법 인기를 끌던 프로그램 ‘혼술남녀’의 조연출로 일하면서 업무 과중과 비정규직 해고 담당 등 부당한 업무 강요, 인격모독 등을 고발하며 생에 작별을 고했다.
‘나의 희망’ 엄마의 핸드폰 안에서는 여전히 반짝이는 한빛, 서울대 다니며 받은 것이 많은 만큼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부담도 크다고, 이기적으로 내 앞가림만 하거나 함부로 살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던 아이. 이런 성정을 가진 그에게 주어진 과다업무 중 하나, tvN의 조연출로 비정규직 스탭들에게 계약금을 되찾아오는 일. 나 살겠다고 타인을 사지로 몰아가는, 세상에서 제일 경멸해마지 않는 일을 수행해야하는 자신이 혐오스럽고 무능하게 여겨졌으리라. 속도전을 강요하고 사람을 수단시하는 경제 동물들이 어린 청년의 혼을 앗아갔다. 이 죄를 어쩔꼬? 이 죄를 어쩔꼬?
“이것은 나의 이야기이지만 나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나는 25년 동안 경주마처럼 긴 트랙을 질주해왔다. 함께 트랙을 질주하는 무수한 친구들을 제치고 넘어뜨린 것을 기뻐하면서. 나를 앞질러 달려가는 친구들 때문에 불안해 하면서......문제는 적응하지 못하는 개인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도 적응할 수 없는 현실의 구조 그 자체에 있다.” - 159쪽 <자하연잠수함> 웹진 5호에 실린 한빛의 글 중에서
2016년 2월 회사에 입사 후 첫 월급을 부모님께 선물로 드리고 그 다음부터 적금을 들기로 한 아이가 몇 달이 지나도록 여전히 이행하지 않았다. 알고 보니 세월호, 4.16연대, 기륭전자. KTX해고승무원, 빈곤사회연대 등에 후원금을 보내왔던 것. 죽음을 앞두고도 자신의 월급 봉투에 남은 돈을 힘든 곳에 보내달라는 당부를 했다. 한빛이 용산 참사 유족들을 위한 양심의 대열에 섰던 사랑이 한빛 엄마가 벌이던 1인 시위의 바톤으로 이어졌다. 엄마는 아들이 뭘 하고 다녔었는지 한빛이 떠나고서야 알게 되었다. '봄비가 오던 일요일, 운동장을 가로 질러 교실로 가면서 밟았던 흙 감촉이 평화로웠다, 텅 빈 교실에서 혼자 공부를 하는 중에 들리던 빗소리가 좋았다'고 표현하던 순수하고 맑은 청년의 이야기에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교원노조의 중책을 맡고 있던 아버지, 교장 선생님으로 막 퇴직을 앞두고 있던 엄마에게 날벼락이 따로 없었다. 회사는 비겁하게 이PD의 업무 근태를 방패 삼아 은폐를 시도했으나 결국 모든 상관관계가 드러나서 사과와 보상의 수순을 밟았다. 그 부모는 자식을 앞세운 대역죄인으로서 아들이 꿈꾼 세상을 뒤늦어서라도 만들어주려고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를 개소했다. 한빛에게 주어진 보상금이 기금이 되었다. 이후 화려한 조명과 스타를 떠받치며 인권 사각지대에 있는 미디어 관련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해 부당함을 알리고 함께 권력 집단에 맞서 싸운다. 아들을 앞세운 지 4년을 넘겼어도 부모의 가슴은 여전히 현실을 부정하게 된다. 오열과 자진을 번갈아가며 지금도 그들은 불면의 밤을 지새운다. 아들의 뜻을 조금이라도 잇게 해주고 싶었던 어머니 김혜영 씨가 책을 발간했다. <네가 여기에 빛을 몰고 왔다>. 차일피일 미루고 있던 책읽기를 시작했다. 어떻게도 형언하기 힘든 짐승의 울음이 그 곳에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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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동진시대 군주 환온이 군사를 이끌고 양자강을 건너는데 군사 중 한 명이 나무에 매달린 원숭이 새끼를 사로잡았다. 강 건너 끌려가는 걸 목격한 어미 원숭이가 몇 리 길을 따르며 절규를 했다. 강폭이 가까워진 어느 지점에 이르자 에미가 새끼를 구하려 배에 뛰어들다가 죽었다. 에미 원숭이 배를 갈라보니 장기들이 다 끊어져 있었다. 이 이야기에서 유래해 고통으로 애가 끓고 장이 절단된 상태를 일러 단장(斷腸)이라 한다. 우리 옛 가요 중의 ‘단장의 미아리 고개’의 그 단장이 이 뜻이다. 아마 한빛의 어머니와 아버지의 속이 저러할 것이었다. 문장 대목대목 아니 구절구절 슬픔이 배어있고 아픔에 젖어있어 나도 모르게 시야가 흐려진다. 한빛의 부모님은 어쩌자고 미디어노동자센터를 열고 고난의 길을 자처하게 되는 걸까? 한빛이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사회 변화를 위한 사심없는 운동을 보며 그 뒷꿈치를 따랐듯, 이번에 역으로 그 부모가 아들이 세상을 향해 던진 가치를 계승하고자 한 것이리라.
한빛의 활동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더라면 한빛이 외로운 길을 선택하지 않았을 수 있었다. 뒤늦어 그를 추모하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추운 겨울의 한파를 뚫고 회사 앞에서 추모제를 벌였다. 선동가가 한 일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모여든 시민들의 소리없는 함성은 사주들을 떨게 했다. 결국 공식적인 사과와 보상, 향후 재발을 막을 조치들을 약속하게 되었다. 태풍이 몰아치면 개울에 사는 민물고기들이 어떻게 될까봐 가슴졸이던 어린 소년. 생명 가진 것들에 대한 연민을 담고 있는 눈빛 깊은 한빛은 하늘나라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자신을 추모하려 온 사람들을 보면서 ‘아, 다행이다. 저런 사랑과 관심 하나면 우리 스탭의 시간들이 이전보다는 편해질 거다’라고 기뻐할지도 모르겠다. 자신은 얼마나 외롭고 아픈지 헤아리지 않고. 그래서 한빛 엄마 혜영씨는 더 저리고 아플 일이다. 죽는 순간까지 부모님이 설 자리까지 배려했던 착한 아들.
‘기억하기 위해서는 작은 의식이 필요하다고 힘든 기억도 의식을 갖추면 용기가 생긴다고.’
자제 이한빛은 비록 세상을 등졌으나 안타까움을 넘어선 저릿한 약속의 말들을 어머니 김혜영 선생님은 고백한다. 또 그의 정신은 유산처럼 그의 동생 한솔에게 전해졌다. “앞으로는 절대로 나만을 위해서는 눈물을 흘리지 않으리라. 연대의 울음이 아니면 절대로 울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동생 한솔은 그의 심장 속에 그의 형을 영원히 불멸의 존재로 기억한다. 세상사 아무 것도 모르고 그저 묵묵히 서민의 삶을 살아가던 이소선 여사는 아들 전태일이 죽어가면서 “이제 창 하나 내놓고 떠나니 엄마가 노동 현장을 지키는 무리들을 따라 구호를 부르고 함께 하라”는 유언을 지켜내었다. 죽는 날까지 아들 같은 노동자들의 삶을 대변하며 오로지 아들과의 약속을 지켜내었다. 한빛의 동생도, 한빛의 어머니도, 한빛의 아버지도 한빛이 지키고자 했던 그 빛을 따라 ‘카메라 뒤에 사람이 있음’을 외치고 또 외친다. 아들을 가슴에 묻지 않고 부활시키겠다는 엄마의 약속은 끝없는 이야기로 기억될 것이고 지켜질 것이다. 누가 그깟 세포라고 했나? 그 순수한 세포 하나가 세상을 변화시킨다.
동생 한솔이 조롱당할 것을 각오하고 썼던 <가장 보통의 드라마>는 방송제작 환경과 시스템과 구조적 문제를 짚어내고 있다고 한다. 형의 죽음을 아파하지도 못하고 한솔은 직접 발로 뛰며 ‘카메라 뒤에 사람이 있다’라 외친 형의 뜻을 이어주었다. 청년유니온과 35개 단체 대책위원회는 미리 ‘성숙한 어른’이 된 청년들의 결사체이자 행동하는 용기 있는 시민들이었다. 한빛이 머문 생의 시간을 명예롭게 해준 그들을 잊지 않겠다고 엄마 혜영은 감사해한다. 나도 그들에게 깊은 감사로 고개를 숙인다. MBC 비정규직 아나운서 부당해고, 대전 MBC 성차별 채용, 대구 MBC 다온분회, 이재학 피디 사망 사건, 보조출연자 두 자매 성폭력사건 등 방송노동자를 위한 투쟁에 앞장서고 방송 산업 노동 안전 가이드라인을 만들었고 방송 현장 개선 우수 사례 공모전을 개최하는 등, 한빛센터는 설립 이후 많은 방송 노동자들의 현장을 바꿔놓았다. 지옥 같던 그곳에 빛을 몰고 왔다고 말하는 동료 PD, 부당함을 일러줄 곳이 생긴 방송관계자들은 자신이 괴물이 되지 않겠다고 서로를 붙든다. 한빛은 없지만 한빛의 이야기는 계속 될 것이라고, 한빛을 기억하는 우리가 있다고 말한 동료들의 지지와 연대가 한빛 가족들이 약속을 지키게 하는 힘이 되었다. 한빛의 친구인 나도 기억하리라. 한빛의 이야기는 네버엔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