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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의 예술가 육코치 Jan 03. 2019

고도를 기다리는 시지프스 4

거짓말,거지말,거짓말......

심근경색 시술 후 생존율이 7%밖에 안된다는 기사를 어디에선가 봤다. 그런데 그는 여전히 하늘이 돕는 것인지 모든 예후가 좋았다. 연기를 하는 것인지 그는 요르단에서 돈 가져오는 친구에게서 누나에게 직접 현금으로 전하고 그와는 별도로 무조건 자신을 따라 두바이로 들어가잔다. 나랑 함께 다니는 동생 J와 둘의 비행기 티켓까지 구매해두라고 했단다.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그 은혜를 갚기 위해서,또 자신의 집이며 회사를 보여주고 쉬게 하겠단다. 제비처럼 번지르르 생긴 것도 아니고 말을 달변으로 하는 이도 아니다. 오히려 눌변에 가까웠는데 나나 친한 동생은 그가 오래도록 외국으로 나가 있어서 한국말이 서툰 거라고 전제하고 있었다. 차마 인간에 대한 예의를 잃고 싶지 않아서 여권을 보자 소리도 못하고 확인하러 들지 않았다. 사람이 하는 말을 액면가로 믿으며 살아왔기에 터무니없이 사람을 의심하는 일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쪽이었다. 


치료가 다 끝나고 퇴원해야 하는 시간이 되었다. 모든 상황이 꼬였다. 사업장 정리했으니 고정 수입이 있을 리 만무하고 매달 살아갈 생존비용 조달조차 힘들었다. 그런 판국에 이런 멍에를 지고 있자니 지옥이 따로 없었다. 그런데 병원비 수가는 계속 올라가서 4,250만원까지 이르렀다. 마이너스 대출과 카드 장기 할부로 병원비를 지불하고 일단 퇴원을 시켰다. 신이 나를 시험하는 듯했다. 그동안도 도에 지나친 오지랖을 많이 부렸다. 집을 담보로 딱한 이웃들의 빚을 먼저 갚아 이자를 삭감해주기도 했다. 내가 덜 먹고 아낀 것으로 형편이 힘든 학부모들에게 아이들 교복 맞춰주라고 돈을 건넨 적도 있었다. 몇 군데 정기적인 소액 후원비를 송금하는 돈만 매월 20만원이 넘었다. 내가 분수에 지나쳐도 한참 지나친 짓을 하고 산 게 사실이다. 사람은 더불어서 나누며 사는 거라고 돈이 있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미리 나누며 시작하는 것이라고 기쁜 마음으로 실천하며 살았다. 


몇 백만원씩 빌려가서 여전히 해결하지 않고 돈을 덜 갚은 이웃들도 있었다. 그래도 그들보단 내가 낫다고 여기며 기다려주고 살았다. 내 형편에 비해서 알량한 이타적인 마음을 잊지 않고 살아가니까 그 마음을 알아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뭐야?이게 뭐냐고?내가 뭘 잘못했을까? 왜 나를 벌주려는 것인지 야속했다. 내가 아직도 교만한 뭔가가 있어 신이 내게 벌을 주는 듯도 싶었다. 이런 생각이 미쳤다가도 아직 있지도 않은 일을 너무 비극적으로 보다가 부정이라도 탈라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그런 생각보다 더 견디기 힘든 것은 K라는 사람의 정체성의 부재였다. 나는 기어이 판도라의 상자를 열고 말았다. 직감적으로 학벌을 거짓말한 거라는 걸 알게 되었다. 내게 또 속인 게 뭐냐고 지금 얘기 다하라고 사정했다. 분명히 통사정을 했다. 돈보다 더 중요한 건 너라는 사람의 진실이라고. 그는 누님께 돈을 다 갚고 반드시 모든 얘기를 털어놓고 용서를 구하겠다고 했다.


돈을 직접 갖고 들어오기로 한 사람들을 기다리고 통원치료도 필요했던 상황이라 어쩔 수 없이 집 부근 모텔을 잡아 주었다. 계절도 바뀌어 옷 하나 변변히 없어서 아들 겨울옷을 다 내다 주었다. 체재비와 통원 치료비 등 총 350만 원 정도를 더 지불하여 병원비까지 총 4,600만원을 대납하게 되었다. 그런데 약속한 날짜가 되면 꼬이는 상황들만 벌어졌다. 요르단에서 오기로 했다는 상대가 갑자기 쓰러져 날짜를 연기했다는 둥 핑계야 넘쳤다. 하루하루 사람을 옥죄며 압박해왔다. 급기야 상대에 대한 불신과 곧 닥칠 재앙에 대한 불안감으로 나는 초조해지고 이성을 잃어갔다. 핍진해질대로 핍진해진 나는 사는 게 사는 게 아닌 지경이 되어갔다. 그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 가슴 통증이 수시로 왔다. 정체를 모르는 답답함이 피를 말리게 했다. 불안감은 적중했다. 결국 시간을 끌고 사람 속을 태우니 나는 발작에 가까운 반응까지 보이게 되었다.


12/29일 여 후배와 함께 작정을 하고 신분증이라도 내어 놓으라고 압박을 가했다. '네가 누구냐고?진실을 제발 얘기해달라'고 더 이상 거짓말하지 말고 털어 놓으라고. 긴 시간 실랑이 끝에 서울에 여권을 맡겨뒀다기에 서울로 무작정 갔다. 정작 그는 여전히 딴소리를 하면서 시간을 끌었다. 나는 흥분 상태로 차 안에서 소리를 지르고 울고 불다가 동작경찰서 마당까지 갔다. 그런데 차마 경찰에 신고는 못하겠더라. 드러날 진실이 겁났을지도 모르겠다. 진실을 알고 싶어했지만 막상 그 뒷감당이 두려워 나는 자꾸 도망을 쳤는지도 모른다. 대학원 남자 동기에게 전화부탁을 하여 함께 만나러 갔다. 위협을 느꼈는지 남자인 동기에게 보이는 태도가 확 달라지더니 사실을 토로했다. 기가 막혔다. 캐나다 국적이라는 것도 거짓이었고,결혼했다가 이혼한 전력도 있었다. 자신이 거짓말했던 걸 덮으려고 계속 거짓말을 했단다. 이제 가족같이 지내고 싶었던 누나가 자기를 떠날까봐 돈 문제를 해결한 후,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려 했단다. 


그 뻔뻔스런 입으로 말했다. 누나도 힘드니까 돈갚는 일이 가장 급하다고,그래서 자신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 용서는 그 후에 제대로 빌겠다. 그 거짓말도 기가 막혔으나 그의 비굴함이 견디기 힘들었다. 나와 후배 앞에서 보이던 태도와 남자 앞에서 보이는 태도가 어쩌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는지. 적개심으로 치가 떨렸다. 결국 너가 여자라고 더 무시했던 거니? 우습게 보였던 거야? 난 기가 막혀 입밖에는 내놓지도 못하고 가슴으로 절규했다. 사람의 진심을 철저히 유린한 그 심장을 내가 구했다. 속도 없이......그런데 참 이상했다. 인간에 대한 절망감만 있는 게 아니었다. 상대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고 나니 거짓말처럼 흉증 통증이 사라졌다. '모른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나 불안이 얼마나 깊은 스트레스를 새기는지 알만한 부분이었다. 나 자신이 ‘정체성’에 대한 혼란으로 평생을 앓아와서일 게다. 가십거리로서의 상대가 궁금한 게 아니라 나와 관계를 맺은 이들에 대한 성실성에 걸맞는 진실의 예우를 무척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었다,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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