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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의 예술가 육코치 Jan 02. 2019

고도를 기다리는 시지프스 3

그렇게 온다,불행은.소리도 없이......

'정체불명'의 갑갑함이 불편함을 넘어서 불쾌감을 만들고 있었다. '신뢰'라는 어휘를 지나치게 사용하는 이가 자신의 영역에 대해 뭐라 말하기 힘든 감추는 일들이 참 많구나 싶은 정황들이 포착되자 거리를 둬야겠다는 생각만 맴맴 돌았다. 건너간 돈을 되돌려 받을 생각도 않고 거리를 두다보면 저절로 연락이 끊어지리라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양평으로 집을 지어 옮겨가기로 해서 인천에서 꾸리고 있던 사업장도 폐업 처리했다. 인테리어 비용이며 집기와 책들을 정리하고 나니 흔적도 없었다.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 앞으로 또 어떻게 변화를 꾀해야할지 갈피를 못 잡는 나날이라 나도 살기가 급급했다. 집 문제가 자꾸 연기되면서 임시로 있는 거처도 우울을 가중시켰다. 땅값이며 대금을 치르겠다고 아파트는 진작에 처분했는데. 우울과 방황 사이 나도 내가 버거웠다.  산적한 내 문제들만으로도 벅찼다.


11월 27일, 아는 후배를 만나러 가 있는 자리에 끊임없이 메시지의 불이 켜졌다. 끝까지 열지 말았어야 했다. 절대. '누나, 가슴이 아파요. 119 좀 불러주세요.' ' 직접 119에 전화하세요. 바로 있는 곳을 알리고 .... ' 솔직히 이거 무슨 상황이야? 속으로 짜증부터 일었다. 개입하고 싶지 않았다. 끝까지 버텼어야 했다. '어딘지 주소도 몰라요.''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구조를 요청하세요' 몇 번 대화가 오가고 조용하기에 해결했겠거니 하고 모른 체하고팠다. 그런데 구급차에 실려 가면서 전화가 왔다. 소방대원으로부터 서구의 모 병원으로 가고 있는데 좀 와달라고 했다. 보호자가 없으면 안된다고. 구급대원이 위치를 설명해주는데 생각이 정지되어 뭘 어찌해야할지 몰랐다. 


찜찜함을 떨치지 못했지만 위급한 상황이라는 경광등만 울고 있을 뿐, 어느새 나는 차에 시동을 넣고 달리고 있었다. 서구의 모 병원 응급실에서 주렁주렁 달고 심전도며 초음파를 찍고 있는 그의 모습이 보였다. 병원에서는 정밀 검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K는 정밀검사나 치료가 필요하다면 10여 년 전에 진료한 기록이 있는 주안의 S병원으로 가겠다고 했다. 그 병원은 우리 집에서 가까운 곳이었다. 그 병원에서는 그럼 각서를 쓰고 가라고 했다. 위급상황인데 환자 스스로 거부하고 옮겨가는 것에 대한 책임소재를 분명히 하려는 뜻이었다. 얼핏 보기엔 꾀병을 부리는 거 아닌가도 싶었다. 진료비가 없어서 내게 부담을 지우고자 하는 것인가 싶으면서도 약 처방이라도 받으려면 가기는 가야겠구나 어차피 집 근처니 데려다 주는 역할만 하자 싶었다. 


가는 내내 가슴 통증을 호소하며 끙끙 앓았다. 불안감이 엄습하는 가운데 경제적 궁핍을 겪고 있던 내 상황부터 돌보자 속으로 얼마나 다졌는지 모른다. 절대 더이상 맘이 약해져선 안된다. 그냥 데려다만 주고 나는 돌아서는 거다. 결심에 결심을 하고 또 혹시 모르는 안전장치로,이동하는 차 안에서 그를 향해 몇 번이나 다짐을 받아뒀다. '너도 아다시피 나도 사무실 정리하면서 빚을 지고 내 생애 최악의 상황이라 내가 뭔가 해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니 내게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시켜달라. 더 이상 도움이 못되어 미안하다.'로 정리했다. 본인도 심정적으로 누님께 의지하는 것이지 경제적 부담 안 지울 것이고 그냥 약 처방만 받으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그 뒤에 대책을 세우겠다고 떠듬떠듬 말했다. 


차마 나는 내려놓고만 돌아서지 못했다. 담당의가 앞 병원응급실에서 가져온 CD와 소견서를 보고 청진기를 대어 보더니 급히 수술실로 전화를 넣었다. 확실히 뭔가 잘못 되어가는 꼴이었다. 지금이라도 뛰어 나가야 한다고 머리로만 생각했다. 시술 대기 중인 환자를 물리고 K를 먼저 시술해야겠으니 속히 준비를 하라는 것이다. 심근경색으로 스텐트 삽입술을 지금 당장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다. 지금 당장. 옆에 있던 간호사는 이미 그에게 이동 침상위에 누우라고 하고 침상을 끌고 나갔다. 다른 간호사가 얼른 수속을 하라고 내게 채근을 했다. 보호자냐고 묻는데 나는 지인일 뿐이라고 내가 수속하는 건 곤란하다고 했다. 지금 당장 해야 한다며 사인을 종용했다. 졸지에 내가 그의 목숨줄을 쥐고 있는 셈이었다. 정말 멍하니 머리속이 하얘지더니 어느새 나는 연대 보증인란에 사인을 하고 있었다. 채 십분도 걸리지 않은 찰나지간에 엄청난 일들이 흘러갔다. 그들이 이끄는대로 나는 뭐에 홀린 듯 끌려가서 카드로 선금 100만원을 결제했다. 결제안내를 알리는 문자로 드르륵 몸을 떠는 전화기를 보고서야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았다. 


믿기지 않았다. 나는 내 수중에 가진 게 없어서라도 앞으로는 다른 사람들을 돌볼 수도,내가 당할 일이 없다고 굳게 믿었는데...... 정신이 나가서 그냥 대기실에 망연히 앉아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시술이 끝나고 담당의는 면담을 요청했다. 총 네 개의 혈관이 문제가 있는데 그 중 두 개는 심각했다고 했다. 더 위험한 징후를 보인 오른쪽의 것을 시술했는데 경과를 보면서 두 번째 것을 할 것인지 약물치료로 가능한지 보자고 했다. 일단은 시술 결과는 좋고 부작용이 있을지 잘 관찰해야 하니 통합간호로 넘어간다고. 그제서야 이상한 점들이 떠올랐다. 의사였다며? 이 병원에 아는 의사도 있다며? 근데 그런 연관 기미가 왜 하나도  안 비치지? 심지어는 의료 용어까지 잘 이해못하는 듯한 그 모양새는 뭐였을까? 저 인간이 말한 자신의 이력이 거짓말은 아니었을까? 한 번 시작된 의구가 의심으로 넘어가는 건 그리 오래지 않았다.


한국 국적이 아니라 했으니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았다. 시술비만 1,800만원. 통합간병 서비스까지 하면 도대체 얼마란 말인지? 회복이 되고 병실로 올라온 다음날,나는 면회를 가서 확실히 해둬야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졌다. K 본인이 원무과 직원들과 자금 계획에 대해서 몇 차례 얘기를 나누었다 해서 안심했다. 그래도 걱정이 되어 코치코치 물어보니 일주일 안으로 홍콩 거래처에서 송금하기로 했다고 나를 안심시켰다. 그래,그럼 그렇지, 그전에 하는 얘기를 봐서라도 그렇게 대책없는 이는 아니었지. 잠시 일이 꼬여서 원활하지 않았던 거야. 그랬던 거야. 그러나 약속한 날짜가 지나고 또 일주일이 지나도록 돈은 오지 않았다. 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병문안을 갔다. 아니 돈이 왔는지 확인하러 갔다. 나는 점점 지쳐갔으나 여전히 그를 대놓고 미워하지도 못하고 닦달을 하지도 못했다. 혹여라도 도망가서 영영 내가 뒤집어 쓰게 될까봐. 비굴한 미소를 지으며 그를 달래야 했으므로......


날은 추워가고 정신없이 쫓아다니느라 감기몸살마저 얻고 며칠 병원을 건너뛰었다. 설상가상 병원에서 또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두 번째 것도 하지 않으면 위험하다며 병원비가 치르지지 않아서 시술을 계속 미뤄왔으나 더 이상은 안된댄다. 의사선생님과 환자가 시술실에서 대기하고 있는데 병원비의 일부라도 결제해달라는 게 요지였다. 나는 기가 막혀서 그런 능력도 없을뿐더러 사인한 잘못이 있다면 1차까지는 최종적으로 책임질지 모르나 2차는 나는 모르겠다고 했다. 병원에서는 1차 것도 100만원 외에는 지불된 바가 없으니 일단 최대한 해달라고 설득했다. 전화기를 붙들고 계속 있을 수도 없는데다 다시 내게 그의 목숨을 좌우할 공이 넘어와 있었다. 또 뭐에 홀린 듯 700만원을 결제하고 말았다. 나는 병원을 갈 상황도 아니어서 지금 결제를 하러 갈 수도 없다고 했지만 일전에 결제한 기록이 있어서 가능하다고 병원은 친절을 베풀었다.


2차 시술을 끝내고  나온 그를 보자 후안무치, 뻔뻔스런 얼굴로 한대 때려주고 싶은 마음도 반, 비굴하게 구걸하듯 동정을 구하는 그가 참 구질구질 불쌍하다는 마음도 반이었다. 그는 다시 구체적으로 자금 계획을 그럴싸하게 얘기해왔다. 이전 라인의 친구들이 성탄 휴가를 떠나서 시일이 걸릴 것 같아 다른 친구에게 다시 부탁을 해둔 상태다. 네 돈이 있다면서 변호사에게 송금하라고 하니 자신이 이전에 테러를 당하면서 큰 돈을 잃어버릴 뻔했다, 법정 소송끝에 되찾은 경험이 있어 직접 자신이 가서 가져오지 않는 다음에는 돈을 빼올 수 없다. 그래서 누나가 나랑 함께 가서 그 현장에서 돈을 받자. 일단 병원에서 나가야 하니 누나가 결제하고 요르단 친구가 12월 20일쯤 나오는 공항에서 바로 현금으로 돌려주겠다. 뭔가 이상하고 찜찜했지만 이제 물은 엎질러졌고 어떻게든 그를 잘 구슬려 돈이 건너 오게 하는 수밖엔 없었다. 실제 요르단 친구라는 애의 비행기표가 사진으로 날아왔고 전화 통화도 했다. 이런 식으로 의문을 제기하면 그럴 듯하게 증명을 해보이며 잘도 피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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