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삶의 예술가 육코치 Jan 02. 2019

고도를 기다리는 시지프스 2

수상한 전조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벼랑 끝에 서 있는 게 이런 상태일까? 아니 벼랑 끝이라면 차라리 쉬울지도 모른다. 그냥 헛발 디뎌 끝내면 그만일 테니....... ‘절망’이라는 단어가 입 밖에 새어 나오지 못하도록 평생을 단도리하며 버텼는데, 어?어? 하는 사이에 나는 이 소용돌이 한 가운데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던 것일까? 나라는 사람은 도대체 어떻게 생겨 먹었기에 이런 어리석음을 반복하고 있다는 말인지. 강박적 반복의 늪에 빠져 버렸다. 현실을 부정하며 몇 번이고 필름을 되돌려 보지만 조각난 기억들을 어디서부터 맞춰야 할지조차 막막하다. 그러나 나는 안다. 과거 내가 공고히 해온 정신모형에 대한 성찰과 인식 없이는 시지프스의 바위를 평생 져야 할 고통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을.


중국어를 전공하고 평생 중국어 레슨이나 통번역을 놓지 않고 있다. 간헐적으로 SNS 상으로도 일이 연결된다. 통번역 의뢰나 중국 관련 사업 소개 일이 주로다. 순수한 의도로 서로에게 힘이 될 사람들을 파트너로 연결시키기도 하고. 인간사 그러하듯 마냥 좋은 일만 생기는 건 아니다. 일처리가 말끔하지 못한 사람을 만나면 중간에서 소소한 경비를 대신 지불하거나 뜻하지 않게 연루되어 애를 먹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내가 다리나 통로가 되어 서로 파트너십으로 성장하는 사람들을 보는 기쁨이 더 컸다. 어려서부터 사람들을 좋아하고 사람들 사이에서 플랫폼 역할을 하는 일이 습관이 된 일상이었다. 


K 역시 비즈니스로 중국 쪽 태양광 에너지 사업 파트너를 찾는다고 내게 의뢰를 한 인연으로 알게 되었다. 자신은 캐나다 교포로 주로 중동 쪽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카톨릭 교인이라고 소개했다. 의사로 일하다 투자이민으로 캐나다로 가서 사업으로 전환했다고 했다. K는 메신저나 메일을 통한 대화중에 한국과 한국 사람들에 대해 자주 혐오감을 드러냈다. 이런저런 사연을 듣고 보니 성장 배경 중에 깊은 내상이 있었다. 트라우마가 작용하는 듯 피해의식이 그득함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가정사적으로도 사업적으로도 많이 당하고 살아서인가보다 정도로만 가벼이 여겼다. 그저 일로써 알게 된 사람이니 그 정도로도 족했다.


그런데 그는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내게 친근감을 드러내며 인간적인 관심을 드러냈다. 나처럼 계산속이 없는 순수한 사람이 좋다면서. 그런 중에 사람을 너무 쉬이 믿지 말라는 충고도 아끼지 않았다. 심지어 자신에 대해서도 끝까지 경계를 풀지 말라고까지 했다. 누님은 너무 순진해서 속기 쉽겠다고. 그런 말들이 중요한 신호였었나 보다. 일말의 양심이 작동하는 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한국에 나가면 사업 상의 일이 아니어도 꼭 인사드리고 교육사업 분야에 대해 논의하고 싶다고 했다. 


과연 2017년 9월 추석을 앞둔 즈음에 그가 한국에 들어왔다. 7년여 만에 온 거라는데도 조금의 감회도 없는 무미건조한 표정이었다. 눈동자가 경계심과 불안감을 가득 담고 있었다. 부모에 대한 원망,사업 중에 만났던 한국 교포나 한국 사람들에게 이용당하고 곤혹을 치렀던 후유증이 생각보다 훨씬 큰가보다 여겼다. K는 사업 상 연결된 내 주변인들을 만나면서 갸우뚱해했다. 사람들의 진솔한 모습들에 감명 깊어 했으며 자주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며 회한에 젖기도 했다. ‘누나’ 자체가 진솔하게 사니까 그런 사람들만 모이나보다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 전면 수정해야겠다고도 했다. 나는 내가 대단한 영향력이라도 끼쳐서 누군가의 삶에 변화를 이끈 것인가 하는 착각을 했다. 속으로 은근히 보람도 느끼면서 나는 내가 믿고 싶은 방향대로 왜곡된 방향타를 몰고 있었다.


K에게 연결해줬던 일들은 진행 과정에서 단가나 거래 조건이 맞지 않아서 하나도 성립된 것은 없었다. 때로는 거의 될 듯 진전을 보이다가 무산이 되기도 해서 내가 괜히 중간에서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K는 사업과는 무관하게 나를 누나처럼 여기며 평생을 인간적인 교류는 이어가고 싶다고 종종 표현했다. 그런 그를 보면서 측은지심이 일어 상처 난 마음에 보상이라도 해주고픈 사명감마저 생기기도 했다. 고국에 대한 원한의 마음을 걷어내고 좋은 기억만을 가지고 돌아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진실하게 대했다. 독신이랬기에 절친한 지인을 소개시켜주어 정신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윤택한 삶을 살아가길 진심으로 바랬다. 지인인 후배가 마음이 동하지 않아 더 이상의 진전은 없었다. 


이 정도의 인연으로 마무리했으면 그림이 나쁘지는 않았겠지? 2주 정도 예정으로 방문했다던 일정이 두 달 가까이 연장되면서 삐거덕 삐거덕 수상한 전조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일이 될 듯 안되는 일들에 대해 상대에 대한 원망의 말을 쏟아내기도 했다. 자신을 결정적으로 믿지 않는 눈치라도 있을라치면 화를 내는 모습을 감추지 않았다. 나는 그들이 서로 정보가 부족할 때는 합리적 의심을 하는 게 당연한 게 아니냐며 진정시키기도 했다. 내가 차근차근 말하면 잘 듣다가 다시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언뜻언뜻 초조한 듯한 기색을 감추지 않는 상황도 있었고 국제 전화를 한참 하기도 했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기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그런데 카드 이용이 일시적으로 문제가 생겼다고 체재 경비 일부를 빌려갔다. 큰돈이 아니었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마음 속에 찜찜함이 남아서 될 수 있는대로 더 이상은 엮이고 싶지 않았던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고도를 기다리는 시지프스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