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7 퇴계의 발자취 따라 청량정사와 청량사를 오르며
따로 운동할 시간을 낼 필요가 없는 일정이었다. 퇴계 선생과 원효대사가 수시로 오르내리며 사색을 했다는 길을 걸을 수 있었다. 오늘 목표지는 청량산의 청량정사와 청량사. 아침을 서둘러 먹고 움직인 길이라 아직은 관광객들이 몰려들지 않았다. 도산선비문화수련원의 지도사님들과 행정실장님은 물론이거니와 부원장님까지 나오셔서 우리의 유산(遊山)을 도왔다. 산길을 오르기전 초입에 서 있는 시비석에 청량산을 칭송하는 시가 있었다.
"문설금강승 聞說金剛勝 금강산 좋다는 말 듣기는 해도
차생유미상 此生遊未嘗 여태껏 살면서도 가지 못했네
청량즉기아 淸涼卽其亞 청량산이 금강산에 버금가니
호작소금강 呼作小金剛 자그마한 금강이라 이를 만 하지 "
조선시대 판결에 능했다는 권목(권성구)이 지었다. 열두봉우리의 형태가 빼어나기는 하나 웅장한 산도 아닌데 청량산이 전국 문인들에게 회자된 이유가 뭘까? 퇴계를 흠모하는 전국의 유생들의 그의 발자취를 쫓아 성지순례하듯 찾았던 이유다. 전국에서 모여든 유생들이 그 느낌을 생생히 전하느라 오늘날의 리뷰를 많이도 써댔다. 청량산을 다녀온 유산기(遊山記)가 워낙 많이 전해져서 더더욱 이름을 타게 되었다. 바이럴, 구전 마케팅의 위력이 그때 이미 통했던 바. 원효대사와 퇴계 선생이 사색로로 드나들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좁은 오솔길이나 이름 그대로 청량함을 흠씬 품은 숲과 황톳길. 나그네의 발을 편하게 했다. 맨발걷기로 온몸 사색을 하는 이가 과해보이지 않았다. 연한 초록과 맑은 공기가 딴 세상을 여는 듯했다. 조금 숨이 가빠올 즈음 청량정사가 조용히 우릴 맞았다. 툇마루에 나란히 앉아 바람결을 맞았다. 지도위원님들이 퇴계의 인간적 면모를 보여주는 시를 준비해줬다. '숙부를 그리며'라는 시 두 수에서 소년 퇴계와 장년 퇴계를 만날 수 있었다. 울컥 눈물을 훔치느라 팔뚝으로 눈을 닦았을 심경을 '횡(橫 가로)으로 눈물을 흘렸다'는 대목에서 그 순수한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일찍 아버지를 여윈 퇴계는 숙부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자랐다. 숙부는 자신의 아이들과 조카들을 데리고 청량산엘 올라 교훈이 되는 말씀을 많이 해준 듯하다. 퇴계는 고향에 갈 일이 있을 때마다 회합 전에 먼저 청량산을 올라 숙부와의 추억을 되씹곤 했다. 그에 그치지 않고 자기의 아이들과 조카들, 후학들을 데리고 같은 장소에 올라 어린 날을 회상하고 그 가르침을 전해주기를 잊지 않았다. 정신적 유산은 그렇게 전해져 전통이 되고 가치가 되는 일이었다. 가치 공동체를 꿈꾼 퇴계의 삶 자체가 만져진다. 현대의 우리에게 부모 자식 간에, 사제지간에 유산 남기기가 자연스러운가? 쓴 맛이 올라온다.
청량정사에서 공부하던 젊은 서생들의 성독하는 소리가 바람결에 묻어오는가 했다. 젊은꽃향 유생들은 어쩌자고 이리도 맑은 곳에서 공부를 하겠다고 결심하게 되었을까? 계절마다 맞는 총천연색의 자연을 어찌 감당할 수 있었을까? 천둥과 우레, 소낙비 쏟아지는 소리들을 어떻게 잠재울 수 있었을까? 바람의 소리에 혹해서 초록의 빛에 취해서, 난난분분하는 꽃향에 취해 멍하니 넋을 놓치는 않았을까?
나의 우려가 무리가 아님을 알겠다. 자연과 어우러지 그 곳이 좋아서 정사 바로 밑에서 시를 쓰고 길손들에게 약차를 제공하는 사람이 있었다. 속세의 온갖 시름을 접어두고, 자연과 벗한 그는 천지가 비유이자 기쁨이었다. 찻집 곳곳에 돌에, 나무에, 장독에 새기고 쓴 시들이 촌철살인이다. 세상에는 다른 사람들이 발견하지 않는 가치를 위해 또다른 삶을 선택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반갑다.
청량사의 빼어난 자태의 반가사유상, 공중에 떠있는 듯한 석탑, 독경 소리가 한창이던 대웅전. 파란 하늘에 단청이 조화를 이룬다. 흰 구름까지 찬조출연한 덕에 완벽한 향연을 펼쳤다. 거풍하며 잠시 신선이 된 듯 곤고해진 육신을 쉬게 하는 시간. 더없이 좋았다. 여기저기 셔터를 눌러대며 지금 이 순간을 담았다. 서있을 때 보이지 않던 풍경이 앉으니 또 다른 세계를 펼쳤다. 각도를 잠시 틀고 높이를 조금 낮춰도 또 다른 세계인데 지금 보이는 것이 다라고 생각하는 어리석음을 또 본다.
시간 절약을 위해서 하산하는 길이 달라졌다. 아뿔사, 아스팔트길이 닳아서 맨질해진 시멘트 길이다. 오른 만큼의 기울기가 급격해서 자칫 긴장을 풀면 미끄럼을 탈 판이다. 산길로 오를 때 느낀 안온함을 절대 기대할 수 없었다. 어쩜 우리네 인생과 이리도 같을까? 쉽게 빨리 닿으려고 뚫어둔 그 길위에서 질주하는 무한 욕망들이 추락하고 사고로 이어진다. 철심을 박고 빼고 재활로 겨우 성해진 다리가 다시 타격을 입지 않을까 두려움이 앞섰다. 두번 다시 민폐를 끼쳐서도 안되고 고통을 알기에 바짝 긴장을 했다.
어느새 아픈 다리가 기억을 해냈는지 통증이 더해지며 저절로 다리를 전다. 미끄러지지 않으려 어찌나 용을 썼든지 어깨와 날개죽지가 딱딱해져 있다. 올라가면서 전혀 예상치 못했던 전개이기에 당혹스럽다. 20여명의 단체가 움직일 때는 어려움이 따른다. 언제나 예상시간보다 더 지체되고 귀경해야 하는 부담감까지 있으니. 삶의 곳곳에서 복병을 만나고 변수가 상수가 된 지 오래다. 결국 상황탓을 할 수 없고 보면, 내가 준비되어야 한다. 다행이 근래 운동을 해온 덕분인지 피로도가 덜 느껴지니 차질없이 여정을 수행 중이다.
한발 한발 딛는 발에게 다정히 굴었다. 네가 얼마나 수고를 하고 있다는 걸 잘 안다고. 네가 가진 두려움을 이해한다고. 그렇다고 마냥 그 기억에 사로잡혀 압도당할 수는 없다고. 이제 잘 떠나보낼 수 있으니 아팠던 기억일랑 잘 보내주자고. 어디 다리 뿐일까? 내가 기억하고 있던 지난 시간의 고통체들에게도 당부를 얹었다. 예상하지 못하는 난관에 무릎이 꺾이고 다리가 접히겠지만 너 자신을 믿으라고. 한발 한발 뛰면서 자신감을 채우고 있는 너를 비추고, 오뚜기처럼 다시 일어서는 회복탄력성을 믿으라고.
애쓰고 용쓰는 게 확연한지 뒤따르던 일행들이 괜찮은지, 자신이 앞에서 받치고 있을 테니 아무 걱정 말라고도, 잡아주겠다고, 천천히 가자고. 올라갈 때 숲길에서 느끼던 안온함을 고스란히 담아 사람들이 마음의 길을 내어준다. 겸연쩍기도 하지만 그 잔잔한 격려가 따듯해서 나를 차근차근 달랬다. 아무리 빠르게 간대도 이제는 돌아보고 싶지 않다. 인간들이 무리하게 닦아둔 직선이 구불구불 곡선을 이기지 못한다. 느릿느릿 나만의 속도를 배워버린 내게는. 그럼에도 선택의 여지가 없을 때는 그저 나를 보호하는 일에 힘쓸 일이다. 그나저나 내가 크게 다쳤다는 사실은 몸이 기억하고 있는 걸까? 뇌가 기억하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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