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에서 친구를 만나기로 했다. 친구가 재직하고 있는 대학 근처에 봉정사가 있어서 잠시 들렀다. 젊은 날 연애할 때 몇 번 드나들기도 했던 터, 공간에 대한 기억이 화르륵 다가왔다. 기억으로 봉정사 들어가는 길이 아름답기로 유명했던 기억이 있는데, 내 기억이 맞는지 궁금했다. 그런데 그때는 제법 걸어 올라갔다 생각했는데 길이 이리 짧았을까? 이미 자랄대로 다 자란 때여서 보폭이 차이날 리도 없을 텐데. 드나들던 그때의 시간들은 어떤 빛이었길래 기억의 왜곡을 불러 왔을까?
세계 유네스코 유산으로 등재되고 엘리자베스 여왕이 다녀가기도 해서 제법 유명한 곳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로 극락전과 대웅전이 진작에 국보로 등재되어 있는 곳. 나는 만세루의 기둥을 특히 좋아했는데 그곳에 기대 사진을 찍곤 했었다. 그때의 내 표정, 나를 감싸던 그 공기가 지금도 만져지는 듯 선연하다. 낡은 것이 주는 특별한 안심. 등을 대고 기대고 있으면 그저 편안하고 좋았다. 추억의 편린들을 그러모으며 입구를 찾는데 어라? 저게 뭐야? 만세루를 감싸고 있는 공사 가림막. 만세루 보수 공사 중이란다.
6월 한낮의 뙤약볕을 느릿느릿 걸었다. 발걸음과 호흡에만 주목한다. 걷기 명상쯤 되겠다. 오전에 본 청량사 반가사유상의 날렵함과는 대조적인 뭉툭한 부처가 마당에 낮게 좌선 중이다. 사람 人자 모양의 맞배지붕 너머 하늘은 어찌나 맑고 깨끗한지. 오백여 년의 세월은 오방 빛깔을 다 먹어 버린 듯 건축물 전제가 무채색에 가까워졌다. 그래도 그대로 두면 좋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보수라는 이름으로 알록달록 선연하게 채색된다면 그 어색함을 어찌 견디지? 봉정사는 여느 절들과는 다른 점들이 있다. 사천왕도 없고 대웅전 앞에 누대가 있어 덜 위압적이다. 가만 풍경 소리를 듣는다. 우주에서 온 파동이 세상의 온갖 원자들과 부딪치며 만들어내는 높낮이에 새삼 경건한 마음이 된다.
간간이 지난 세월에 함께 했던 사람들이 떠오르기도 하지만, 그날 그곳에서 환하게 웃던 내 모습이 수시로 등장한다. 그러고보니 많이 다녔구나. 고즈넉한 산사를 찾아다니며 '나'를 만나고 있었구나. 경내 마당에서 피안의 세계를 상상하고 지금 여기에서의 생생함을 경험하고 다녔구나. 눈이 기억하는 것보다 귀가 기억하는 게 더욱 구체적이고 생생하다는 걸 느낀다. NLP를 하면서 고유한 감각기관들이 보내는 신호를 민감하게 알아차릴 줄 알게 되었다. 나는 영화나 그림을 보는 것을 좋아하니 당연히 시각이 발달한줄 알았다. 주의를 기울여보니 나는 소리가 주는 자극이 선명하게 기억되고 상상의 문을 여는 것을 알겠다. 더불어서 내가 관계에서 실패를 하게 될 때를 돌이켜보면, 언제나 '귀'가 속았다. 듣기 좋은 말에 혹하고, 동정을 구하는 말에 약해졌었다. 사람이 싫어질 때 목소리부터 거슬렸다.
바람소리, 새소리, 낙엽 찰랑이는 소리, 물소리, 독경소리를 앵커링한다. 봉정사에서 채집한 소리들은 시공을 넘어 나를 편안하게 해주는 장치가 될 것이다. 마음이 번잡해지면 가만 눈을 감고 오늘을 소환하기만 하면 된다. 손가락마다 닻을 내려둔 소리들을 불러와서 나의 세계로 가서 풍요를 누린다. 마린보이 박태환이 경기 전에 언제나 헤드셋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들을 들었었다. 그게 자신을 탁월성의 상태로 두는 행위였다. 그런 장치 하나만으로도 자신의 감정을 조절 가능하다니 멋지지 않은가?
젊은 날의 나는 봉정사에 이르는 길에 도처에서 들리는 소리에 묶이곤 했나보다. 소리의 연원을 찾아 두리번거리고 더 선명하게 듣고 싶어서 내 발자국 소리를 죽였을지도 모른다. 자주 걸음을 멈춰섰을 테고, 멈춰야 들리는 것들에 한참 마음을 빼앗겼을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 경험하는 자아는 기억력이 좋지 않다. 기억자아만이 구성주의의 스토리텔링으로 이런 저런 해석을 내리며 '나'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었다. 왜곡이었대도 좋다. 자연의 소리가 그득한 풍성함을 누리게 되었지 않은가? 이제 그 소리마다에 나의 탁월성을 새겨놓을 수 있다니 아주 재미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