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운다,울어

100-9

좋아하는 선배 언니를 몇 년만에 만났다. 유머스럽던 우리들의 히로인. 느릿한 말투로 능청스레 툭툭 말을 던지면 선후배 가릴 것 없이 요절복통했었다. 언니보다 개그 지수 몇 수 위가 되는 부군을 만나 더 이상 개그력을 발휘하지 않았다.


언니는 딸 둘을 두고 있는데 둘의 기질이나 성질이 너무 다르다. 첫째는 감수성이 예민하고 여리다. 어찌나 순수한지 기뻐도 울고 슬퍼도 운다. 어려서부터 용모가 빼어나게 예뻐서 데리고 나가면 사람들이 이쁘다고 입을 뗐다. 언니는 겁이 덜컥 났다. 세상이 얼마나 험한데 무슨 일이 생기면 어쩌냐?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강한 아이로 키워야겠다 싶었다.


둘째 아이가 태어났을 때,첫째는 세살이 되었다. 초보 엄마는 아이가 말을 알아듣길래 다 컸다고 믿었다. 둘째를 들쳐 업고 외출이라도 할라치면 기저귀 가방, 유모차 온갖 장비를 챙겨야했다. 둘째 건사해야했으니 첫째는 스스로 알아서 양말 신고 신발도 챙겨 신어야했다.


말을 알아들으니 그 정도는 척척 알아서 할 거라 여겨서 잽싸게 준비를 하지 못하면 아이에게 짜증내고 혼내기 바빴다. 95점을 받아온 애에게 다음엔 100점 받으라고 하고, 100점 받으면 잘 유지하라 채근했다. 큰애에게 거는 기대는 태산이었고 칭찬에 인색했다. 둘째에겐 한없이 너그러워 첫째는 엄마는 늘 동생만 이뻐한다고 원망을 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있었던 일을 일일이 얘기하는 아이가 피곤해서 요점만 말하라고 했단다. 정서적 지지는 하지 않고 늘상 퉁박만 줬으니 아이는 외로웠을지도 모르겠다. 첫째만 빼고 나머지 셋은 성향이 비슷해서 우는 꼴을 다 못봐 넘겼다. 급기야는 기쁜 일이 생겨 첫째가 눈물이라도 비칠라치면 온 식구가 '자,이제 ㅇㅇ이 울 타임,시~~작'하며 놀려대기 일쑤였다.


'또 운다, 또. 울음은 짧게~' 조롱당하는 듯한 느낌을 아이는 어찌 해석하고 있을지 저으기 걱정이 되었다. 코칭 중 만나는 여성 고객들에게 빠지지 않는 주제가 있다. 엄마와의 관계 안에서 미해결과제로 남아 있던 감정의 물꼬가 타인들과 관계맺음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평탄한 일상이 이어진다면 굳이 들춰지지 않을 수 있지만, 스트레스 상황이나 산후 우울증 등이 올 때 심연 밑에 잠재워뒀던 감정의 찌꺼기가 심각한 문제를 불러오기도 했다.


선배언니는 '첫째 아이는 강해야 해. 나중에 우리 부부에게 일이 생기면 동생을 책임져야하는 것도 첫째니까'라고 당위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눈물을 흘리는 일은 약함을 드러내고 있고, 고착화될까봐서도 제지시켜야할 행위라고 굳게 믿었다. 실체가 있지도 않은 신념이 오래도록 사실을 왜곡하고 불안을 조성하고 있었다.


선배언니에게 첫째에게 사과한 적이 있느냐 물었다. 대답을 들어보니 사과라기보다 자기합리화에 가까웠다. 언니는 스스로 해결 중심적이고 논리적 사고를 가진 자기로서는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게 중요했다고 했다. 이해나 설명 이전에 감정에 대한 공감이 우선되면 얼마나 좋을지 싶어 안타까웠다.


공감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코치로서 고객들과 대화시에도 공감의 역량이 중요하다. 그런데 진실하지 않은 공감은 오히려 신뢰를 무너뜨리기도 한다. 정서적으로 지지하고 공감을 표현하는 일이 무척 어려운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어설피 흉내내는 공감의 말이 아니라, 우선 자신이 얼마나 공감하는 일이 여전히 서툴고 힘들다는 고백부터 할 필요가 있다. 어렵지만 노력하고 있다고,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사과를 담으면 좋겠다. 말로 하기 어렵다면 깜짝 방문하고 돌아갈 때 포스트잇에 글로 표현해보고 시치미를 떼고 있어 보는 거다.


첫째의 고유성을 무시하고, 전체성의 한사람이 되길 강요하는 건, 정서적 학대이자 폭력일 수 있다. 자력으로 대기업에 취업해서 코 베어간다는 서울에서 적응 잘하고 신나게 회사일을 하고 있는 아이. 무슨 걱정일까?


'다정도 병이라지만,제발 언니,믿어주셔요. 첫째는 언니의 우려와는 달리 그리 여려빠진 심성으로도 동료들과 원만한 관계 안에서 재미나게 살고 있어요.100년을 살아야할 아이들, 트랙의 1/3 도 못 달렸다오. 조금 더 지켜보고 기다려주기도 합시다. '


내일 딸 보러 서울로 간다는 언니. 반찬이며,홍삼정이며 여름 이불이라도 한채 챙겨갈 지도 모르겠다. 그 어떤 것보다 첫째는 언니의 인정 한마디, 수용 한그릇이 고프다는 것 잊지 마. 언니가 엄마니까. 백 사람의 칭찬보다 언니의 인정 한마디가 그리울 거야. 오피스텔에 올라가는 언니의 발걸음이 더없이 가벼웠으면ᆢ


#진성존재코칭센터 #진성코치 #육코치의100일작전





매거진의 이전글소리로 기억하는 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