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가난한 자는ᆢ
100-10 취약성을 드러내기
by 삶의 예술가 육코치 Jun 14. 2023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밥은? 남이 차려주는 밥. 만고의 진리라 여기나 자기가 한 요리가 제일 맛있다는 사람도 분명 있다. 해서 미각적 요소가 중요한 사람은 번외로 하고. 지난 토요일부터 남이 차려준 밥상만 먹고 다니니 여행이 주는 기쁨을 잘 누리고 있다.
말이 여행이지 실은 일하던 다른 날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주거지 겸 센터에서 경북 일대로 지역을 옮겼을 뿐, 유목민의 시간을 보내며 수행하고 있다. 연수를 참가하고 줌으로 교육도 듣고, 전화로 코칭을 하고, 스터디를 위한 자료 정리, 대면 코칭, 100일 글쓰기 루틴을 지킨다.
은퇴이후 최소한의 사회 생활만 하는 언니는 인터넷 설치를 하지 않았다. 언니집을 주 근거지로 하면서 하루쯤은 애로사항이 있었다. 그래서 그립던 사람들을 만나는 사이사이 카페에 남아 줌교육에 참여하고 전화기로 글을 썼다.
선비들의 단표누항의 삶이라 뻥치기엔 여전히 호화롭다. 자동차로 어디든 이동하며 필요한 물자를 수시로 공급받는다, 도처에 나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포진 했다가 영양보충을 확실히 해준다. 보충 정도가 아니라 영양 과잉의 상태. 노마드적 삶을 산다면이란 실험 정신을 일부 실천해봤다. '노마드 코칭'의 1주일 주유기가 멋진 꼴을 갖췄다.
처음으로 한가한 아침을 맞았다. 근처 공원으로 뛰고 걸을까 생각하다가 그냥 언니와 하릴없이 함께 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살림살이가 나만큼 서툰 언니가 동생을 위해 최선을 다한 밥상을 받고 기분이 환해진다. 누군가 나에게 마음을 기울이고 정성을 들이니 참 좋다. 언니의 사랑을 흠씬 받는 이 느낌이라니. 울 언니는 실은 철부지라서 사건 사고를 많이 쳤다. 뒷수습은 언제나 내 몫이었고 언니는 언제나 운좋게 생존했다.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실사편을 보고 있다. 언니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인생의 쓴맛을 톡톡이 본 후, 힘 다 빠지고 나서야 자신이 보이기 시작한 모양이다. 원망과 불평 불만, 짜증과 버럭을 오가던 언니는 어디 가고 없다. 명절에 모일 때마다 자기 참회가 이어진다. 덕분에 명절이 반가워질 지경이다.
고향 대구로 작년에 이사한 후, 언니가 훨씬 안정이 되었다. 상처와 오욕으로 얼룩진 서울 생활을 청산한 후련함과 단촐함이 삶속에 깃들어 있다. 매일 성경 통독과 묵주 기도를 올리고 아침 운동, 친한 친구들과 간간이 만나 정담을 나누는 정도. 집에 들어앉아 가만히 있는 게 엄마의 성격을 닮았다. 어찌나 깔끔을 떠는지 집이 반짝반짝 광이 난다. 결벽증은 아닐까 싶을만치.
'현주야, 어제 대학 동창이랑 통화하다가 내가 놀랐다. 내가 학교 다닐 때 걸핏하면 짜증내는 말투로 말해서 좀 그랬다고. 난 내가 그렇게 하는 줄 진짜 몰랐는데. 그 친구가 그런 말하는데 아차 싶었다. 그러고보니 예전에 다른 친구 딸이 우리집에 있었던 적이 있었잖아? 딸을 맡겨둔 친구가 딸 챙기러 한번씩 와서 내가 짜증을 잘 낸다는 거야. 그 소리 듣자마자 내가 언제 그랬냐고 버럭 화를 냈었지. 그 친구 왈 우리 딸도 그러더라해서 이것들이 나를 이상한 사람 만드네 불쾌했었어. 근데 어제 다른 친구에게 동일한 얘기들으니 내가 진짜 그랬나보다 싶더라. 모두에게 미안해지더라.'
그랬다. 언니는 걸핏하면 화내고 짜증내고 성질을 부렸다. 어렸을 때 내가 세상에서 제일 무서웠던 사람이 언니였으니. 그러나 조숙했던 나는 그런 언니를 숨죽이며 관찰했고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언니는 생존 모드로 실은 바락바락 악쓰지 않으면 안되는 약한 내면을 가졌다는 걸. 문학작품 속 숱한 캐릭터 중에서 빌런의 숙명을 가진 이들의 유약함을 언니는 닮아 있었다.
언니는 유년시절 엄마와 생이별하며 버림받았다고 생각했다. 장애인 오빠는 엄마랑 함께 살았는데 자기만 버려졌다 여겼다.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원망이 되어 버렸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 엄마집으로 와서 살게 되었지만, 자신은 주인공이 될 수 없었다.
존재도 몰랐던 어린 아이가 하나 달덩이처럼 웃고 있더란다. 자기만 이방인처럼 소외된 느낌. 함께 있어도 늘 외로운 마음이 사춘기 소녀의 주요정서였다. 유년기의 결핍은 이후 삶의 곳곳에서 구멍을 만들었다. 여리디 여린 엄마는 성질이 불같은 언니를 감당하지 못했다. 왜곡된 렌즈를 끼고 있으니 뭐든 삐딱하게 부정적으로 해석했다. 엄마에게 쏟아붓는 소리들이 얼마나 표독했던지. 같은 엄마를 두고 언니와 나의 평가가 완전히 달랐다.
엄마가 돌아가실 즈음에서야 언니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기 시작했고 우리 가족 한사람 한사람에게 사죄를 했다. 왜 자기는 진작에 그런 깨달음을 얻을 수 앖었을지, 진짜 자신은 너무 몰랐다고. 엄마 돌아가시고서야 새록새록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었음을 깨닫는다고. 이제는 세상에서 제일 존경하는 1위가 엄마이고, 2위가 동생 현주(나)란다.
우리 가족들은 기색을 감추거나 표정을 감추질 못해서 마음을 감추질 못한다. 지나치게 투명해서 속이 훤히 내다보이고, 멘탈이 탈탈 털린다. 이전엔 이런 나나 언니가 싫었는데 이제는 다르다. 그대로 드러나는 주요 신호를 환영하며 알아차림을 할 수 있으니ᆢ나의 고유성으로 잘 발휘하면 된다.
언니는 과거에 경험했던 두려움이 강렬해서 지금엘 머무르지 못한다. 더불어 또 그런 일이 일어날까봐 불안해서 여기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 'ᆢᆢ~았을 텐데'와 '~~까봐'의 문턱에서 발목이 잡혀 있다. 일상의 모든 행위에 이 망령들이 깃들어 있어서 강박 증세를 보이는 것들이 있다.
조급해지거나 자신의 통제 안에서 벗어나면 말소리가 빨라지고 톤이 바뀐다. '참아야지'가 아니라, 그런 상태에 이르렀구나를 알아차리는 일이 우선되어야 한다 '화가 올라오는구나. 그럴 수 있지'라며 호흡부터 고르고 나면 다른 국면으로 전환됨을 훈련하자고 권했다. 평정심을 유지하는 시간이 길어지도록 자신의 호흡으로 지금 여기로 돌아오라고 권유했다.
다정한 권유로 여겨졌는지 언니는 순하게 받아들였다. 마치 걸음마를 떼는 어린아이처럼 언니는 한발한발 다시 디딘다.
'근데,현주야. 성경 말씀에 마음이 가난한 자들은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라고 했잖아. 난 진짜 이해가 안된다. 경제적으로는 가난해도 마음만은 풍요롭게 살 수 있다고 하면서, 여기서는 마음이 가난한 자들이 하늘 나라를 가진다는 거야?'
언니야. 언제나 맥락을 살피자. 두 구절에서 말하는 마음이 다른 뜻을 가지고 있어. 앞의 것은 지식이건,욕망이건,물질같은 일체의 욕심을 내려둔 상태라서 마음이 가난해졌다는 것이고,풍요롭게 사는 마음은, 삶의 목적이나 의미,혹은 정신적 가치로서의 마음을 말하는 거라고 느껴져. 마음이라는 말이 워낙 범용으로 쓰이니 어떤 맥락인지 살피는 게 가장 중요해. 특히 성경은 비유로 넘쳐나거든.
'아. 난 정말 무식한가봐. 참 부끄럽다. 어찌 이리 총체적으로 어리석은지 모르겠다'
언니야, 기꺼이 물어보고 도움을 청하는 태도는 용기있는 일이야. 공자님께서 말씀하셨지. 不恥下問(불치하문 : 배우려는 데 있어선 아래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이라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는 것. 진정한 '앎'의 시작이야. 투명하게 취약성을 드러내준 언니에게 감사해. 투명하고 진실한 언니에게 감사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