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야,미안해ᆢ
100-11 길 위에서 띄우는 조사
by 삶의 예술가 육코치 Jun 15. 2023
뜻밖의 자리에서 어느 한때 가장 가까웠던 친구의 소식을 우연히 접했다. 하필이면 저 세상으로 건너간 소식이라니. 그래서였을까?몇년 전, 이유도 없이 그 친구 생각이 많이 났었다. 수소문해서 연락해볼까 했다가 전화한들 뭐할까 싶어 생각을 거둔 일이 있었다. 소식을 전한 이는 40여 년 전,중고등학생 시절 1년 선후배 사이로 친하게 지냈던 인연이었다. 달포 전에 나를 찾아내 만나게 되었다.
어린 날, 공통 주제를 찾고 싶었던지 학생회 친구들의 근황을 이리저리 나열하고 있었다. 후배는 고향을 떠나지 않았기에 학연,지연으로 얽혀 여전히 닿아있는 사람들의 얘기를 한참 늘어놓았다. 우리 성당을 넘어서서 범위가 확장되나 싶더니 그 남자애 얘기를 언급했다. 나와 그애(어린 날의 정서상 그애라는 표현이 가장 적합히다)의 사연도 모른 채, 얘기가 불거져나왔다.
그애와 나는 고등학생치고는 제법 드라마틱한 연애(?)를 했던 터, 무심하기 어려웠다. 체고 다니다가 부상으로 선수생활을 할 수 없었던 그애는 실업계 고등학교를 전학했다. 엘리트 체육 교육을 받았던 그애는 공부와는 진작에 담을 쌓았다. 그뿐일까?강압적인 아버지에 대한 반항으로 소위 깡패짓을 하고 다녔다. 문제아로 분류된 그런 인물. 삼청교육대로 끌려가다 아버지가 빼내기도 했었다.
고등학교 때, 매년 천주교 신앙 동아리에서 학교별 대항 배구대회가 있었다. 우리 학교의 회장 언니의 친구였던 그애는 우리 팀을 훈련시켜주겠다고 어느날 나타났다. 장신에 부리부리한 눈을 가진 한참 올려다봐야하는 고목같은 사람이 나타났다. 위엄을 발휘하고팠는지 여학생들 앞에서 긴장했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인상을 푹 쓰고 맹렬하게 훈련을 시켰다.
다른 친구들이나 선배들은 카리스마에 눌려 쩔쩔매는데 난 짜증이 났다. 지가 뭔데 인상쓰며 이래라 저래라 하지? 시합 당일, 훈련한 보람이 있어 약체였던 우리가 결승까지 진출하는 이변이 생겼다. 신이 나고 파이팅이 넘쳐서 흥미진진한 게임을 펼쳐갔다. 상대는 강력한 우승후보였기에 역부족이었다. 거의 10-0의 상황에서 우리가 따라집기 시작했다. 한점 한점 쌓아올렸다.
경기를 치는 이도 보는 이들도, 소위 감독노릇을 한 그애도 손에 땀을 쥐고 입술이 타들어갔다. 급기야 10-10 동점을 만들었다. 흥분의 도가니로 엎치락뒤치락 우리와 상대는 몇번이나 듀스를 이끌며 관중을 흥분시켰다. 그런 극적 흥분을 겪어본 적이 없었기에 얼떨떨했다. 몇번을 듀스를 이끌다 결국 우리가 졌다. 너무 늦게 피치를 올려 소진했던 터. 너무 아까워서, 듀스로 두점 때문에 지게 되었으니 분해서 엉겨 붙어 울었다.
전장을 함께 치른 동지애 덕이었을까 그애가 조금 친근해졌다. 그런데 나는 몰랐지만 그애는 진작 내게 연정을 품었던 바. 더더욱 최선을 다해 우릴 훈련시켰던 상황이었다. 그때로부터 그애의 구애가 시작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내가 마음을 허용해서 사귀게 되었다. 이제 내가 그애를 조련하여 공부시키는 걸 조건으로. 무식한 놈과는 친구할 수 없다고 내가 하라는 공부하면 만나준다고. 대학 노트를 반 접어 빼곡히 영어 단어와 숙어를 적어 다음 만날 때까지 외워오게 시켰다.
술ㆍ담배는 물론 싸움박질만 하고 다니던 애가 공부는 또 뭐며, 클레오파트라도 아닌 애에게 잡혀 꼼짝못하는 코미디가 연출되었다. 그애의 친구들은 수시로 악마의 속삭임을 들려줬지만 그애는 꿋꿋이 내 옆자리를 지켰다. 내가 팔이 인대가 늘어나서 깁스를 하고 다닐 때는 아침 저녁으로 내 가방을 들어주며 보호해줬다. 어울려다니던 무리들에게서 빠져 나오려고 직싸게 터졌다는 소문도 들리고, 친구들과 있다가도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꺼내서 끊임없이 중얼거린다는 제보도 있었다.
나는 그애 앞에서만큼은 콧대 높은 여왕처럼 군림했다. 영어 발음조차 잘 모르던 애가 뒤늦어 공부하지니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그래도 얘는 최선을 다했다. 물론 단박에 대학을 붙을 순 없었다. 군대 영장을 미뤄야했으니 일단 전문대를 들어가서 반재수를 했다. 고3이 된 나와 함께 대학을 가겠다고. 그애는 캠퍼스 커플이 되어 함께 하겠다는 열망이 그득했다. 그러나 나만 붙고 그애는 떨어졌다.
그애는 오로지 나와 함께 학교를 다니고싶어서 다시 3수를 해서 결국 같은 학교에 붙었다. 그러나 나는 그애가 합격 통지 받기를 기다렸다가 이별을 통고했다. 날벼락을 맞은 그애는 한참을 술로 방황을 했다. 그애는 내가 대학 가서 자기보다 더 잘난 사람이 생겨서 변심한 줄 오해했다. 그러나 나는 사랑하는 관계에서는 결벽증에 가까울 정도로 신의를 중요하게 생각했고 진실해야한다는 신념이 있었다.
그애는 자기가 초라해보일까봐 자신이나 자신의 가족,집안 내력 등을 포장했다. 나는 내가 취약한 약점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투명하게 밝혔는데 그애는 그러지 않았다는 게 용서가 되지 않았다. 그런 조건이 붙어야 내가 만족할 거라 생각했다면 더더욱 나를 잘못 본 거였다. 지금이었다면 어땠을까? 별반 다르지 않았을 듯하다. 있는 그대로 솔직하고 순수한 상태로 서로 앞에 섰어야했다.
그애는 주변사람들을 동원해서 내 마음을 돌리려 애썼지만 결국 무위로 끝났다. 한 성깔하는 나는 절대로 돌아보지 않았다. 일년을 꼬박 앓았단다. 결국 군대를 갔다는 소릴 들었다. 4학년 여름쯤 그애의 동생에게서 형이 국군통합병원에 입원해있는데 누나 한번만 만나주라고 간청을 했다. 세월도 흘렀고 아프단 소리에 마음 약해져 가봤다. 도저히 널 못 잊겠으니 자신을 받아달란다. 난 새로운 남자친구가 생겨서 안되겠다고 매몰차게 거절했다.
이후 듣는 풍문에 대학원까지 가고 모교에 강의까지 했단다. 나중에는 개인 사업도 하며 잘 나간다 소리도 들었다. 또 조금 지나서는 하던 일이 잘 안 풀려 어려워졌다는 소리도 들었다. 이 후배애는 그애 소식을 기어이 전하려고 나타난 걸까? 그애의 누나가 '현주가 너무 매몰차게 끊어서 너무 충격이었던 듯하다. 그 덩치 큰 놈이 넋이 나가서 울면서 시간을 죽이고 있는 거 보니 기가 막힌다. 한번만 만나서 좀 달래주면 안 되겠느냐?' 했던 장면이 떠올랐다.
'미안하지만 차라리 아주 못 된 기집애라고 각인되어서 미련을 갖지 않게 해주는 게 예의라고 생각했어요. 지금도 마음이 변함이 없어요. 죄송해요. 그리고 그애에게 미안한 마음은 그애에게 뺨 햔대 맞은 걸로 대신할게요'라고 일고의 여지도 없게 단호하게 끝을 맺었지.
휘리릭 봉인했던 책의 몇십쪽을 단숨에 넘긴 기분이다. 작년에 죽은 친구에 이어 그애까지. 이제 죽음이 멀리 있지 않다. 나는 얘기들을 횡설수설 늘어놓고 있는 걸까? 어린 날, 의도와는 달리 그애에게 큰 멍자국을 남긴 건 아닌지 새삼 감상에 젖게 되는 건 뭘까?그애가 가끔 순간 숨을 멈치늣하며 가슴 답답해하던 모습이 있었다. 호흡을 가다듬으며 숨을 고르면서,하도 맞아서 그렇다고 했었다. 그애에겐 첫사랑이었던 나도 일격을 가했던 건 아닌지. 그애에게 보내는 애도치고는 너무도 밉깔스런 수작 아닌가?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무겁다. 끝내 나는 휴게소 마당에서 이러고 있다.
친구야, 미안해. 생략한 모든 아픔에 대해서도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