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그들처럼, 그들도 나처럼

100-12 길에서 만난 사람

6일간 바깥을 떠돌다 돌아왔다. 몇 날은 역사 속 인물들의 삶을 더듬으며 지금의 나를 재해석했다. 나머지 날들엔 멀리는 40여 년 전 인연으로부터 1년이 채 되지 않은 고객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을 만나며 살아온 이야기를 채집했다. 과거와 지금이 씨줄과 날줄이 되어 무늬를 만들어가는 대화가 흥미로웠다. 내 고향 사람들, 과거의 기억에 머물러 있던 사람들의 지금을 사아간 이야기. 끊임없는 내러티브가 펼쳐졌다. 그들의 박제된 시간 안에 있는 나에 대한 기억들. 지금껏 관계가 이어졌음은 좋은 기억이 더 많아서였겠지. 그들이 기억하는 나, 지금 비쳐지는 나, 실재하는 나와는 완전 딴판이어서 기억의 왜곡이 무섭구나 싶었다. 그들이 하는 말들을 가만 들으면서 내가 기억하는 나, 기억되고 싶은 나를 들여다보게 되었다.



코로나 19 초기 대구 경북 지역을 둘러싼 흉흉한 기운을 기억한다. 그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버텨내었다. 다행스럽게도 내가 만난 그 모두는 삶을 적극적으로 수용했고 노력을 기울이며 현실을 타개해나갔었다. 여행사를 운영하던 친구는 여행업을 하며 쌓았던 신뢰 덕에 호텔 방역 아르바이트를 하며 버텼다. 사장 체면을 따지고 있었으면 못할 일이었으나 가장으로서의 무게를 버리지 않았고 앞으로 살아갈 창창한 날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지난 달에 제주에서 여행 이벤트를 멋지게 치러냈단다.



남편이 한의원을 하는 동생은 어려움을 함께 이겨나가느라 한의원에 일을 도우러 나간단다. 평생을 전업주부로 새초롬하게 살았던 애가 시장통의 사람들에게 비위를 맞춘다니. 상상하기 힘들다. 친한 친구는 손녀가 생후 7개월만에 수술을 14차례 치렀단다. 사돈이 외국에 있으니 며느리를 도와줄 처지가 아니다. 친구가 서울로 오가며 병구완이며 뒷바라지를 했단다. 이제 많이 좋아져서 그것으로도 감사하단다. 손녀딸 둘을 위해서 친구는 아이 패드 그림을 한땀 한땀 그려내어서 세상에 두 권만 있는 그림책을 완성했단다. 여전히 순수한 친구는 그런 자신이 대견하기도 하고 할 수 있는 뭔가가 있다는 걸 기뻐했다.


학습지 선생님을 하고 있는 후배 둘은, 자신들이 만나고 있는 회원들에 대한 애정을 유감없이 쏟아놓는다. 통제하고 관리하고 성과와 연결한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진심으로 기다려주는 선생님이 되기 위해서 노력해야겠다고 또 다진다. 중국어 학원을 할 때 학생들로 왔던 이 친구들의 순수한 심성이 여전해서 안심이 되었다. 여성학을 하고 있는 페미니스트 동생은 페미니스트 공동체 안에서도 소외되거나 배제되는 이들이 없도록 마음을 기울이고 있었다. 모두들 눈에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무엇으로도 측량할 수 없는 삶의 가치를 위해 움직이는 그들이 참 가상하다.



그런가 하면 날라리의 삶에서 환골탈태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고객님. 공부하는 즐거움을 누리고 곧 있을 중개사 시험에 바로 붙을 것 같다며 자신감을 말한다. 죽고 싶다고 지워버리고 싶었던 인생을 새로운 역사로 써가는 기쁨을 환한 얼굴로 전한다. 인상이 확 달라졌음이 확연하다. 나이 먹어가며 얼굴에 책임지라고 하는 말들이 그저 생겨난 게 아니다. 그 사람의 가치관, 세상을 보는 틀을 드러내는 심상, 자주 짓는 표정 등이 얼굴의 모습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새긴다.



친구 남편은 은퇴 후 젊은이들이 있는 회사에 다니는 시니어가 되었다. 일주일에 하루만 출근해서 팀원들과 점심 먹고 차를 마시며 가볍게 일에 대한 방향을 잡는단다. 서울로 다녀야 하니 고단할 만도 한데, 그 출근길이 얼마나 좋은지 콧바람이 절로 난단다. 전혀 다른 세계의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도 재밌고, 젊은 친구들과 함께하는 시간도 즐겁단다. 동료 시니어 둘이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밥과 차를 사준단다. ‘아, 이렇게 서로 마음을 열고 교류하면 되는구나. 누가 MZ 세대들이 어떻고 저떻고라는 거지?’ 새삼 배우는 게 많단다.



심지어는 팀장은 여장까지 하는 생물학적 남성이란다. 경상도 보리 문둥이의 보수성이 어디 가겠는가? 처음에는 너무 당황해서 보는 것조차 불편했단다. 그러나 일이면 일, 관계면 관계에 있어서 천재성을 발휘하는 그를 보면서 참 멋지더란다. 젠더의 구별로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팀장을 참 좋아하게 되었단다. 철학자 레비나스가 얘기하는 ‘얼굴성’이 바로 이 상황에 쓰일 수 있다. 누구도 훼손할 수 없는 고유성으로서의 얼굴을 대하면 나의 외재성이 확장되는 때이며 타자성을 발현하는 무한의 순간이 된다. 혐오나 차별은 전체성으로 상대를 제한할 뿐만 아니라 나 자신의 무한성마저 제한하게 된다.


갈등이 첨예할수록 ‘우리 얼굴 보고 만나서 얘기하자’라고 말할 용기를 낸다면 대부분의 상황은 다른 국면을 맞는다. 대면의 상황에서 언어로 대화를 나누기 시작하는 일이 다원성을 품는 일이자 상대를 환대하는 일이다. 60대 중반 친구 남편의 편견을 걷어낸 이야기가 참 반가웠다. 적어도 그는 ‘성소수자들은 다 이상한 사람이다’라 규정화할 뻔했던 오류를 바로 잡지 않았을까? 내가 가진 전체적인 폭력성은 무엇이 있을지 생각하게 되었다. ‘60대 중반의 성공한 경상도 남자의 보수성은 절대 변하지 않을 거다’라고 전제하지는 않았는지?


우리는 일상에서 걸핏하면 일반화하고 생략하며 왜곡한다. 그 프레임이 너무도 자연스러워서 말하는 자도 듣는 자도 의의를 달지 않는다. 촘촘하게 들여다보고 사유하지 않아 함부로 규정짓고 낙인을 찍고 분류해왔다. 그런 횡포 덕에 내 삶도 많은 부분에서 움츠러들었다. 내가 고향인 대구를 싫어하는 주요 이유이기도 하다. 전투력이 약하니 맞서 싸울 수는 없으니 슬그머니 꽁무니를 뺐는지도 모르겠다. 이번 여정에서는 많이 들었다. 나의 노마드 코칭의 첫 꼭지를 잘 ‘들어보기’로 마무리했다. 잘 듣는 것으로도 배움이 컸다.



이제 듣는 귀를 가진 나는 내면의 저항도 덜해졌다. ‘말’ 자체에 매달리기 보다 말하고 있는 ‘사람’에게 주의를 기울인다는 건 무척 근사한 일이다. 그들의 가슴이 하는 말을 들었고, 말해지지 않는 것들의 가치, 보이지 않는 시간에서의 노력들이 느껴져서 모두가 사랑스럽다. 다들 그렇게 애쓰고 있었구나. 너도 나처럼, 나도 그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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