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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의 예술가 육코치 Jan 07. 2019

고도를 기다리는 시지프스 6

더 아픈 사람이 아픈 사람을 안는다

 

 

상처가 많은 사람들은 상처로 힘들어 하는 타인들의 고통을 모른 체하는 일이 어렵다. 아픈 상대가 말하는 액면 그대로를 믿을 뿐이다. 매번 비슷한 이유로 이용당하면서도 그 습성을 떨치지 못한다. 그가 겪었을 고통에 대한 공감이 먼저 일어나서 의심 자체를 하지 않게 된다. 또 한편으로는 자신에 대해서 터무니없는 자신감이 늘 있었던지도 모른다. ‘그래, 네가 오죽하면 나 같은 사람에게조차 그래야 하니? 내게 취할 게 있음 취해가라. 줘버리지 뭐.’라고 호기를 부릴 만큼 회복탄력성이 있기도 했다. 동정심이 유별나 한 편으로는 그게 팔자인가보다라고까지 합리화를 했다. 나 한 사람의 삶만 들여다봐도 드라마틱하고 스펙타클한 일들의 연속이었다. 나의 경험을 미뤄봐서도 인간사에서 특이하고 기이한 일들이 얼마든지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타인에 대한 판단 이전에 무조건적 수용치가 높은 편이다. 갖은 고통을 헤쳐 나가는 안쓰러운 동지들에 대해선 더없이 너그러워진다. 더구나 나의 아킬레스건인 ‘엄마’라는 코드로 내 마음을 흔들면 대책 없이 무너진다. 그는 갓난쟁이였을 때 엄마로부터 버림받았다.


유독 우여곡절을 첩첩이 겪고 사는 나를 안쓰러워 하던 친구가 있었다. 어느날 나를 끌고 친구가 점보는 곳엘 데려 갔다. 점을 보는 양반의 첫 마디가 엄마를 끊어내지 않으면 평생 힘들다며,진심으로 독립하라고 엄포를 놓았다. 나는 별 희한한 사람이라며 절대 그 말을 믿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나도 알았다. 그 말의 의미가 뭔지. 어린 나이에도 나는 엄마가 안쓰럽고 아파서 내가 엄마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언제나 엄마를 중심에 두고 내 삶의 방향을 설정했을 뿐이다. 중국 진나라 시대 ‘환온’이라는 장수가 부하들을 이끌고 촉나라로 가고 있었다. 어느 숲을 지나던 중,그의 부하 한 명이 숲에서 새끼 원숭이 한 마리를 발견하였다. 그저 데리고 놀 생각으로 그 새끼를 잡아 배를 타고 강을 건너갔다. 강 건너 물을 사이에 두고 새끼가 잡혀가는 광경을 대책 없이 바라보는 이가 있었다. 어미 원숭이는 애절하게 울부짖으며 배를 따라 백리 길을 좇아 왔다. 배가 강기슭에 닿자 새끼를 찾겠다고 죽을힘을 다해 배로 뛰어들었으나 죽고 말았다. 부하들이 어미 배를 갈라보니 토막토막 장이 끊어져 있었다는 유래에서 애간장이 끓는다,단장이라는 표현이 나왔다. 우리 엄마와 나는 어쩌면 평생 애간장을 서로 녹아내리는 슬픔을 공유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녀는 부모님과 오빠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개성의 함남의전 약학과를 다니고 있었다. 6.25전쟁은 내 삶에까지 깊이 박혀있었다. 지주였던 그녀의 부모님은 이념의 소용돌이에 두려움이 가득했다. 난리 통에 귀한 외동딸이 어떤 욕을 당할지 모를 일이었다. 서둘러 일본 동경으로 유학 가있는 아들들에게 동생을 돌보라고 전갈을 보냈다. 부모님의 뜻이 강건해서 그녀는 홀홀단신 오빠들을 찾아 피난길에 들어섰다. 덕망있는 집안의 막내딸로서 삶이 아름답기만 했던 그녀는 우여곡절 끝에 간신히 경주에까지 이르렀다. 이제 부산에만 무사히 도착하면 오빠들을 만나는 일은 문제도 아니라고 꿈에 부풀었다. 현해탄을 건너기 위해 잠시 유하게 된 그곳은 새로운 국면을 펼쳤다. 한 중년 부인과 통성명을 나누게 되었다. 이 부인은 약국을 경영하고 있었는데 약사가 무단결근하여 애를 먹고 있었다. 피난 중인 여학생이 약학과 학생인 걸 알게 된 중년부인은 사람 구해질 때까지 약국 일을 좀 봐달라고 통사정을 하게 된다. 여대생은 마음이 약해져 제안을 수락하고 말았다. 어차피 배를 기다리려면 몇 날은 있어야 하고,차라리 안전할 수 있겠다 싶었으리라.


그 약국에는 주인의 조카 청년이 약국 일을 거들고 있었다. 경주 한 유지 집안의 장손이었던 그는 종가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그러나 지병이 있어 요양 차 고향집에 돌아와 있었던 참이었다. 소일거리로 고모네 약국일을 돌보고 있었다. 그는 한 눈에 임시로 와있던 여대생에게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몇 날을 약국에서 그녀를 훔쳐보았다.  연정을 주체하지 못한 그는 상사병을 앓게 되었다. 그 정도가 심해서 시름시름 드러눕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녀가 일본으로 떠나갈 시간이 어김없이 찾아왔으므로. 집안에서는 큰일이다 싶어 문중 회의까지 열었다. 그 집안 어른들은 여대생을 설득하여 일본으로 가지 못하게 했다. 앞날에 대한 불안감도 한 몫 했을 터다. 또 그 청년의 사람됨이나 인격에 믿음이 갔던 여대생은 결국 주저앉고 말았다. 장차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가늠조차 못한 채. 그곳에서 결혼을 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상냥하고 천상 여자였던 그녀를 집안 어른들 모두 애지중지하였다. 안정이 되면 일본에 있는 오빠들에게도 찾아갈 거라고 기대하며 행복한 단꿈에 젖었다. 그러나 그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아들까지 떡 하니 낳아서 문중에 체면을 세웠다. 그런데 몇 달 지나지 않아 아들이 열병을 앓다가 뇌성 소아마비에 걸려 버렸다. 예방주사 같은 게 아예 없었고 미처 상상도 하지 못한 재앙이 닥쳤다. 갖은 노력을 했으나 평생 장애인으로 살아가야 했다. 뇌병변 1급 장애인으로 중증 판정을 받았다. 매일 아들을 향한 애끓는 마음을 감추고 둘째인 딸을 낳았다. 그래도 경제적으로는 큰 고통없이 편안한 일상을 누리며 살았다. 그런데 큰 시련은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벌어졌다. 절친한 이웃에게 집을 담보로 돈을 빌려주었다. 그들은 빚 갚는 약속을 한 시일이 다가오자 야반도주를 해 버렸다. 남편이 별다른 경제활동을 하지 않았는데 이런 일까지 맞으니 그녀에게는 날벼락이 따로 없었다. 시어른들의 지원으로 살았으니 이 일은 어떻게든 스스로의 힘으로 수습해야만 했다. 수소문을 한 끝에 그들이 대구에 산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녀는 물불 가리지 않고 장애인인 아들만 들쳐 업고 무작정 대구로 향했다. 빚쟁이를 찾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이었을까? 


간신히 찾아낸 빚쟁이는 돈으로 변제할 상황이 아니었다. 자신들이 운영하던 당구장을 물려줌으로써 빚을 대신했다. 뭐라도 해서 생계를 이어가야 한다는 생각에 일을 시작했다. 당시 당구는 소위 내로라 하는 사람들이 즐기던 여가 활동이었다. 공무원,사업가,대학생들이 주류를 이루며 사교의 장이 펼쳐지던 남성 전용 공간이었다. 경북 도청 앞에 있던 당구장에는 많은 남자들이 드나들며 그녀를 향해 해바라기를 했다. 지적이고 미모가 뛰어났던 그녀는 자연스레 화제의 중심에 있었다. 여기저기서 유혹의 손길이 뻗쳤다. 그녀의 철옹성은 쉬이 무너지지 않았다. 오로지 아들의 병을 고칠 방법은 없을지만 생각했다. 그러나 경주의 시댁 쪽으로 흉흉한 소문이 흘러들었다. 남자들을 상대로 하는 일을 하고 있었으니 온갖 억측이 난무했다. 옆에서 간병해줄 사람이 필요했던 남편은 가까운 간호사를 의지하게 되어 핑계가 필요했다. 


결국 일방적으로 이혼을 당한 채, 장애인 아들을 키우며 이를 악 물어야 했다. 그런데 그녀를 세상은 가만 두지 않았다. 또 한번의 소용돌이 속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냥 운명의 장막이 덮어 씌였다.’ 라고 훗날 그녀는 그 순간을 표현했다. 자유당 시절 정치에 입문한 지방의회 최연소의원과 특별한 관계가 되었다. 대구는 유교적 풍토가 강해서 전통적 사상이나 봉건적 이념이 지배하던 곳이다. 지금도 그런 지역색이 사람을 숨막히게 하는 순간들이 많다. 그런 곳에서 부적절한 관계의 혼외 자녀를 갖는다는 것은 재앙 그 자체였다. 정적들이 언제나 그 의원을 향해 일전을 불사하던 시절이었으니 선거철만 되면 그녀는 다양하게 시달렸다. 모녀는 노출되어서는 안 되는 평생 죄인으로 숨어 지내야 했다. 아들로 태어났으면 운명이 달라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 평범한 ‘김이박최’ 같은 성씨이기만 했어도 심정적으로 훨씬 자유로웠겠지. 창살없는 감옥에 갇혀 허락된 자유만 누리는 삶이 그렇게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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