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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의 예술가 육코치 Jan 07. 2019

고도를 기다리는 시지프스 7

비밀,그 집요하고도 은밀한 속박


특별한 출생배경을 타고 난 나. ‘비밀 주머니’를 차기 전까지는 그 모든 것이 완벽했다. 햇살 나리는 기분 좋은 아침, 모차르트의 ‘아이네클라이네나하트뮤직’ 선율이 귀전을 간지럽히고, 코끝에는 김치찌개내음이. 살포시 눈을 뜨면 칙칙 돌아가는 압력밥솥을 앞에 두고 책을 읽고 있는 엄마의 실루엣이 어른댄다. 신나는 학교생활,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던 나는 발표도 곧잘 하고 선생님들께 사랑받았다. 거리낄 게 없이 룰루랄라 콧바람이 절로 나던 유년 시절을 보냈다. 열한 살 즈음,시장통에 옹기종기 모여든 아이들은 신이 나서 자랑을 시작했다. TV 산 얘기,전화 들여온 얘기,아빠가 미군부대에서 가져온 미제 과자 이야기,처음 먹어본 초콜릿에 관한 얘기 등등. 가만 듣고 있던 나도 뭔가 자랑해야 한다는 초조함이 있었다. ‘나는 오빠 언니랑 성(姓)이 다르다. 언니 오빠는 조씨야.’라고 순진한 소리를 뱉고 말았다. 특별한 것이 자랑인 줄 알았던 모양이다. 쏴해지던 그 순간, 지금도 또렷이 잡히는 그날의 공기. 냉랭한 분위기를 감지한 찰나, 한 언니의 얼굴에 서린 조소를 보았다. 아,뭔가 잘못 되었구나 싶었지만 이미 모든 게 늦어버렸다. 아니나 다를까  ‘야,그게 자랑이야?’라며 야유가 쏟아졌다. 


순간 오래도록 갸웃했던 의문들이 한꺼번에 풀렸다. 엄마의 헤아릴 길 없던 눈빛이 오버랩 되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결코 노하거나 슬퍼하지 말라”던 푸쉬킨의 문장이 떠올랐다. 언니 문집에서 훔쳐본 이 문장이 괜히 멋져 보여서 베껴두고 외워뒀었다. 거짓말처럼 그 의미를 통째로 깨닫는 순간이었다. 집을 향해 달려가는데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나는 주체 못할 눈물을 훔치며 맹세하고 맹세했다. ‘울 엄마를 슬프게 만들지 말아야지’ 비밀 주머니를 찬 소녀는 엄마의 눈과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세계는 빛과 어둠이라는 이중의 세계가 공존한다는 걸 느꼈다.  <소공녀><십오소년표류기><삼총사><작은 아씨들><키다리 아저씨> 같은 책들을 읽으며 타자로서 순진하게 울고 웃던 세계만 존재했다. 각종 위인전과 양서를 읽고 자유교양 대표 선수로 학교의 명예를 드높이던 나는 대척점에 있는 세계의 문학작품들을 탐닉하기 시작했다. 세상의 이치를 단박에 깨달은 듯 고뇌하는 주관적 인간으로서 이면의 세계를 방황하고 다녔다. <이방인><전쟁과 평화><부활><자기앞의 생><데미안><테스><주홍글씨><안나 카레리나><오만과 편견><동물농장><죄와 벌> 같은 작품들을 읽어 나갔다. 인간사의 고통과 슬픔의 세계에 진입하여 알을 깨고 나올 여정의 사색을 시작했다.


‘옳지 않은 배경’을 희석시키고 죄를 씻어야 하는 형벌을 담당해야 했다. 유난스럽도록 한자 공부를 시키던 엄마의 집착이 무엇을 말했는지 알 것 같았다. 한문 공부를 하면서 성현들의 좋은 말들을 통해 ‘나’를 수양하고 고상한 인간으로 거듭나야 했다. 다행이 한자 공부는 소녀의 흥미를 끌어 평생의 자양분이 되었다. 엄마는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성을 바탕으로 살았다. 세상을 원망하는 법이 없었고 주어진 세계 안에서 정신적 고양을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는 분이었다. 전시회,음악회,영화관으로 어린 나를 데리고 삶의 지평을 넓혀 주며 마음 부자로 사는 법을 알려주셨다. 오빠는 얘기를 할라치면 얼굴이 얼그러지면서 한참 용을 써야 한다. 말을 더듬고 큰 소리로 말하는 오빠와 나누는 책,음악,그림,역사 얘기도 소녀 삶의 중요한 자산이었다. 두 사람은 정신적 유산인 ‘고독력’을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를 보여준 멘토인 셈이었다. 힘든 삶을 지탱하고 주어진 환경 안에서도 어떻게 창의적으로 잘 살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더불어 세상의 가치는 일반적인 잣대만이 있는 게 아님을 몸소 가르쳤다. 


나는 정신적인 풍요와 풍부한 정서적 감성을 습득하여 또래들과는 또 다른 의미로 특이한 역량을 발휘하게 되었다.  사춘기적 감성 고민을 달고 사는 친구들이 상담하고 함께 어울리고 싶은 성숙한 아이가 되었다. 그러나 엄마는 숨어서 쥐죽은 듯 사는 게 습이 되어 나의 끼와 열정을 누르려고 했다. 기질적으로 활달하고 솔직하던 아이를 고상하고 음전하게,심지어는 평범하게 자라도록만 했다. 체념을 일찍 배워버린 아이는 뭐든 적당히,나쁘지 않은 만큼만 사는 법에 적응하려 애썼다. 공부도 열심히 하지 않고 꿈이나 목표 따위는 한 번도 세워보지도 않고 지냈다. 오로지 엄마를 슬프게 하지 않으면 내가 할 일은 다 한 사람마냥 적당히 살았다. 나의 출생 배경은 나를 합리화해주는 좋은 도구가 되어갔다. 공부도 하고 싶지 않았고 의욕적으로 살아야 할 이유들을 찾지 못했으므로 그걸 방패삼아 나는 언제나 숨을 수 있었다. 마음 속에서 자라는 모순과 외로움은 꽁꽁 감춘 채,더없이 명랑하고 더없이 긍정적인 나날을 보냈다. 적어도 껍데기 상으로는......


주머니 속 송곳은 어떻게든 삐져나온다. 나는 냉정과 열정,비범과 평범을 오가며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다. 상처를 각인시킬 일들은 삶의 곳곳에 복병처럼 숨어있었다. ‘형제가 어떻게 되느냐?’고 묻는 평범한 물음에 멈칫 호흡을 가다듬어야 한다. 호적상의 형제를 말해야 하는지,실지로 함께 살고 있는 형제를 말해야 하는지. 호적상으로는 언제나 동거인에 불과했던 나는 가족 가운데에서도 언제나 이방인이었다. 지금은 인권보호니 해서 집주소조차 조심스레 물어보고 정보 공개에 극히 민감하다. 그 당시엔 사소한 행정 처리에도 주민등본은 기본이고 호적등초본 제출이 기본이었다. 요식 행위에 불과하게 요구하는 서류작업이 누군가에게는 상처를 건드리는 폭력이 되고 있는 걸 짐작할 수 있을까? 다니고 있는 성당에서조차 혼란은 마찬가지였다. 하느님을 경배하고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순간 태고적 원죄는 사해진다. 그러나 십계명을 어긴 사람의 자녀라는 딱지는 여전했다. 원죄에 또 다른 원죄를 얹고 있으니 십계명을 외울 때마다 꼬박꼬박 상기되던 낙인들. 그에 더해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니건만 장애인 오빠를 내가 평생 책임져야 된다고 결의를 다진 중압감. 이중 삼중의 비밀이 덧대어져 ‘나’의 페르소나는 웃고 울었다. 참다운 ‘나’는 누구인지를 고민하기 전에 대상들에 따라 주어진 역할로서의 ‘나’만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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