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만인가?바다 한가운데로 나와본 지가. 십 년은 더 되었겠다. 흐릿한 하늘을 인 바다. 바다 멍. 동해 바다로만 나가봤는데 서해는 처음이다. 바람은 부는데 풍랑이 높지 않아 더없이 편안하다
'우현, 밧줄을 풀었다 감았다. 시선은 멀리 전방을 향해.'
펄럭대는 깃발. 죄고 당기고 . 크루를 자처한 이들의 수고 덕에 나는 여전히 한가롭다. 안전지대. 그들을 믿는 마음이 없다면 내가 이리 느긋할 수 없을 터.
'좌현 크리어, 전방 아무 것도 없어요.'
일렁일렁, 요람에 몸을 맡긴 어린 아이마냥 편안함이 깃든다. 요트와 카페는 주인하면 안된다. 주인 친구가 갑. 고객 혹은 게스트 놀이가 제일이다. 시간이 많이 지났다. 나와 친한 동생들에게 딩기 요트를 가르쳐주고, 해지는 한강 유역을 요트로 드라이브시켜줬던 후배는 진작 요단강을 건너 갔다.
숱한 인연들이 흘러간다. 그대가 아니면 죽을 것 같던 그 사랑도. 의기투합하며 죽을 때까지 함께하자 맹서하던 우정도. 흘러간다. 흘러간다. 흘러간다. 잘 보내고 잘 맞을 뿐. 시절 인연의 바퀴 속에 만나고 헤어지고ᆢ
지금 여기에.
바람. 바람, 바람.
좌현, 우현.
현실과 이상
상상과 몽상
요트의 머리가 오르기 시작한다. 비가 오려는 모양. 해질 때까지 있었으면 싶었는데. 이 역시 순리에 따를 일. 돛을 거둘 타이밍. '척' 둔탁한 소리. 돛이 어딘가에 걸린다. 선장은 이제 눈으로는 잘 보이지 않으나 소리로 기억한다. 단박에 알아차리고 크루에게 주의를 준다.
세일링을 하는 동안. 선장은 감각의 레이더를 활짝 펴고 오감을 다 활용해서 요트를 다룬다. 연륜이 무언지 보여주는 대목. 고수의 임재.
요트를 탄다면 일반인들이 갖는 오해. 다들 영화나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다. 손님으로 초대받은 지금같은 경우가 아니라면, 요트를 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알아서 제몫을 해야한다. 엔진으로 가는 때가 아닐때 끊임없이 왼쪽 오른쪽을 타고 앉아 요트의 균형을 잡는다. 우아한 백조의 물밑 발길질.
요트로 장거리 항해를 하는 이들이 한결같이 주체로서 몫을 해내는 장면은 뭉클하다. 특히나 바다 한가운데서 풍랑을 만나는 순간, 비바람을 덮어쓰며 그 시간을 함께 난다.
우리 인생길도 마찬가지가 아닐까?함께 하되 전체주의에 빠지지 말 것. 합력은 이루되 개별의 존재가 주체로서 자기 몫을 살아낼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