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100-40 호암미술관 <한 점 하늘 김환기>전시회를 다녀오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아, 엄마다. 엄마, 와~~ 엄마 오늘 50대가 된 것 같네.’

새벽녘 다시 깜빡 잠이 들었을 때 엄마 꿈을 꿨다. 돌아가신 후 꿈에 나타난 건 몇 번 되지 않는다. 그제, 어제 내가 허공에 대고 엄마를 여러 번 부르며 대화를 한 덕인지 단번에 응답을 주셨다.


엄마는 성장을 차려 입고 외출했다가 돌아오셨는데 웬일로 화장도 하셨다. 꿈에서 깰 즈음엔 엄마가 내 침대 옆자리에 누워 계신 걸 확인하며 방을 나왔다. 엄마가 즐겨 입던 홈드레스를 입은 채 편하게 주무시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내가 보였다. 그와 동시에 잠에서 깼는데 장대비가 쏟아지는데도 편안함을 느꼈다.



용인 호암 미술관으로 노마드 코칭을 가는 날. 오늘부터 10회기 세션으로 진행하게 되는 고객의 첫 세션이다. 다회기로 코칭 받는 분에게는 1회의 노마드 코칭을 해드리는데 라포 형성은 물론이고 장소는 고객에 따라 바뀐다. 오늘은 문화 예술을 사랑하는 분이라 호암 미술관의 <한 점 하늘 김환기 전>으로 모시기로 했다.



집을 나서기 전, 오늘은 여러 모로 엄마와의 추억 고리가 있겠구나 생각하면서, 어린 날 즐겨 입던 하늘색 상의를 입었다. 김환기 작품 속 푸른 빛을 의식하기도 했고. 엄마는 김환기님의 '영원의 노래'와 '달과 항아리' 달력 그림을 액자로 만들어 집에 뒀었다. 늘 보던 그림들 덕분인지 내게는 푸른 빛이 특별한 의미이다. 김환기의 색감은 철학적 사색을 담은 듯해서 오늘 만날 사유에 대해 기대가 커진다.



장대처럼 내리꽂는 비를 뚫고 신나게 달렸다. 호암미술관으로 이르는 길은 가로수들이 특히나 잘 정리가 되어 있어서 때로는 비현실적인 느낌이다. 비가 오는 덕분에 호젓함이 더해졌다. 10시 50분,우리들의 접속시간. 세상에 나의 고객님이 까만 블라우스에 롱 스커트를 입고 나타나셨다. 와,미술관 룩으로 제대로. 음,인생 사진 몇 컷 건지겠는데?



2층 전시실부터 시작되는 초기 청년시절의 반추상. 단순한 선으로 최소한 구성했으나 색감은 짙고 분명하다. 오늘 만난 첫 작품은 '나무와 달'. 나무가 달고 있는 열매들이 훗날 그가 무수히 찍어댈 점, 존재와 존재들의 만남이 되었겠구나. 저렇게 단순한 선 몇개로 온전한 존재감을 드러낸다니ᆢ



나의 고객은 '론도'라는 작품 앞에서 감회에 젖어 있었다. 중학교때까지 그림을 그렸는데,선생님께서 저 작품을 모사하게 해서 구성에 대한 감을 익히게 했다고 잊을 수없는 작품이란다. 젊은 날의 환기는 기본에 충실하면서 다양한 색감을 탐구하던 시기였던 듯 느껴졌다. 몇몇 작품들은 사랑스러운 아기자기함이 있다.



전시 작품 중간중간, 환기의 작업 일지 내용을 공개했는데, 그림을 향한 그의 의지와 고독이 읽혔다. 미로를 헤매듯 환기의 색에 취해다니다가 파리 시절의 작품들을 만났다. 이국땅에서 발견한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일 수 있다는 자각이 이조백자에 천착하게 했다. 그의 푸른 새벽, 푸른 달빛, 푸른 구름, 푸른 학들과 이조백자 달항아리들이 한데 어우러져 상상의 나래를 펴게 한다. 푸른 빛은 그를 영원으로 이끄는 듯 다양한 변주를 보이고 있었다.



아. 드디어 우리집 벽을 장식했던 '영원의 노래' 앞에 서는 순간. 가슴이 벅차올랐다. 엄마와 함께 있는 듯한 연결감이 좋았다. 한참 넋을 놓고 서있었다. 지난 주 인사동에서 만났던 푸른 새벽빛에 수놓은 목련작품이 겹쳐 떠올랐다. 멀리서 그 작품을 보며 '엄마생각'이라 웅얼대며 가까이 다가갔는데 작품 제목이 그대로여서 소스라치게 놀랐었다. 엄마와 예술적 감각을 나눌 수 있었던 시간에 감사한다. 수시로 그 느낌들을 재생할 우연들을 만난다.



2층 통창 너머 빗금이 그려내는 자연의 변주를 앉아서 가만히 지켜보는 기쁨도 누렸다. 고객과 함께 지금 이 순간을 함께 한다는 것. 대화를 해야지만 되는 것이 아니다. 언어 너머 공속의 시간을 함께 하는 것. 오감의 기억을 함께 나누는 데서 깊은 안전감과 신뢰를 더한다.



1층 전시장에는 50대에 이른 환기의 뉴욕시대를 보여주고 있다. 대작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색감에서 절제와 균형이 확연하다. 연륜이 묻어나는 원숙함이 정점을 이룬다. 화가의 개인사에서 의식확장이 일어난 듯, 차원이 다른 세계를 건넌 느낌이 들었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리' 앞에 오래도록 머물고 있는 사람들의 뒷모습이 아름답다. 표현하기 어려우나 가슴이 울렁인다고 귓속말을 주고받는 관객들.



사진으로 남기려고 카메라를 켜면 그 수많은 점들이 우우 달려들며 말을 거는 듯하다. 그 점 하나하나를 찍으며 아내 향안을 부르고, 아들 딸을 찾았으리라. 캔버스에 유채로 그렸음에도 마치 잉크가 번져나는 것처럼 표현한 것은 경이롭다. 화가의 인생사에 따라 화풍이 달라지는 경계가 흥미로웠다. 작업일지에서 새로운 화법을 발견한 기쁨을 여과없이 표현한 문장에서 인간적 면모를 만난다.



그림 앞에서 멀리 또 가까이, 진지한 표정이었다가 감탄한 모습이었다가 여러 모습을 보이는 고객님을 사진으로 담아드렸다. 마침 코디한 의상이 김환기의 그림들과 너무도 잘 어울려서 그림속 그림이 또 연출되는 듯했다. 몰래 포착한 장면을 찍기도 했고, 연출해서 찍기도 했는데 고객님의 환한 표정에 더없이 기뻤다. 미술관에서 사진을 찍으면 조명과 작품 덕에 인생네컷을 건질 수 있다. 몇 컷 보여드리니 감탄해서 입을 못 다문다.



'내가 마치 연예인이 된 기뷴이네요. 이렇게 주인공이었던 적이 없어요. 참 새삼스러운 기쁨이군요.' 편하지 않은 이슈가 있어서 무거움을 떨치지 못했던 고객님이 깊은 감회에 젖었다. 마지막 연작은 죽음을 앞두고 연주되는 레퀴엠처럼 묵직함이 느껴졌다. 비오는 평일의 호젓함 덕에 김환기의 작품을 배경삼아 그녀를 주인공으로 담았다. 그것으로 족했다.



'저렇게 많은 별들 중에 별 하나가 나를 내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코칭이란 그런 것. 그 순간만큼은 고객을 온전히 바라보는 것. 그 존재를 온전히 느끼는 것, 함께 춤추는 것. 내 삶에 코치같은 존재로 있었던 엄마는 나를 평생 온전한 고객으로 존중하고 환대했었다. 새록새록 엄마가 내게 보여준 자세와 태도에 대해서 체감한다. 아름다운 나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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