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결정이 필요한 일이 생겼다. 실은 뻔하다. 무척 하고 싶지만 결국 관건은 금전상의 문제 외엔 아무 것도 없다. 배움을 위한 투자는 아낌없이 해왔고 후회도 없다. 근 1년여 특히 굵직한 공부를 뭉근히 했다. 당연히 교육비도 무지 많이 들였다. 주변에서 무슨 공부를 그렇게 하느냐고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냐며 면박을 주기도 한다.
틀린 말이 아니다. '학습중독' '성찰중독'이 아니냐고도 한다. 그 역시 틀린 말이 아닐 수 있다. 오늘 그렇잖아도 고객이자 지인이기도 한 분과 대화 중에도 나온 얘기다. 자신은 어찌 물욕이 사라지지 않는다, 돈을 많이 버는 이유도 사고 싶은 거 맘껏 사고싶어서다. 그런데 코치님은 물욕이 많이 없는 거 같다. 그런데 사람은 서로 다를 뿐이지 어느 한 분야에는 꼭 꽂혀 있는 곳이 있더라. 코치님은 자기가 보기에 책을 사거나 배움에 아낌없이 투자하는 듯하더라.
맞는 말이다. 1년의 통계 안에서 코칭의 수입과 지출 상태를 확인해보면 지출에 더 많이 치우쳐 있다. 궁극적으로 코칭을 더 잘하고 싶어서 교육을 받으며 역량을 키웠는데 역량만 키우고 실전을 못 만드는 느낌이다. 어느 MCC가 코칭사업가가 되어야한다는 말에 뜨끔해진다.
그런데 단지 코칭으로 돈을 더 잘 벌기 위해서 교육을 받는다는 차원이면 외려 선택이 쉽다. 최소한의 필요조건만 채우고 오로지 수익화를 내기 위한 사업에 초점만 맞추면 될 일이다. 그런데 나처럼 인간이해에 대한 호기심이 많으면 인간의 속성은 물론, 그 접근법에 관해 다양성을 엿보고 싶어서 교육프로그램을 통해 체험하고싶다.
프로그램 참여 중에 만난 이들과 주고받는 에너지도 참 좋고. 개인적 현실 상황은 여러 사정으로 어려움에 직면해있는데 팔자 좋은 학습 놀이를 하고 있는 형국이다. 뭘까? 표면적 이유 깊이 나는 어떤 숨은 의도를 갖고 있는 걸까? 아마 일종의 회피일 수도 있다. 달콤한 공부꿀독에 빠져 현실을 잊고 싶은지도. 또 한편으론 마음을 세우면 어떻게든 감당이 되어왔던 지금까지의 양태를 믿는 것인지도.
언제까지 아슬아슬한 상황을 메우며 살 것인가? 아니면 통 크게 이 역시 투자의 시간이라 여기고 하고싶은 걸 해야하나? 혼자서 두 마음 기법의 셀프 코칭에 들어가봤다. 어떤 선택이 유익을 주는지는 엇비슷했다. 어떤 선택이 비전성을 갖는지야 자명했다. 어떤 선택이 행복하게하는지를 묻고 보니 또 분명해지는 점이 있다.
그렇다면 어떤 전략이 필요할까? 지금의 상황에 맞춰 예산을 짜고 염려할 일이 아니라, 필요한 만큼 아니 그 이상의 수익을 만들기 위한 전략을 세우고 총력을 기울일 일이다. 더구나 연구개발 준비 중인 프로그램에 숱한 영감을 일으킬 것을 알기에 체험하며 최상의 것을 만들면 되지 않을까? 애초의 생각의 목표가 달라진 느낌이다.
셀프코칭이 시작될 때는 프로그램에 참여할 것인지 포기할 것인지였는데 어느새, 한다면 어떻게 현실의 문제를 타개하느냐가 되었다. 현실의 문제는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건 않건 늘 해야하는 고민이자 더더더 좋은 방법들을 끊임없이 찾아야하는 일이다. 이번의 고민까지 더해져서 배수의 진을 치고 나를 절박한 상황으로 몰아가도 좋을 일이다.
염려 안에서 결함을 메우고, 결핍을 채우는 것에 초점을 맞출까? 하고싶은 것들을 위해서도 절실하게 매달리며 타개해나가기 위해 좀 더 적극성을 띠고 주도적으로 일을 전개할 것인가? 지금 이 두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확연히 깨닫는다. 내면의 에너지가 어디에 반응하는지 느낀다. 이제껏 공부하는 데 큰 망설임없이 행해왔던 것처럼 또 한번 나를 던진다.
체화된 공부는 어떤 식으로든 드러나더라. 어쩌면 나는 아둔해서 한번으로는 응용력을 발휘하지 못하는지도 모르겠다. 조금씩 변형된 것들을 체험,체험 또 체험, 실습, 실습, 또 실습하면서 몸에 익히는지도ᆢ내 상황을 짐작하는 이들이 보기엔 어이없을 수 있겠고, 안타까움의 눈빛을 감당하기도 눈치가 뵈기도 한다. 그래도 해야겠다. 나에 대한 또 다른 가능성을 만나기 위해서도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