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늦게 지인으로부터 다급한 전화를 받았다. 친척의 일인데 온 집안이 걱정에 휩싸여 있다, 조언을 구하고 싶다고 했다. 멀쩡히 사회적 지위와 명성을 누리는 조카가 어느날엔가부터 글로 공격성을 드러내서 친척들 모두 긴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굳이 글로 저렇게 연로한 집안 어른들에게 상처를 주고 있지? 왜 저러나 싶어 가만 지켜보고 있다고 했다. 친척들이 조금이라도 자신의 의견에 반하는 말을 하면 공격적으로 해묵은 옛 이야기를 끄집어내어 원망이 쏟아진다는 거다.
지금 조카는 일하거나 사회적 관계에서는 별 문제가 없는데 친인척 관계에서만 유독 저러고 있으니 이해가 안간다. 본인도 갑갑한지 최면 치료를 다니고 있다더라. 최면 치료라는 거 이상한 거 아니냐? 말려야하는 게 아닐지 싶어 물어보고 싶었단다. 최면 치료는 프로이드적 정신 의학 중 하나여서 공인된 심리 기관이라면 이상한 것 아니니 그건 염려 않으셔도 될 듯하다. 그 50대나 된 조카분이 지금 그런 행동을 보이는 거,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외려 그렇게라도 자신이 힘들다는 걸 드러낼 수 있는게 변화의 가능성도 여는 것으로 여기면 좋겠다 말씀드렸다.
우리는 누구라도 정신 질환을 겪을 수 있는 심약한 존재이다. 이성으로만 판단하고 평가할 수 없다. 개개인의 서사 안에서 그는 그럴 만한 이유를 충분히 갖고 있다. 나와 다르니 이해할 수는 없으나, 언제나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가졌다는 보편성은 같다. 그가 말하지 않은 숱한 고통의 궤적들이 켜켜이 쌓여 있다가 '괴물체'가 되어 스스로를 또 타인을 괴롭힌다. 나 스스로도 경험했지만 대다수는 자기자신에게 화가 나있는 경우가 많았다. 부당함을 온몸으로 막아주지 않아 병들게 했던 스스로에게 골이 나 있다. 대부분 죄책감이나 수치심과 맞닿아 고통을 느끼고 분노를 터뜨린다.
마음은 끊임없이 나 하나조차에도 경계를 짓는다. 몸과 마음, 자아와 에고,자기의 경계를 끝없이 오르내리며 스스로 배제하고 고립시킨다. 극히 일부의 에고를 극대화시켜 동일시하는 착각에 빠진다. 심화될수록 바늘구멍보다 더 작게 자신을 쪼그라뜨린다. 자신의 영혼에 전쟁터를 만들고 경계선을 긋는다. 내 영혼을 두고도 내편 네편으로 구별하고 선 넘는 이들에게 무차별 공격을 개전하는 꼴. 내면의 작용으로만 그치지 않고 결국 외부로 확전시켜 타인과의 관계에까지 이른다.
어젯밤 지인의 부인이 항암 도중 결국 견디지 못하고 딴 세상으로 건너갔다. 누구보다 영혼이 아름답고 인격이 성숙한 사람이었다. 뒤늦은 결혼으로 10년 딸아이 낳고 더없이 행복한 삶을 나누던 사람이었는데ᆢ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그니는 영혼의 일치성으로 성숙되고 통합된 삶을 살라는 과제를 잘 수행했기에 데려가신 건 아닐지? 지금 고통스럽다고 바락바락 악을 쓰는 이들은 그래서 살아갈 수 있는 거 아닐까? 그 주요 신호를 알아차린 이들과 풀지 못한 과제를 충실히 수행하며 지금 여기를 살라고ᆢ
통화를 마치면서, 조카가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친척들이 한가지만 생각해주면 좋겠다고 당부드렸다. 다 함께 왜 저러지?이해가 안돼보다는 쟤가 살고 싶어서 신호를 보내는구나, 억압되었던 자신을 해방시키고 자기로 살고 싶어서 그러는구나,외로워서 그러는구나. 가만 기다려주기만 하자고. 이 말 끝에 지인이 '아. 맞다. 내가 별말은 아니지만 조금 자기 입장에서 토닥이는 말을 했더니 걔가 그 말 들으니 눈물이 난다고 했었어. 외로웠나보다. 자기 편이 필요했나보다'라고 알아차리셨다.
나이가, 지위가, 숱한 역할의 페르소나가 다 소용없다. 내가 외롭고 지쳐있을 때는 그저 따듯한 눈길, 손길이 필요할 뿐. 누구든 어린아이가 되고 만다. 그런 취약성을 드러낸 용기에 방점을 찍어야지. 그는 뜨겁게 살고 싶어서 울부짖는 거다. 내 내면, 내 이웃의 소리없는 아우성을 듣는 귀가 있길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