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새벽일 수도, 해지는 저녁일 수도 있겠습니다. 헤세가 무방비 상태로 맞아들인 찰나적 환희가 아니었을까요? 헤세가 말년에 정원을 가꾸었으나, 시에서 그려진 이 정경은 정원 손질 중에 느끼는 감성보다 깊은 듯해요. 생각지도 않은 우연한 기쁨, 숨조차 멈춘 아름다운 순간처럼 느껴집니다.
마음의 정원에 수없이 피워냈던 오색의 꽃과 나무가 현현되던 순간이자, '아름다움'이란 추상적 개념이 느낌의 언어로 체화되던 순간이었을 것 같아요. 모든 것이 내게 주어지고, 모든 것이 내 것 같아서 이 완벽한 상태를 깨트리고 싶지 않은 순수한 열망이 드러나 있어요.
한참 산을 다니던 때, 수시로 터지던 감탄과 감동이 이런 아름다운 순간이었던 듯해요. 자연이 선물하는 생명력을 발견하기 시작할 때, 그 존재가 인식되기 시작할 때 저의 세계도 차원을 달리하게 됩니다. 제가 사는 이곳을 좋아하는 이유도 비슷하리라 싶어요.
북한강, 남한강을 끼고 오가는 길에서 수시로 숨이 멎을 듯한 순간을 누리거든요. 미처 떠나지 못한 달이 푸르스름한 정기를 머금은 산줄기와 어우러져 있는 모습, 물결이 일렁이는 중에 드러나는 윤슬, 꽝꽝 얼어 육지가 되어버린 전설, 벚꽃향을 날리는 봄날의 강변.
생각은 멈추고,
감정은 꺼내 말리고,
욕심은 하나씩만.
의외로 간단하고 쉽습니다. 내가 살아있음을 속삭여주는 자연, 네가 있어 좋다는 사람, 사소한 것에도 기쁨이 있다고 일러주는 숱한 신호. 눈길을 보내고 귀를 기울이고 발길을 멈추기만 하면 만나게 될 삶의 예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