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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의 예술가 육코치 Jan 12. 2019

사후약방문이 아닌 사전약방문

마당을 다지다 


데크팀이 제 할 일을 다하고 칠 마르기만을 기다리는 중에 정원을 꾸며줄 팀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새벽부터 깨고 부수고 다지고. 비 온다는 예고에 현장 팀들의 행동이 더욱 재빨라졌다. 평생 내 땅뙈기 한 평 갖지 못하고 공중에 떠있던 삶을 살았다. 내 땅이 생기고보니 상상력이 극대화된다. 광활한 중국땅을 돌면서 그런 생각을 했었다. <장자>의 과장된 상상이 어디에서 비롯하는지 알겠다고. 쬐끄만 땅덩어리에서 오글대던 사람에게선 영원한 비현실일 테지만 드넓은 대지와 고원을 가진 그들에겐 현실을 반영하는 꿈이었다. 대저택이나 별장을 가진 이들이야 콧웃음을 칠 일이나  공간을 채워가는 꿈꾸는 모든 과정 자체만으로 행복이란 걸 알겠다. 여기까지도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불편함을 감당할 용기,맨손으로도 살아갈 용기,다시 시작할 용기,자신을 믿을 용기.


'현장에 답이 있다'고 하던 말을 실감했다. 정원을 꾸미고 다지기 위해 등장한 포크레인 기사는 천공 원천기술을 가지고 비트 제작과 기술이전 등을 다 하는 사장이었다. 정원의 설계와 삽질을 직접하는 장이사도 철학을 전공한 유학파. 그들은 공부할만큼 하고도 전혀 뜻밖의 일로서 자신의 삶을 채워가고 있었다. 현장의 일을 더욱 좋아해서 직접 돌을 나르고 삽질을 한다. 그들에게는 건강한 여유가 느껴져 작업하는 과정을 구경하는 일로도 신난다. 


'노동'의 신성함. 비오듯 흐르는 땀을 훔치며 자신의 일에 집중하는 이들의 모습은 '앓음다움' 그 자체였다. 포크레인 작업 중,건축업자들이 자재가 떨어졌다고 플라스틱 뚜껑을 아무렇게나 덮어두고만 일이 문제가 생겼다. 우수홀이라는데 파묻힌 채로 대충 덮여 정체모를 상태로 있었다. 결국 정원팀들이 다시 건재상으로 가서 알루미늄 뚜껑을 사왔다. '기어이 포크레인에서 내려서게 만드네, 에이,참......' 진심으로 투덜대는 건줄 알았더니 재미로 툭툭 던지는 소리였다. 난 괜히 쫄아서 눈치보기 여념없었건만.  다지는 땅높이에 맞춰 벽돌을 쌓아 두르고 시멘트 작업을 해서 수평을 맞춘다.


지난 폭우에 싱크롤에 가까운 구덩이가 파이프처럼 길을 냈었다. 건축업자들이 다지지도 않고 대충 흙을 덮어 눈가림만 했던 일들이 진면목을 드러내었다. 문제해결력이란 문제가 터졌을 때만 해결하는 일로 끝내는 게 아니다. 예상되는 문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미리 마음을 쓸 때 문제해결력을 갖췄다고 하겠다. 그런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것은 현장에 애정이 없기 때문이다. 건축비가 적잖아라고 되받아칠 여지는 분명 있다. 그러나 돈 이전에 '사람'이 사는 곳이고,'사람'이 꿈꾸는 곳이라 생각한다면 정과 성을 기울이게 되어 있는게 인지상정일 것이다. 


자신의 소관이 아니니 정원팀도 대충 피해서 나몰라라 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들은 '사람'을 먼저 생각했기에 그 사람이 불편할 일을 차마 지나치지 않았다. 안해도 되는 일로 수고를 더했다. 참 고마운 일이다.  '사후약방문事後藥方文'이란 말은 '관계'에 있어서 위험한 신호가 되기도 한다. 일이 터지면 해주면 될 거 아냐는 식의 발상은 감정의 소모전만 도모한다. '관계'의 신뢰란 말로 다지는게 아니라 정성을 기울이는 행동으로 다지고 다지는 일임을 또 생각한다.


나는 어땠을까? 내가 만나는 사람들과 하는 일에 성실(誠實)한지? 한자의 어원에서 정성(精誠)이란 세세하고 곱게 온갖 성의를 다하려는,참되고 거짓없는 성실한 마음을 이른다고 한다. 성실은 자신이 말한 바대로 이룬 것이 실제로 드러나는 것을 말한다. 사후약방문이 아니라 사전약방문을 쓰는 진정한 고수가 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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