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상과 과학으로

부정의 유물론 (2): 공상 없는 과학은 해방이 아니다

by 민해경

이번 "부정의 유물론"시리즈는 3부작으로 기획을 하고 있습니다. 1부는 맑스의 유물론에 대한 설명과 역사, 재구성의 필요성을 간략히 제시할 것이고 2부는 기존 변증법적 유물론에 대한 심층적 비판을 다룰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3부는 맑스의 유물론을 부정과 비판의 사유로 어떻게 재구성할 것인지를 설명할 것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어떤 철학자 또는 사상가 등에 존경한다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의 사상을 따르는 것과 그의 인간됨을 좋아하는 것은 별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의 나의 상황에서 내가 존경한다 표현하는 두 명의 사상가가 있다. 바로 맑스와 벤야민이다. 사실 벤야민에 대한 감정은 존경보다는 공감과 동질감이기 때문에 순수하게 존경하는 사상가는 맑스가 유일하다 봐도 무방하다. 그러다보니 나는 가끔 맑스가 꿈꾸었던 사회는 무슨 사회였을까라는 생각을 종종 하곤 한다. 평생을 자본주의와 불의에 투쟁했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자식들이 자신이 그렇게 비판했던 빈곤함 때문에 죽는 것을 지켜볼 수 밖에 없던 그는, 무엇 때문에 자본과 맞서려 한 것일까.


쿠바의 혁명가 체 게바라는(여담이지만 나의 롤모델이다) 알튀세르가 맑스에 대하여 인식론적 단절에 근거하여 청년 맑스의 휴머니즘적 성향과 후기 맑스의 과학적 성향을 분리한 것을 비판하며, 맑스는 낭만적인 철학자에서 호기심 넘치는 과학적 유물론자가 되었지만, 이러한 변화는 맑스의 휴머니즘적 성향과의 단절이 아닌 성숙한 휴머니즘으로 나아가는 과정이었다고 주장한다. 나 역시 이에 동의한다. 맑스의 저서와 문헌들, 특히 정치경제학에 관심을 두고 학습한 이후에 맑스는 분명히 과학적으로 자본주의를 분석하고 역사를 해석하려 했지만, 그가 초기에 보였던 휴머니즘 사상과 전혀 대치되지 않는다. 어쩌면 그의 텍스트들이 모호하고 난해한 이유도 그가 과학적 유물론자의 길을 선택함에도 휴머니즘을 끝까지 지키려 한 연유에서 비롯되었을 지도 모른다.


실제로 최근 맑스에 대한 연구 중, 맑스가 [자본] 작업을 늦춘 것과 말년에 지리학과 수학 등 여러 학문에 발을 담근 것과 연결 지어 맑스가 [자본]의 작업을 연기한 것은 그의 건강 문제보다는 그의 지적 탐구에 한계가 찾아왔음이 원인이라는 분석도 등장하고 있다. 자신의 학문에 완전성을 추구하던 맑스 성향상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이며, [자본] 3권에서 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과 같은 이론에 대비되는 주장을 한 것이 우연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의 후계자들을 자처했던 이들은 그의 신중함과 사유를 비웃듯이 그의 이론을 곡해하고, 왜곡했다.


맑스-레닌주의 변유론의 핵심은 '양질전화'라는 개념인데, 이는 엥겔스의 개념을 스탈린이 그의 저서 [변증법적 유물론과 사적 유물론]에서 구체화시킨 것으로 "양의 점진적 변화가 일정 정도 축적될 시 질의 비약적 변화를 이끈다. 또한 질의 비약적 변화는 양의 새로운 점진적 변화를 유도한다"라는 내용이다. 스탈린은 유물론적 시각에 따라 '양'을 물질로 규정하고, '질'을 인간의 의식으로 규정하였기에, 물질의 발전이 인간의 의식을 변화시키고, 그 물질은 현실에서 생산력과 경제라는 요소로 대표되기 때문에 맑스-레닌주의는 생산력의 발전을 최우선 과제로 두었으며, 그 발전이 새로운 인간들의 사회를 불러올 것이라 믿었다.


이러한 개념은 '5단계 발전론'에도 영향을 주었는데, 이 이론에 따르면 인류 사회는 '원시공산제-노예제-봉건제-자본주의-공산주의'라는 발전 경향에 따라 변화한다. 이러한 변화는 물질의 축적, 즉 양의 진보로 촉발되는 것이기에 인간의 의식이 진보하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인류 역사는 반복이 아닌 진보의 역사였다는 개념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여기서 모순에 다다른다. 만일 맑스-레닌주의의 양질전화가 사실이라면, 인류에게 과도기는 불필요해진다. 자본주의는 공황의 위험과 반도덕성을 내포하고 있지만, 폭발적인 생산력의 발전을 불러오는 체제이며(맑스도 인정한 점이다) 도덕성과 같은 의식은 양의 발전에 따라오는 인과적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이는 공산주의가 자연적으로 도래한다는 기계론적 주장과 연결되며, 이에 따라 아직 농민 위주의 경제체제였던 러시아는 볼셰비키 혁명이 아닌 자본주의 체제로의 이행이 시급한 과제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또한 발전이론은 유럽 그 이외에 지역들을 설명할 수 없으며(예를 들어 미국과 같은 경우는 인디언 사회를 제국주의자들이 침탈하여 남부에는 노예제를, 북부에는 자본주의를 이식한 사회이다), '진보'라는 측면에서도 경제주의와 물질환원주의에 경도된 나머지 인간 사회를 맑스가 [경제학-철학 수고]에서 비판했던 '물질이 개인 간의 유대를 대신하는 사회'로 단순화하였다.


이러한 모순을 덮기 위해 맑스-레닌주의자들이 택한 방법은 교조주의와 권위주의였다. 이들은 자본주의 사회에 비해 도덕적 우월성을 지니는 것이 아닌 경제성장과 발전에서 우위를 점해야 했고, 이는 인민을 갈아넣는 우주 경쟁을 펼침과 동시에 1960~80년대 동아시아 개발독재국가들과 유사한 경제 정책을 펼치게 했으며, 본인들에게 대항하는 민중들을 반동분자와 맹동주의자라는 멸칭을 씌워 억압했다. 또한, 자신들과 다른 길을 걸으려하는 해방의 혁명가들을 수정주의자라는 오명을 씌우며 매장하려 하였다. 자유의 날개를 펼치려는 민중들은 혁명가를 자칭한 이들의 폭풍에 휩쓸려 가라앉을 뿐이었다. 해방을 꿈꾸었던 휴머니스트 맑스의 이론은, 어느새 반인간주의적이고 권위주의적인 도구가 되어 민중들의 반대편에서 작동하고 있던 것이다.


맑스-레닌주의자들의 변증법적 유물론은 그 어떤 이론보다 반(反)맑스적이다. 휴머니즘의 정반대편에 서있으며, 관조적이며, 기계적이고, 억압하는 자들의 도구일 뿐이다. 맑스가 만일 이를 보았다면, 프랑스에서 자신을 추종하던 이들에게 했던 것과 같이, "그것이 맑스주의라면, 나는 맑스주의자가 아니오"라는 일갈을 날리지 않았을까? 그러므로 적그리스도들로 인해 왜소해지고 흉측해진 맑스는, 그가 언제나 외쳐왔던 '비판적 이성'을 통해 부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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