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의 유물론 (1): 맑스의 유물론에 대하여
철학사에서 항상 중요한 논쟁의 한 축을 차지하는 주제는 관념과 물질, 인간과 자연 사이에 무엇이 우선하며, 무엇이 중심인가에 관한 내용이다. 이러한 논쟁은 개인의 정신과 관념이 물질적인 실재 위에 존재한다고 보는 유심론과 물질적인 실재가 개인의 정신 밖에서 작용한다는 실재론이라는 두 가지 개념으로 나뉘게 되는데, 이성의 규정이 신이라는 초월적 존재에서 과학이라는 실재적 요소로 바뀐 현대 사회에선 실재론이 유심론에 비해 지지를 얻고 있기도 하다. 특히나, 이러한 실재론을 물질적으로 해석한 유물론 전통에 입각한 대표적인 철학자 중인 한 명이 맑스이기에, 단순히 세계를 해석하는 철학에서 그치지 않고 정치와 같은 현실에 관여되는 모양새도 보인다.
맑스의 유물론은 포이어바흐에 대한 비판적 수용에서 출발한다. 맑스는 1845년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라는 짧은 글을 작성하는데, 이 글에서 맑스는 포이어바흐가 관념론적 전통에 대해 비판한 것을 예찬하지만, 포이어바흐의 유물론은 현실(Wirklichkeit), 감성(Sinnlichkeit) 등을 '객체 또는 관조(Anschauung)'의 형식 하에서만 파악하며, 인간 활동의 주체성, 즉 실천이라는 측면을 간과했다고 말한다. 기존 유물론이 인간의 실천을 간과하였다고 생각한 것인데, 맑스의 이런 사유는 1846년에 작성된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구체화된다. 맑스는 청년 헤겔학파에 대한 비판, 헤겔에 대한 비판, 포이어바하에 관한 비판을 전개하며 변증법적 유물론이라는 맑스주의의 핵심 철학을 제시하는데, 이는 물질(객체)이 인간(주체)의 의식을 구성하며 객체는 주체와 독립적으로 운동한다라는 유물론적 이론과 그 운동은 기계론적이지 않고 긍정과 부정이 충돌하는 모순 상태를 해결하는 과정 속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물론 후술하겠지만 이러한 변증법적 유물론이 순수하게 맑스의 것인지, 아니면 엥겔스에 주관이 개입된 것인지는 학문적 논란이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 변증법적 유물론에서 뭔가 모호함을 느낄 수 있다. "과연 인간 실천은 어느 정도까지 주체적인가? 물질이 의식과 사회를 구성한다면 물질의 발전은 인류의 발전을 인과적으로 끌고 오는가?" 등 논쟁의 여지가 있는 점이 꽤나 존재한다. 일단, 우리는 변증법적 유물론은 맑스가 아닌 그의 동지인 엥겔스에 의해 완성이 되었음을 주목해야 한다. 맑스는 생전 엥겔스에 대해 자신의 사상에 대해 가장 잘 이해한 친구로 생각했기에 엥겔스와 맑스를 완전히 분리시킬 수는 없겠지만, 최근 MEGA(맑스-엥겔스 전집 작업) 연구를 통해 엥겔스가 [자본] 편집 과정 등에서 맑스의 의도와는 다른 표현을 사용했다는 논쟁이 생기고, 맑스의 사상이 엥겔스만큼 '자연과학적'이지 못하다는 주장은 과거 서구 맑스주의자들에게서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기 때문에, 우리는 이를 인식할 필요가 있다. 또한 변증법적 유물론을 체계화한 인물 중 대표적인 사상가가 스탈린인데, 맑스-레닌주의의 생산력주의와 경제주의를 정당화시키는 용도로 사용되는 과정에서 변증법적 유물론이 기계화되고 교조화되었으며, 그 결과 권위주의적 사유가 되었기에 변증법적 유물론의 애매함은 더욱 극대화된다. 결국 추상적인 사유가 정치적 목적에 의해 기능화되었고, 그 과정에서 비판의 철학자를 자처했던 맑스의 사상은 오히려 그 반대편에 위치한 도구적 이성으로 왜곡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맑스의 유물론은 여전히 큰 가치를 지닌다. 오히려 맑스의 유물론이 교조화되고 권위주의로 변질된 것이 가장 '변증법적'이지 못한 행동이며, 이에 대한 책임은 맑스의 유물론이 아닌 그 후계자를 자처했던 이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맑스의 유물론은 사회는 변화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며, 객체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지만 그 객체마저 변화시킬 수 있는 주체가 인간이라는 점에서, 비동일자들이 중심이 된 메시아적 혁명이 도래할 수 있다는 낙관과 연결시킬 수도 있다. 비록 지금까지의 역사는 대부분이, 어쩌면 모든 것이 부정의 과정이며 역사였지만, 과거에 존재하지 않았다고 해서 미래에 존재하지 않으라는 법은 존재하지 않다. 그러기에 미래를 예측하지 않고 과거에 대해 끊임없이 성찰하고 현재에 대해 끊임없이 비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맑스의 유물론은, 부정과 비판의 사유에서 재구성되어야 한다.
이번 "부정의 유물론"시리즈는 3부작으로 기획을 하고 있습니다. 1부는 맑스의 유물론에 대한 설명과 역사, 재구성의 필요성을 간략히 제시할 것이고 2부는 기존 변증법적 유물론에 대한 심층적 비판을 다룰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3부는 맑스의 유물론을 부정과 비판의 사유로 어떻게 재구성할 것인지를 설명할 것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