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는 진리에 대하여

사물의 침묵 속에서 깨어나는 기억

by 민해경

내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 정확히는 대안학교를 다니며 대입을 준비하던 시절에 빠져들었던 웹툰이 있다. 바로 [청춘 블라썸]이라는 웹툰인데, 이름에서도 드러나듯이 10대 고등학생들의 청춘을 주제로 하는 웹툰이었다. 당시에는 문학에 큰 관심이 없었고, 웹툰이란 장르를 접한 것은 종이 만화책으로 발간된 송곳이 전부였다. 사실 연재 초기에 여러 번 언급했지만, 당시 나는 낭만주의와는 거리가 멀었으며 휴머니즘과는 더더욱 거리가 멀었다. 아마 나에게 일상과 개인이란 존재는 그저 역사라는 거대한 과정 속에서 돌아가는 기계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러기에 지금 그 웹툰을 접했다는 것은 내게 큰 행운이라 생각한다. 내가 그동안 경시했던 일상과 낭만이라는 조각을 나에게 맞추어 준 것이 그 웹툰이기에, 큰 의미가 존재한다(웹툰의 내용을 언급하여 스포일러하는 것은 원작자분에 대한 예의도 아닐 뿐더러, 많은 사람에게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있기에 연재글 하단에 링크를 걸어두는 것으로 [청춘 블라썸]에 대한 언급은 마친다).


벤야민은 변증법과 이미지에 대해서 언급했다. 특히 이미지란 요소를 기억과 각성에 연관시키는 데, 이는 벤야민이 번역하고 연구한 프루스트에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서]란 소설과 깊은 연관이 존재한다. 벤야민은 그의 작품인 [일방통행로]에서 일상적으로 느끼는 이미지들에 대한 알레고리를 아포리즘의 형식으로 표현하는데, 그 알레고리는 비자발적 기억을 담고 있다. 그리고 벤야민에게 이 비자발적 기억은 섬광처럼 지나가는 그 해방의 순간을 의미한다.


우리의 의식 속에 존재하는 기억은 온전하지 못하다. 우리의 목적대로, 사회의 배경에 따라, 당시 상황에 따라 기억은 변화한다. 그러나 비자발적 기억은 무의식(벤야민은 이 무의식의 발흥을 '깨어나기'로 표현한다, 이 모티프는 프로이트의 것)에 잠재되어 있는 진실이며, 이는 특정 이미지를 통해 개인에게 각성의 순간을 부여한다. 예를 들어 지나간 수험 생활을 10대의 한 과정이라고 치부해버릴 수 있지만, 그 수험 생활을 담고 있는 이미지(구부러진 연필, 닳고 닳은 지우개 등)를 접했을 때 순간 전해지는 당시의 고통의 기억이 진실이며 해방을 이끄는 부정의 각성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어쩌면 나의 상황도 벤야민이 말한 각성의 순간일 것이다. 과학과 이성이라는 꿈에서 허우적되던 한 청소년이 이미지와 예술을 통해 깨어나 지금 여기 있으니까. 우리는 완벽하지 않은 존재이기에, 매우 편협하고 비합리적인 존재이기에 우리에게 보이는 진리는 그저 지금의 산물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진정한 진리는 별 볼 일 없는 사물에, 사진에, 소리에 조용히 숨쉬며 담겨 있을 것이다.




다음 글은 이러한 사유와 비슷한 벤야민의 초현실주의를 다룰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아래는 말씀드린 웹툰의 링크입니다.



https://series.naver.com/comic/detail.series?productNo=5234164&isWebtoonAgreePopUp=true


작가의 이전글부정 속에 낙관을 꿈꾸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