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0

by 민해경

주민등록증

나는 누구인가. 열세자리 상표가 붙은 이루어진 상품인가? 움직이지 못하는 지역과 공간일 뿐인가? 1과 2, 3과 4로 구분되는 자연의 산물인가? 나는, 나이다. 그 무엇으로도 정의할 수 없는, 나는 나일 뿐이다. 등록된 번호와 지역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니는 인간이다. 나는 번호를 달고 태어난 죄수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 번호는 인간 앞에서 무릎 꿇을 것이다. 나는 나의 번호를 선택할 수 없다. 그러나 번호도 나의 운명을 결정할 수 없다.


백지

나의 상상대로, 나의 바램대로 무엇이든 그리고 쓸 수 있는 곳. 선택은 존재하지만 길은 존재하지 않는 순수한 나의 공간. 공간을 남기지 않고 그려넣은 이의 성실함도, 고민 끝에 공간을 남긴 이의 가능성도 존중받는 곳. 그러나 그 존중을 무시하는 이의 연필은 빼앗기는 곳. 봉건주의와 가부장적 권위주의도, 부르주아적 도덕과 윤리도 진리로 적용되지 않는 곳. 그저 인간과 생명을 짓밟는 도구를 아스라뜨리는 곳.


거울

그 어느 왜곡된 시선 없이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는 사물. 언제나 진실만을 말하는 솔직한 사물. 옷을 갖추어 입고, 밖으로 나가기 전 거울을 보며 진실된 나의 모습을 응시한다. 이상하다. 나는 웃고 있는데, 왜 거울의 사내는 웃음 대신 눈물 짓는 것일까. 아무리 웃음 지어도, 그 사내는 나를 바라보며 눈물 흘리는 것일까. 그리고 그 주변에는, 망각의 조각들이 그 사내를 쓰라리게 파고드는 것일까.


일기장

글로된, 어린 나의 철없는 하소연과 중구난방의 글씨들. 지금은 돌아보면 추억이 된 아름다운 이야기들. 그 추억은 지금의 나를 위로해주며, 나는 다시 일기장을 덮고 현재로 돌아온다. 일기장은 나보다 더 잘 알 지도 모른다. 과거의 나에 대해서. 철 없는 나에 대해서. 일기장은 알고 있다. 나의 고통을. 의식에 심연으로 묻힌 어린 나의 하소연을. 어린 나는, 지금의 나에게 타자인가. 그 곁에 남은 건, 내가 아닌 일기장뿐인가. 자신마저 외면한 한 어린 아이 옆에는, 낡은 일기장만이 자리를 지킬 뿐이다.


곰돌이 인형

어린 시절 나의 친구. 언어는 다르지만 소통할 수 있었고, 함께 놀 수 있었고, 함께 잘 수 있었던 어린 나의 단짝. 언제부터였을까. 살아움직이던 인형의 눈은 멍해졌고, 인형의 목소리를 더 이상 들리지 않게 되었다. 보드라운 털의 포근함은 거슬리는 감각으로 바뀌었고, 나와 인형은 그 무엇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인형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다. 포근한 털과 생기 넘치는 눈은 언제나 인형과 함께였다. 그저, 내가 변한 것이었다. 인형은 과거에도,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그 인형은, 과거의 진실된 증언자이다. 그 증언은 변한 나의 머리 주변을 맴돌며, 판도라의 열쇠를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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