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5

by 민해경

자취방

하나의 건물을 분리해놓은 공간, 검은색 벽으로 도배되어 있으며, 내부는 하얀색 가구들과 벽지로 칠해져 있는 공간. 잠시 머무는 공간. 낡아 색이 닳은 선반들과 뜯긴 타일들은 해방감을 준다. 잠시 머무는 공간? 누군가에는 평생 남아야 할 공간.


넥타이

고상하고 높은 자리에 가는 사람들은 넥타이를 맨다. 본인의 정장에 맞추어 색을 고르고 단정하게 보이기 위해 띠를 당긴다. 신기하네. 만나는 사람들마다 옷도 다르구나. 그럼 우리는 사람을 만나는 건가? 아니면 그 사람의 지위를 만나는 건가? 그 고상함을 위해 스스로 목을 죄는구나. 스스로 목을 조르고 사람을 구분하는 건 참 고상한 일이구나. 그렇구나. 그래서 너희는 아이들이 스스로 목을 죄도록 만들었구나. 그대들에겐 고상한 일이기에.


가계부

그의 가계부에는 숫자가 빼곡히 적혀있다. 그 숫자 옆에는 상품명이 쓰여있으며 그는 과거에 비해 올라간 숫자를 보며 한숨 짓는다. 어느 날부터 그의 가계부에는 숫자가 적히지 않았다. 상품명도 적히지 않았다. 그리고 다른 가계부에는 다음과 같은 숫자가 적혀있었다. "-1".


국기

국기 앞에 모여 같은 국적인 것을 자랑스러워 한다. 한국인을 대단하다 여기며, 수많은 미사어구와 어록을 붙이며 스스로의 자존감을 높인다. 일본의 국기는 우리에게 갈기갈기 밟히고 있으며, 중국의 국기는 우리에게 수준 낮은 형상으로 여겨진다. 제국주의를 이겨내고 전쟁의 아픔을 겪으며 선진국이 된 대한민국. 이 얼마나 자랑스러운가. 그렇지 않은가? 주검 없이 떠도는 독립투사들이여, 아스팔트 속에 파묻힌 노동자여, 초점 없는 기계가 된 학생들이여, 메콩강을 베트남 인민들의 피로 채운 대한민국이여.


선글라스

눈이 부셔, 어색하지 않은 복장이면 선글라스는 언제나 나와 함께한다. 특히 햇빛이 쟁쟁한 여름의 날은 선글라스 없이 눈 뜨기가 무서울 정도니까. 선글라스는 햇빛 속에서도 눈 뜰 수 있게 한다. 선글라스를 끼고, 화창한 하늘이 온몸을 덮는 밖으로 나가 푸르고 붉은 생명들의 온기를 감지한다. 너는 회색이냐? 이 생명도 회색이냐? 나의 눈에 비치는 것은 온기가 식은 회색 빛의 조각들 뿐이다. 선글라스를 내리자, 생명의 온기는 나의 눈으로, 몸으로 파고든다. 햇빛은, 너희에게 생명을 안겨주는구나. 그 햇빛이 내게는, 거슬리는 양분이었구나. 나의 선글라스는, 나의 눈을 죽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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