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한대로 출력하는 기계일 뿐이다. 그저 찍어낼 뿐, 너는 그 무엇도 바꿀 수도 창조할 수 없다. 나의 시험 문제를, 논문을, 사진을 너는 입력 그대로 찍어내야 한다. 여느 날과 마찬가지, 난 너에게 출력을 명령했다. 너의 종이에는 무엇도 적혀있지 않았다. 나는 다시 종이를 넣어 명령할 뿐이었다. 너는 또다시 내게 백지의 종이를 내게 주었다. 너는, 자유롭고 싶었구나.
거리를 걷다 보면 종종 입에 하얀 막대를 물고 연기를 피워대는 사람들이 보인다. 국가에 의해 몸에도 안 좋고, 중독의 위험성도 존재하는 악의 사물로 공인된 그 막대기는 주변 사람들에게, 아니 어쩌면 피는 사람조차 거부하는 경멸의 사물이다. 거무스름하게 그을린 채로 바닥에 떨어진 담배를 가만히 응시한다. 너는 버려졌구나, 의사들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살리고, 희극인들보다 더 많은 안정을 준 너는, 도덕적이고 인간적인 그들에 의해 버려졌구나. 담배는 내게 말했다. 자신을 태어나게 한 것은. 도덕적이고 인간적인 그들이라고.
나의 과거는 이곳에 담겨 있다. 나의 과거를 졸졸 따라다니며 기록한 너는 나의 역사다. 그 역사를 보던 와중 나는 나의 미소를 발견했다. 아 이때의 나는 행복했구나. 나의 과거는 행복했구나. 너의 기록은 내게 희망이 되었다. 그 사진에는 미소 짓는 나와, 그 뒤에 허히얀 국화꽃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너의 기록은, 과거의 나를 잔해 속으로 밀어넣었구나. 그 잔해를 덮는 것은, 나의 기록이었구나.
거리를 지나다보면 많은 사람들이 망치를 들고 물건을 수리하고, 새로운 작품을 탄생시킨다. 그러나 가끔 망치의 머리는 나무가 아닌 사람을 향하고, 창조가 아닌 파괴의 도구로 사용된다. 우리는 이 파괴에 대해 정의의 이름으로 응징한다. 응징의 순간. 파괴의 도구로 놓여진 망치를 보며 나는 생각했다. 너는 프롤레테리아의 망치구나. 판사의 손에는, 망치가 들려 있었다. 그리고 그 망치의 머리에는 프롤레테리아의 혈흔이 흐르고 있었다.
도덕적이지 못하고 정의롭지 못한 범죄자들과 사회를 분리하는 사물. 밖을 볼 수 있지만 나가지는 못하게 하는 갈증의 사물. 철창 속에 범죄자는 그 밖에 도덕적이고 정의로운 시민들에게 손가락질 당하고 비난받는다. 범죄자는 철창을 통해 부여되는 햇빛에 의존하여 갈증을 달래지만, 그 치유는 곧 더 큰 갈증으로 다가온다. 철창은 정의롭고 자유로운 인간들이 내리는 형벌이다. 그리고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학교에는, 철창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