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합리성에 밀려 그 힘을 잃은 지는 오래. 진리와 정의의 탈을 쓰고 사람들을 죽였고, 현재를 이성으로 규정했으며 사람들을 통제하는데 온 힘을 쏟았던 권위와 구태의 상징. 놀라운 것은, 과학과 합리성 안에 십자가는 살아있다는 것. 그리고 그들은, 인간을 통제하는 권위라는 것.
60초, 60분, 12시간을 기준으로 너희는 똑같은 곳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우리는 그 동일함을 다르고 새로운 것으로 착각한다. 새롭고 화려한 것은 탄생한다. 우리는 그를 진보라 부른다. 근데 너희는 제자리에 돌아온다.
높고 화려하다. 내부에는 여러 고급진 문화시설과 식당이 존재하고, 63빌딩은 사람들에게 다름을 선물해주는 존재다. 아이와 함께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기 위해 찾아온 가장과, 인생의 아름다운 마지막을 즐기러 온 노년의 사람들. 아름답지. 그리고 그걸 알아두거라. 나는 63빌딩에 벽돌을 놓았지만, 들어가지는 못한단다.
날이 좋은 지 아이들의 손을 잡고 지하철역에 방문한 부모들이 많이 보인다. 아이들의 얼굴에는 아름다운 미소가, 부모의 얼굴에는 아이를 위한 무거운 의무감이 느껴진다. 아이가 짖궃은 장난을 치기 시작하자, 역 의자에 앉아있던 한 노인이 부모를 향해 화를 낸다. 화가 나지만 부모는 속을 삭이며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할 뿐이다. 그리고 부모는 아이에게 속삭였다. "저기 박스 위에 사람들 보이지? 너 공부 안하면 저렇게 집 없이 살아야 돼".
고인의 마지막은 아름다워야 하기에 웃는 얼굴을 찾아 사진을 만들고, 가장 깔끔히 나온 모습을 찾아 사진을 고른다. 고인의 마지막 모습을 보기 위해 생전 연이 있었던 이들이 와 자리를 채우고, 영정사진을 마주한다. 고인이여. 당신은 죽는 날까지 슬플 자유가 없었습니다. 당신의 고통과 고난은 당신을 가장하여 자신들을 아름답게 기억하고자 하는 이들에 의해 지워졌으며, 당신은 사진에서조차 웃음 지어야 했습니다. 생전 얼굴 한 번 안 비추던 이들은, 당신을 보겠다고 왔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없습니다. 고인은, 마지막까지 주체가 아니었습니다. 사회는, 하나의 장례식장일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