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드시 오고야 말 행복", 이 노오랗고 향기로운 꽃의 꽃말이 청춘 아니일까? 청춘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반드시, 우리에게 청춘은 다가오는 행복이다. "이별의 슬픔", 이 숙연한 노랜 꽃의 꽃말은 무엇일까? 이것 역시 청춘이다. 다가오는 것은 헤어짐을 의미한다. 헤어짐은 다가온다는 것을 의미한다. 행복도 슬픔도, 모두 청춘이다. 물론, 그것은 행복으로써, 그리고 슬픔으로써 기억될 때. 청춘으로 도래한다.
나의 창작을 함께했던 책상이 있다. 나의 침대가 되어주기도 했고, 나의 책장이 되어주기도 했고, 나의 식탁이 되어주며 나의 일상을 함께했던 책상이 있다. 책상의 다리는 삐걱거리고, 깔끔하던 나뭇판자는 날카로운 흑연에 긁혀 나와 함께 나이 들었다. 만일 나의 글을 누군가 정리한다면, 네가 전해주길 바란다. 책상에게 물어보라고.
"만국의 프롤레테리아여, 단결하라" 검은 글씨와 무채색의 종이로 사람의 가슴을 뛰게 하는 불온한 책. 수염이 덥수룩한 한 중년의 방랑자가 가족의 목숨과 교환하며 완성하려 했지만 끝끝내 미완으로 남은 책. 그 글을 이용하여 또 다른 불온함을 창조해 낸 이들로 인해 그들은 헌책방에 얼룩진 먼지와 함께 놓여져 있다. 놀라운 점은, 그들은 언제나 불온한 책이었다. 그들은, 한 번도 승리한 적 없는 이들의 무기이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놀이터에 가면 친구와 시소를 타는 것도 큰 재미였다. 서로 올라갔다 내려가길 반복하며 그 단순한 놀이를 뭐가 좋다고 웃음 지으며 즐겼는지. 참 단순한 놀이다. 나와 내 친구 하나만 있으면 가능한. 이 사회의 시소 역시 단순하다. 셀 수 없이 많은 프롤레테리아의 잔해 반대편에, 하나의 역사만 존재한다면. 그리고 그 역사는 올라가지 않는다. 이 사회의 시소는, 어린 시절의 놀이보다 더욱 단순한 놀이이다.
바둑을 배워본 적은 없지만, 바둑의 성격에 대해서는 어렴풋이 들은 적이 있다. 셀 수 없이 많은 수와 기보를 외워 수싸움을 통해 더 많은 집을 짓는 장르의 놀이. 얼핏 들은 설화로는 고단수들은 몇 달 전에 치뤘던 대국의 기보를 다 기억하고, 그 수를 기억해 스스로 숙고한다고 한다. 이들이 숙고를 통해 발전할 수 있는 이유는 자신들의 실수부터 패배까지 전부다 기억하기 때문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