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에 대한 간략한 노트

by 민해경

개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흔히 어떠한 개념은 그 개념이 포괄하는 무언가들을 의미하는, 언어적으로 함축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개념은 공통 분모를 의미하며, 그 공통 분모의 동일성이 곧 개념이라는 동일한 언어로 표현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개념은 그 자체로 동일성의 의미이다. 개념에 포괄된 것들은 곧 그 옆 자리의 승객과 동일한 공통분모를 갖게 되며-그 승객의 선호와는 상관없이-그 공통분모가 그 얼굴에 씌여진 채로 거리를 거닐게 된다.


한 번 '사물'에 주목해보자. 어떠한 사물은 무수한 면들과 그 가치를 지닌다. 그 면과 가치는 무수히 많은-신조차 인식할 수 없는-객관들에 의해 정해지며, 그 무수한 객관은 하나의 주관을 창조한다. 그 주관은 객관의 일부를 인식하며, 그 객관의 일부를 완전무결한 객관으로, 즉 전체를 대변하는 하나의 개념을 창조한다.


지금까지 철학의 역할 역시 이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신학의 아류였던 철학은 종교의 증명과 그 권위를 정당화하는 대변자였으며, 근대성이라는 노예 해방 선언 이후 철학은 그 선언에 스스로 발목잡혀 뫼비우스의 띠를 해메고 있다.


그 전자의 철학이 인간을 그저 수동적이며, 관조적이고 스스로 의미를 가지지 못하는 존재로 전락시켰다면, 후자의 철학은 인간이 자연을 넘어선 어떠한 절대자라는 거만함의 인식을 잉태하고 있다. 우리의 인식이 창조해낸 무언가, 즉 절대자로써의 개념이 모든 것을 포괄하고 있다는 거만함, 포괄할 수 있다는 그 거만함은 현재의 철학을 일부는 종교로, 일부는 의미없는 이상주의의 틀 안에 가두었다.


절대로서의 개념은 그 자체로 거만함이며, 그 거만함은 곧 보이는 것들의 전체-보이지 않는 것들의 소외-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철학은, 알아낼 수 있다는 자신감과 모른다는 겸손의 공존, 모순되는 대립물의 상호 의존이라는 변증법의 인식이며, 그 아래에서 고장난 바퀴를 다시 작동시킬 수 있다. 그 변증법은 스스로마저 부정하는, 그 부정을 목적으로 태어난 자해의 운명이며, 운명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 메시아다. 중요한 것은 불가능성의 비관이 아니라, 끊임없는 가능성 속에서의 낙관과 겸손. 그 변증법적인 존재다.

작가의 이전글"그럼에도 불구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