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주의'의 위험

<귀멸의 칼날>, <체인소맨>

by mhni

2025년 영상 분야의 가장 큰 특징을 들라면 무엇보다 애니메이션의 활약이 매우 두드러졌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특히 특정 매니아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일본 애니메이션이 뛰어난 흥행성적을 거두었다. 일본 애니 돌풍은 <극장판 귀멸의 칼날 : 무한성편(이하 ‘귀칼’>이 박스오피스 정상에 오르면서 시작되었다. 이후로 <극장판 체인소 맨 : 레제편>, <주술회전>이 상위권을 차지했다.


이처럼 관객을 사로잡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힘은 뭘까? 화려한 액션과 빠른 전개, 서사와 감정의 폭주, 그림 그리는 이들을 갈아 넣었다고 표현하는 작화 연출의 높은 완성도가 강점으로 꼽힌다. <귀칼>은 원작 만화책보다 애니메이션의 퀄리티가 더 높아서 그 덕분에 연재 이후에 인기가 많아졌다는 후문이 있을 정도다.


일단 필자가 관람한 <귀칼>과 <체인소 맨>을 중심으로 이야기하고자 한다. 두 작품은 모두 평범한 소년이 뜻밖의 힘을 얻어 악의 무리와 싸우는 액션 히어로물이다. 15세 이상 관람가라는 등급이 무색할 정도로 폭력적이고 잔인한 장면이 넘쳐난다. <귀칼>은 혈귀라는 적들과 싸우는데, 기본적으로 혈귀들은 흡혈귀이기 때문에 통상의 방법으로는 죽지 않는다. 이들은 ‘일륜도’라는 검으로 목을 베어야 비로소 죽음에 이른다. 혈귀들은 시리즈를 거듭하면서 그 힘이 세지기 때문에 일륜도로 목을 치기도 힘들뿐더러, 주인공들은 힘에 부치는 상대를 만나 죽거나 부상을 당하기 일쑤다. 상황이 이렇다 치열하다 보니 빈번히 사지가 절단되고 피를 흘리는 장면 등이 자주 등장 한다.


<체인소 맨>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체인소 맨의 주인공 덴지는 한 번 죽음에 이르렀다가, 덴지와 계약한 악마인 ‘포치타’에 의해서 체인소 맨으로 부활한다. 덴지가 체인소 맨이 되는 과정은 가슴에 있는 줄을 잡아당기면 얼굴 가운데서 전기톱이 튀어나오면서 변신을 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유혈이 있는 것은 당연하고, 악마들과 싸우면서 신체 절단 등 폭력이 난무하게 된다. 이러한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면 폭력에 대한 묘사가 이전보다 강해지고 그 표현도 더 현란해진 것 같다.


필자는 <극장판 귀멸의 칼날 : 무한열차>를 보고 중년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는데, 요즘의 중학생 또래의 아이들이 <무한열차> 극 중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캐릭터에 대해서 ‘도너츠가 되었다’는 표현을 하는 것을 듣고 놀란 적이 있다. 여기서 ‘도너츠’란 캐릭터가 가슴이 관통당해서 죽는 것을 희화화한 표현이었다. 젊은 세대가 얼마나 폭력에 대해서 무감각해졌는지를 절감했다.

체인소맨.jpg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관객들이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는 것은 대형 스크린과 리얼한 사운드를 즐기기 위해서인데, 기본적으로 극장판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현재 넷플릭스 등 OTT로 나와 있는 시리즈를 다 봐야 한다. 이 OTT 시리즈는 가정에서 제한하지 않는 한 젊은 친구들에게 열려있고 마음을 먹으면 모바일 등으로 시청이 가능하다. 이는 곧 MZ세대가 폭력 이미지에 노출되어 있고 폭력에 무감해졌다는 의미이다. 또한 요즘 세대들은 장시간 구축되는 이야기보다는 숏폼 콘텐츠에 의해서 짧고 강렬한 재미를 추구하다 보니, 애니메이션도 그렇게 자극적인 내용 위주로 제작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가히 모든 가치 중에서도 ‘재미’가 가장 중요해진 시대이다. 극한의 재미를 추구하다 보면 마땅히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들이 자리를 잃게 된다. 상상력에 있어서도 브레이크가 없이 질주를 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금기시되고 도덕적으로 문제가 되는 설정 등도 단지 ‘재미’가 있다는 이유로 용인된다. OTT와 극장판으로 성공하는 콘텐츠가 수익 창출을 위해 자극적인 내용을 경쟁적으로 선보이는 이유가 바로 그런 이유다. 여러 가지 볼거리가 넘쳐나는 시대에 관객의 시선을 붙잡으려면 파격적 스토리와 강렬한 이미지가 필요하다. 도처에서 범람하는 폭력적 콘텐츠는 일반적인 도덕관념이나 질서, 성경적인 가치관을 파괴하기에 위험하다.


가치사슬의 관점에서 보면 일본 애니메이션의 수익화 구조는 다음과 같다. 원작 출판만화 → OTT 시리즈 → 극장판으로 IP(지적재산권)이 확장되고, 이외에도 코스튬 플레이, 굿즈, OST 등 소위 말해 ‘덕질’할 수 있는 상품들이 계속 출시된다. 이런 구조를 통해 수익을 다각화해야 하기 때문에 애니메이션 제작에는 고도의 마케팅 전략이 녹아들어가 있다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


<귀칼>도 그렇고 <체인소 맨>도 아직 애니메이션화해야 할 원작 만화책의 분량들이 있어서 위와 같은 프로세스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리라 생각한다. 문제는 <체인소 맨>의 경우, 앞으로 애니메이션화되는 내용(자객편)이 덴지를 암살하기 위해 전 세계에서 암살자들이 모여든다는 내용인데, 여전히 동성애, 식인 장면 등 자극적인 내용이 많다.


작년에 <케이팝 데몬 헌터스>, <킹 오브 킹스>, <퇴마록>과 같은 작품들이 등장한 것처럼 2026년에도 변함없이 많은 애니메이션이 관객들을 찾아올 것이다. 극장 흥행을 담보하는 주류 콘텐츠로 올라선 애니메이션이 위와 같은 고도의 수익화 전략으로 제작된다는 사실과 ‘재미 지상주의’에 기반한 콘텐츠들이 어떤 위험을 가지고 있는지 충분히 인식하고 콘텐츠를 이용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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