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작년 7월에 광주 양림동에 있는 유진벨 선교 기념관을 방문한 일이 있었다. 유진벨은 광주・전남지역 선교의 아버지로 불리고 있는데 학교와 병원을 세우는 등으로 한국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그는 머나먼 이국땅에서 온 외국인이었기 때문에 한국에서 적응하기가 무척 어려웠다. 이에 대한 심경은 그가 미국의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에 남아있다. 한국 사람들이 관습과 미신에 젖어 살고 있는데 그것을 타파하기가 너무 어렵고, 쌀밥이 입맛에 맞지 않는다는 등 여러 고충이 적혀있다. 그는 왜 이런 먼 나라까지 와서 아내와 아이들을 잃으면서까지 선교활동에 매진했을까?
그뿐만이 아니다. 양림동에는 최홍종 기념관이라는 곳도 있는데 이곳은 광주의 첫 장로이자 목사로 한평생을 한센병 퇴치와 빈민구제, 교육운동에 헌신하는 삶을 사신 최홍종 선생님을 기리는 곳이다. 내가 그의 생애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사망통지서를 돌렸다는 사실이다. 이를테면 사망진단서인 그것을 자신을 아는 모든 이에게 돌리고 이 세상에서 살던 최홍종은 죽었으니 다시는 자신을 찾지 말라고 선언했다고 한다. 이름 석 자를 세상에 알리기 원하는 사람이 부지기수인 세상인데 왜 그는 자신이 죽은 사람이라 칭했을까?
위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은 ‘그들이 세상의 가치가 아니라 하늘의 가치를 따라서 산 사람이기 때문이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세상에서의 명성이나 유행을 따라서 산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삶이 가장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삶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요즘의 세상을 보면 진정 의미 있는 삶보다는 가벼운 삶을 살아가는 경향이 많은 것 같아서 안타깝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탐구보다는 찰나의 즐거움을 좇는 모습이 많이 보인다는 이야기다.
일례로 현재 우리나라에서 마약이 10대들에게까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실제 마약류를 투약하고 있거나 밀수・밀매에 연루된 10대들의 수가 1만 명을 넘을 것으로 추산 한다. 예전보다 이런 젊은 마약사범들을 잡기가 어려워진 것은 이들이 보안이 강한 메신저인 텔레그램을 통해 소통하고 돈거래도 전자화폐로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젊은 친구들은 손쉽게 마약성분이 있는 약물을 온라인을 통래 손에 넣을 수 있다고 한다. 문제는 마약의 제조방법도 온라인을 통해 쉽게 구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작년 7월에 있었던 일본 아베 전 총리의 저격범도 인터넷에서 도면을 구해 3D프린터로 제작한 사제 총기였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사회 전반적으로 마약에 대한 불감증이 퍼져 있는 게 10대들이 마약을 하도록 부추긴다고 지적한다. 유튜브에서는 마약인 코카인을 소재로 한 몽환적인 음악 ‘Kokain 2021’에 맞춰 연예인들이 춤을 추는 영상이 쉽게 나타난다. 일부 맛있는 음식에서는 ‘마약 김밥’,‘마약 떡볶이’처럼 음식에 마약을 수식어로 내세우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마약’이라는 존재 자체가 가벼워지고 희화화되면 마약에 대해서 너무 가볍게 생각해서 접근하는 위험한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요즘은 정신적 육체적 즐거움을 위해서가 아니라 공부를 더 열심히 하려고 각성하기 위해 복용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고 하는데 이것이 모두 마약을 가볍게 여기는 풍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한다. 소기의 목적만을 이루고 그만 두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첫 번의 시도 자체가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맞이하게 한다.
폭력에 대한 불감증도 높아지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히트한 OTT 콘텐츠인 <오징어게임>은 어린이 놀이를 소재로 하고 있지만 그 안에는 최후의 1인이 되기 위해 벌어지는 잔혹한 살인으로 넘쳐난다. 하지만 언론에서 다뤄지는 것은 콘텐츠의 폭력성 보다는 얼마나 많은 수의 사람이 보았으며 또 얼마나 많은 상을 받게 되었는지에 대한 부분이다. OTT는 다른 매체보다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젊은 세대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 최근에 <오징어게임 시즌 2>에 등장할 게임 종목들이 모두 정해졌다는 기사를 보았는데, 궁지에 몰린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해 또 다시 어떤 죽음의 게임들에 참가할지 궁금하다. 아마도 이전 편보다 더 자극적인 내용이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언어적 폭력성에 대해서도 요즘 세상이 많이 관대해졌다고 느끼는 것이 바로 한 배구선수의 욕설을 모티브로 하여 만들어진 식품이다. 모두가 그것이 욕설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것을 나쁘다고 비판하기 보다는 승리를 위한 열정이나 투혼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괜찮다는 생각이 더 많은 것 같다. 이것은 욕은 나쁜 것이라는 절대적인 가치가 무너진 생각이다. 그것이 ‘식빵’이라는 이름으로 희화화되어 돌려 말해지는 것도 문제이지만 정말 식품으로 만들어져 판매된다는 것도 우리 사회가 얼마나 언어폭력에 무뎌졌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 생각한다.
마땅히 지켜져야 하는 도덕적인 가치들이 무너지는 상황은 흡사 사사기 시대를 생각나게 한다.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 17:6).
이러한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이 세대를 본받아서 그냥 흘러가는 데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시대를 역행하는 역행자로 살아가야 한다. 앞서 이 땅에서 모범적인 삶을 살았던 선조들처럼 하나님과 그 분의 뜻을 최고의 가치로 두고 살아가야 한다.
예레미야 35장을 보면 레갑 자손이 등장한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레갑 자손에게 포도주를 마시게 하라고 명하지만 그들은 선조 요나답의 명령에 순종하여 포도주를 마시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이런 모습을 보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는 재앙을 내리지만 레갑 가문만큼은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계속 쓰시겠다는 말씀을 주신다(렘35:19).
세상이 점차 악해지고 시대정신이 점차 가벼워져도 우리는 믿음의 선조들이 말씀대로 순종했던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벽을 세우고 자녀들을 보호하며 그 말씀대로 살아갈 때만이 믿음의 세대계승이 온전히 이루어질 것이고 하나님 앞에 서는 사람들이 영원히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