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소더스 : 신들과 왕들>
이스라엘 민족을 출애굽시킨 영도자 모세에 대한 이야기는 지속적으로 영화화되는 흥미진진한 스토리다. 세실 B. 데밀이 만든 1962년 作 <십계>를 시작으로, 1998년 作 애니메이션 <이집트 왕자> 그리고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이 만들어졌다. 모세와 출애굽기 이야기가 계속 영화화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모세 이야기가 드라마틱한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히브리 노예의 일원으로 태어난 모세가 대학살을 피해 강에 버려지고, 이집트 공주에 의해 ‘물에서 건져진다’. 그는 파라오 일가에서 유복한 한 때를 보내다가, 자신의 신분을 자각하고 바로 왕과 대적하여 자신의 동족인 이스라엘 민족을 구해낸다. 물에서 구조된 아이가 장성하여 자신의 동족들을 구조한다는 이야기는 시대를 뛰어넘어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선사한다.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은 <글래디에이터>, <킹덤 오브 헤븐>으로 유명한 거장 감독 리들리 스콧과의 만남이라 더 기대감이 증폭된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은 기독교적으로 출애굽을 다루고 있을까? 그리하여 관객들에게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감동을 심어줄 수 있을까? 일단 영화는 ‘이스라엘 백성은 고난 중에도 자신들의 고향과 자신들의 신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도 마찬가지였다’라는 자막을 오프닝에서 보여줌으로써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다. 하나님은 영화 내내 아이의 모습으로 나타나 모세와 만나 언쟁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우려스러운 부분도 영화에는 존재한다. 바로의 궁전에 있을 때의 모세는 점쟁이의 신탁을 무시하는 무신론자였다. 그러나 그가 이집트에서 쫓겨나 미디안 족속의 십보라와 가정을 이루고 평범한 목자로 살아가는 그 때에 극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사실 그는 자신이 히브리인이라는 사실을 애써 억누르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 그가 호렙 산에서 하나님을 만나고서부터는 하나님의 명을 따라 이스라엘의 해방을 위해 노력하는 유신론자로 거듭나게 된다. 그는 십보라에게 자신이 하나님을 만났다고 증언하지만 그녀는 모세가 산에서 머리를 다쳐 제정신이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여기서 모세가 하나님과 만나는 장면이 모두 망상(delusion)일 수 있다는 가능성이 발생한다. 그가 하나님과 언쟁하는 장면이 아론에 의해서 자주 목격되는데, 아론의 눈에는 모세 이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이 장면들은 모세가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연출되어 있다. 이러한 장면에서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인물들을 보는 수학자가 등장하는 <뷰티풀 마인드>(2002)가 생각나게 한다.
아울러 영화는 출애굽을 촉발한 10가지 재앙을 하나님의 능력이 아닌 자연현상이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먼저 먹이가 부족해진 나일 강에서 악어 떼들이 사람을 습격하면서 동시에 서로 잡아먹어 온 강이 피로 물들고(이 부분은 나일 강에 토사가 쌓이면서 생긴 적조현상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음), 강의 수질이 나빠져 물고기들이 죽고, 대신 육지에서도 생활이 가능한 개구리가 물 밖으로 몰려나오고, 그 시체가 부패하면서 파리 떼가 나타나고, 이 파리 떼가 온 이집트 땅에 전염병을 퍼트렸다는 식의 설명이 바로 그것이다. 우박이나 흑암과 같은 경우도 이집트의 기상이변으로 답을 찾으려는 학자들도 있다. 문제는 10번째 장자재앙인데,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른 이스라엘 민족은 화를 면하고, 이집트 백성은 장자들이 모두 선별적으로 사망하는 사건은 과학적으로도 설명하기가 힘들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장자가 죽는다고 분명하게 언급하는 부분이 없어서, 과학적으로 해명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는다. 무엇보다 홍해가 갈라지는 클라이맥스 부분에서는 전날 밤 운석 또는 혜성이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장면을 삽입함으로써 중력변동으로 해수면이 하강했을 수도 있다는 여지를 남겨놓는다(재난영화 <딥 임팩트>를 보면 운석이 지구와 충돌한 직후 바닷물이 바다쪽으로 쑥 빠졌다가 다시 엄청난 규모의 해일로 밀려오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위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로도 해석이 될 수도 있다. ①무신론자이면서 합리적 이성을 가진 모세가 자신이 히브리 민족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②궁내 권력다툼에서 밀린 모세가 유배생활을 떠나고, 거기서 머리를 다치는 사고를 만나 이미 들었던 이야기를 기반으로 신을 만나는 망상을 겪는다 ③자신을 몰아낸 파라오 왕조에게 복수하기 위해 반란군을 조직한 모세는 때마침 일어난 자연재해를 힙입어 이집트를 초토화시키고 출애굽에 성공한다.
다시 말해, 영화 <엑소더스...>는 하나님의 출애굽기가 아닌 인간 모세가 출애굽을 완성한 인본주의 이야기로 해석될 수 있다. 영화 속에서 모세는 식량창고를 폭파시키고 양식 수송선을 불태우는 등 테러 활동을 통해 ‘자신의 힘’으로 출애굽을 이루고자 한다. 그러나 이런 더딘 과정을 보다 못한 성질 급한(?) 하나님이 개입하여 10재앙을 내리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또 영화의 후반부에서는 모세가 시내 산에 올라 ‘십계명’을 자기 자신이 돌판에 새기는 장면이 나온다. 이는 다음의 성경말씀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여호와께서 시내 산 위에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마치신 때에 증거판 둘을 모세에게 주시니 이는 돌판이요 하나님이 친히 쓰신 것이더라(출애굽기 31장 18절)’. 여기서 ‘친히 쓰신 것이더라’에 해당하는 NIV 영어성경은 '하나님의 손가락으로 새기다‘(inscribed by the finger of God)이다. 십계명은 모세가 개입하여 기록할 수 있는 돌판이 절대 아니다. 지도자가 죽으면 그를 대신할 법규가 필요하기 때문에 십계명을 만든다는 이유 또한 성경적이지 않다.
대런 아로노프스키의 <노아>도 성경의 원래 내용이 심하게 파괴된 일종의 ‘성서 기반의 판타지’였다. 이 작품에서 노아는 하나님 말씀에 광적으로 집착하여 모든 인류를 절멸하기 위해 홍수에서 살아남은 가족들을 살해하려한다. 세기말의 대재앙을 다룬 <노잉>(2009)도 구원받은 인류가 가는 '천국'이라는 곳이 사실은 외계인이 마련해 놓은 또 다른 행성이라는 설정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요즘 헐리우드 기독영화는 창작자들이 ‘성경’이라는 원 내용에 여러 가지 양념을 추가해서 본래의 의미와는 다른 콘텐츠를 만드는 경우가 많다. <엑소더스...>에서 어린이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하나님도 ‘그 분이 오래 기다리셨다’는 대목에서는 신의 대리자(천사)인 것 같다가도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라는 언급을 하는 등 관객에게 혼란을 준다. 그리고 십계명을 모세가 만들었다는 결말은 성경과 다르다.
물론 성서라는 텍스트 문헌을 시각화하는 과정에서, 작가의 상상력이 가미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화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만들어졌는지, 그리고 영화를 만든 이의 이력은 어떠한지를 파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리들리 스콧이 연출한 <킹덤 오브 헤븐>(2005)은 십자군 전쟁을 다루고 있는데, 기독교과 이슬람의 예루살렘 격전을 그린 이 작품에서 그는 어느 한 쪽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종교적 이념이 가져온 전쟁과 비극에 주목한다. <프로메테우스>(2012)는 인류를 만들어 낸 기원이 ‘엔지니어’라는 외계인이라는 것을 외계행성으로 떠난 탐사대가 밝혀내는 내용이다.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성공적인 콘텐츠의 근간이 되는 요즈음에, 베스트셀러인 성서를 기반으로 한 영화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는 성서의 내용이 대중에게 많이 알려지는 좋은 기회임에 분명하나, 제작진의 상상력이 첨가되면서 원래 내용과는 다르게 왜곡되는 경우가 있어 주의를 요한다. 성서를 모티브로 한 영화를 볼 때는 이런 부분이 있음을 인식하고 함께 어떤 부분이 성경과 다른지 이야기 해보는 것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