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다'는 형용사고 '늙다'는 동사이다.

00. 프롤로그

by 휘삐


‘젊다’는 형용사고 ‘늙다’는 동사이다. 젊음은 인간이 한때 가지는 작은 속성이고 늙음은 끝까지 진행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늙음’이 가지는 가치는 너무도 비루하다. 어쩔 수 없이 상대적으로 짧게 누릴 수 있는 것이 더 큰 가치를 가지기 때문일까. 그렇지만, 인간의 인생은 이제 너무 길어졌고 젊음보다 늙음을 더 오래 짊어지고 가야 한다.


“너는 언젠간 외롭고 아프고 늙은 채 죽어갈 거다.”


저주 같은 말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인간이 이렇게 죽음을 맞이한다.

‘외롭다’, ‘아프다’, ‘죽다’. 너무 우리의 삶과 가까운 단어가 아닌가. 하지만 사람들은 ‘망각’의 축복으로 이것들을 무시한 채 살아간다. 인생은 뜻대로 되지 않으니, 내 마음이라도 마음대로 부릴 수 있으면 성공한 인생 아니겠는가. 하루하루 이런 것을 생각하고 살아가기엔 너무 고달프다.

여기 외롭고 아프고 죽어가는 한 사람이 있다.


그의 이름은 ‘황필순’

본가는 창원이고 파는 안동파이다.


그는 아주 예전에 이웃집에서 죽은 여인이, 남편과 자식들이 무식하고 무심해, 그 여인의 성이 박가인 건 알지만, 어디 박가인지를 몰라 묘비에 어떻게 썼는지 두려워했다. 그 오랜 세월을 살아온 한 사람의 인생이 ‘본’도 없이 기억에서 잊혀지는 것이다. 얼마나 두려운가. 그래서인지 자꾸 나에게 말한다.


“내 본가는 창원이고 파는 안동파다. 단디 기억해라이.”


다시 돌아가서. 출생지는 함안군 군복면 장지리, 38년 유월 생이니 올해 여든세 살이시다.

나는 그의 삶을 기록하려 한다.

그 이유가 뭐냐고 물으면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다. 그저 그의 아프고 외롭고 무료한 하루를 조금이나마 덜려고 시작한 물음이. 나에게 전해온 옛이야기가 나의 외로움과 앞으로의 늙음과 죽음을 건드려서일까.


그렇기에 내가 생애 최초로 접했던 단순한 그녀의 ‘늙음’이 아닌, 내 유전자에 지문처럼 새겨진 그의 성정을 따라 ‘젊음’을 넘어선 그의 ‘어리석음’까지 살피려 한다.


이 인터뷰는 일종의 구술 생애사이다. 그 끝에 무엇을 찾을지는 필순 씨도 나도 모른다. 하지만 기록만으로도 우리에겐 작은 보람이 되지 않을까.


이제 <늙음>을 멈출 황필순이 우리에게 말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