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죽음은 생명을 낳듯 기억을 낳는다.

1. 생애 첫 기억

by 휘삐


필순 씨의 생애 첫 기억은, 공교롭게도 외할머니가 돌아가시는 기억이다.



4살 먹어서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초상 치른 건 기억이 안 나고,
염하는 것만 내 기억한다.


당시 4살이면 1941년도, 아직 광복 전이다. 필순 씨는 일제 강점기를 ‘제국시절’이라고 부른다.


“그때, 작은 할배가 와 가이고, 그때는 사람이 죽으면 소독약을 온 집에 치그든. 근데 그 소독약 냄새가 달달하이 억수로 좋았다.”


달달한 소독약 냄새라. 상상도 안 된다.


“냄새가 달다고요?”

“그래, 요즘은 이상한 걸 넣어서 냄새가 지독한데, 예전에는 냄새가 참 맛있었다.”


4살이면 외할머니와의 기억이 있으면 얼마나 있겠나. 그저 생전 처음 접하는 죽음이 생애 최초의 기억이라니. 그나마 다디단 냄새로 기억된다는 것이 다행일까.

인생의 기승전결이 완벽한 사람은 없다.


‘사람은 언제 죽는다고 생각하시나요?’

생물학적 죽음을 뒤로하고 조금 더 감성을 가져보자.

나는 ‘기억’에 집착하고 의존하는 편이다. 아마 지구 상에 필순 씨의 외할머니의 죽음을 기억하는 마지막 사람은 필순 씨가 아닐까.

인생의 기승전결은 없어도 우리는 생명의 순환은 존재한다. 그저 죽고 태어남이 아주 사실적인 단순함으로 진행되지는 않는다.

생애 최초의 기억이 타인의 죽음이라는 것은 나에게는 큰 상징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나의 최초의 기억은 문간에서 꽃이 활짝 핀 화단을 바라보는 것이다. 한참 기어다닐 무렵이니 1~2살쯤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꽃이 참 아름다우면서 화단에 거름으로 뿌려진 오물 사이를 기어 다니고 싶지 않은 찝찝함이 강렬하다. 시각적 화려함 속에 숨겨진 더러움이라. 생애 첫 기억 치고는 꽤 철학적이다.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생애 첫 기억보다 더욱 분명한 기억은, 자아를 가진 기억이다.

어느 날 잠에서 깨보니, 내 이름과 나이, 그리고 가족 관계가 명확하게 캐릭터성을 부여받은 것처럼 기억이 난다.

아마 4~5살때쯤 무렵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생애 첫 기억이 곧 자아의 자각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필순 씨도 그랬을까.


“할머니가 ‘옥순아~’하고 부르던게 기억이 난다.”


할머니의 이름은 ‘필순’이 아니었다. 정말 놀라운 이야기였다. 경상도에서는 필순이든 옥순이든 이름 끝 자를 따서 부르는 전통 아닌 전통이 있다. 어차피 둘 모두 “순아.”니까 상관 없을까?


“할머니, 그런데 지금은 왜 필순이에요?”


“내가 원래는 옥순이었는데, 작은 아부지가 출생신고를 하는데, 친척이 내 이름 한자를 지어줬어. 근데 이제 더 이상 아를 낳지 말라는 뜻으로 ‘필순’이라 지었다 카데. 근데 그럼 모하노. 내 밑으로 동생이 서이나 있는데.”


참, 웃프면서 흔한 이유였다.

이런 이름에도 불구하고 필순 씨의 첫 자아는 동생과 함께였다.



“내가 다서이나 여섯 먹었을 것이다. 여름에 삼을 삶아서 껍질을 까 가이고 방에다가 널어뒀거든. 그래야지 삼베를 만들고 그걸로 옷을 지어가 입어. 그런데 어느 날 보니까 뭔가 빨간 게 그 사이에 있는 거야.”



“내가 ‘엄마, 이게 뭐꼬?’하니까 엄마가 말하는 게 ‘니 동생이다.’이러쿠더라.”


대체 ‘빨간 거’라니 나는 그 정체가 필순 씨의 동생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 이듬해에, 내가 일곱 먹었나? 그때 남동생이 하나 태어났어. 근데 그게 참 업고 싶더라고. 근데 아가 아를 어케 업노. 그, 니 일본 사람 옷 입은 거 봤나?”

“예, 알아요.”

“어, 거기에 그 이렇게 짜매는 다리짜매는 끄내끼가 있는데 ○○○라 카거든(* 사투리가 심하셔서 못 알아 들었다. 검색해도 안 나오는 것 보니, 정식 명칭은 아닌듯 하다.) 그걸로 둘둘둘 아를 매가이고, 머리랑 허리에 고정하면 아가 딱 잘 업히는 기라. 그래가지고 업고 댕겼제.”

당시에는 어른이고 아(아이)고 모두 맨발로 다녔다고 했다. 조금 살던 사람들은 나무로 만든 게다를 신거나, 쪼리를 신었다는데 그마저도 그 마을에는 거의 없었다고 했다. 험한 길을 다니면 발이 아프고, 겨울에 눈이 오면 얼기 전에 집에 돌아와야 발을 다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도 필순 씨는 7살 나이에 동생이 업고 싶다고 했다.


<계속>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젊다'는 형용사고 '늙다'는 동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