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알이 된 놋숟가락과 숟가락이 된 굴껍질

2. 마지막 유년기

by 휘삐

필순 씨가 8살 되던 해, 그러니까 1945년 8월에 광복이 되었다.

“내, 아즉도 기억난다. ‘대한독립 만세!’ 외치면서 해~방 된~ 민족~(꽤 정감 가는 음의 노래였다.)하는 노래 부르면서, 군대 갔던 총각들 돌아온다고 역에 가서 노래 부르고 안 켔나.”


물론 필순 씨가 태어난 해부터 여덟살이 되는 해까지 길고 긴 해였다.

“그 전에는 사람 사는 기 사는 기 아니었지. 목화를 깨다가지고 면을 만들면 다 공출 나가삐고, 기름을 짜가지고 내라카고, 아카씨아 꽃 씨앗까지 싹 다 바쳐야 켔다.”


“할머니, 그중에서 가장 억울했던게 뭐였어요?”


필순 씨는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놋숟가락.”


꽤 의외의 답변이었다.


“내 놋숟가락 내게 있었는데, 그게 어른들 게 아니라 작은 게 있었어. 근데 그것을 총알 만든다고 싹 다 가져가삤는기라. 놋그릇이며 젓가락이며 집에 있는 놋이란 놋쇠는 죄다 다 빼갔제. 그래서 아침에 밥을 먹어야 카는데 그, 외국 사람들처럼 밥을 손으로 퍼가 무야 카는기야. 그래서 내가 엄마한테 ‘엄마야 내 숟가락 어딨노, 내 숟가락 어딨노.’ 해도 엄마는 암 말도 못하고…….”


다음날 필순 씨의 아버지가 장터에 가서 굴껍질을 몇 개 주워오셨다.

한동안 굴껍질로 밥을 퍼먹으셔야 했다.

당시 8살도 안 된 필순 씨가 그 상황을 순순히 받아들일 리는 없었다.


“내 숟가락 내놓으라고, 내놓으라고 쌩떼를 부렸지.”


그래도 공출 나가 총알이 된 필순 씨의 놋숟가락이 어린아이의 투정으로 돌아올 리는 없었다.


필순 씨의 아버지는 다음 날 또 대밭에 가서 대나무를 꺾어 쪽숟가락을 만들어 왔다.

필순 씨는 탐탁치 않았다. 하지만 굴껍질 보다는 나았는지, 조금은 잠잠해졌다고 했다.


본래 필순 씨의 입속에 한가득 보리며 쌀을 넣어주었을 그 놋숟가락은, 본래의 쓰임을 잃어버린 뒤, 어떤 총각의 가슴에 날아가 박혔을까.


이미 정해져 버린 머나먼 과거지만, 지금 이야기를 들은 나는 그 놋숟가락이 그저 허공에서 사그라졌길 빌어 본다.


얼마 뒤, 필순 씨의 어머니는 장터에 가서 놋숟가락을 사 오셨다. 이번에는 작은 놋숟가락이 아니라 어른용 큰 놋숟가락이라 필순 씨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어쩌랴, 입을 조금 더 크게 벌려서 밥을 집어넣는 수밖에.


필순 씨의 유아기는 이렇듯 총알이 되어 빠르게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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