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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현웅 Oct 31. 2022

독거미는 우리 육군

충성충성

“그 전화 받을 때, ‘통신보안’은 왜 하는 겁니까?”


당직부사관 근무에 갓 투입된 그 후임은 묻는 품새가 꽤나 조심스러웠습니다. 하기야 정당한 의문을 던졌음에도 답을 명쾌히 받기는커녕 핀잔이나 먹었던 기억이, 물상병 짬에 이르기까지 군 생활에 내내 걸쳐 어디 한둘이었겠습니까마는. 그래도 이젠 분대장 견장까지 단 중고참이니 아주 무시를 당하진 않겠지 싶어 용기를 내 질문을 걸었을 텐데요. 안타깝게도 저 역시 그가 물었던 사항에 대해선 제대로 아는 바가 달리 없었습니다.


“글쎄, 통신하면서 보안을 꼭 지키자는 소리겠지?”


하나 마나 한 뻔한 소리에 그는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습니다만. 저라고 어쩔 도리가 있었겠습니까. 정말로 모르는 것을 당장에 제대로 알려줄 방도 따윈 없었으니까요. 인터넷이라곤 육군 인트라넷밖에 안 되던 2010년대 시절 중대 행정실에선 더더욱이나 말이죠.


“혹시 통신보안이라 말하면 도청이 자동으로 막히는 것은 아닙니까?”


“그런 기술이 있어 봤자 포반장님처럼 쑝신봔 그래 버리면 다 뚫리지 않을까. 국방부에서 전화 좀 똑바로 받으라고 공문 몇 번은 내렸을 것 같은데.”


상호 간에 모르는 주제로 말을 이어 간들 어차피 싱거운 대화만 오갈 뿐이라, 저희는 그만 그쯤에서 입을 다물고 말았습니다. 그 이후로도 저는 군문을 나설 때까지 ‘통신보안’에 대해 별다른 의문을 품지 않았습니다. 담긴 뜻은 내내 몰랐으나 굳이 알고 싶었던 적도 딱히 없었고요. 그저 다나까 쓰는 군대에서 ‘여보세요’라 말하긴 뭣하니 갖다 붙인 것이려니 하고 말았을 뿐이었죠.


설령 그 말에 ‘통신하면서 보안을 지키자’는 의도가 정말로 존재했거나, 혹은 그 이상의 뜻깊은 취지가 담겨 있었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었겠습니까. 어차피 병사 태반은 저와 마찬가지로 의미조차 정확히 모르는 채 습관이 된 말을 반사적으로 내뱉었을 따름인데요. 뜻을 되새기기는커녕 뇌조차 변변히 거치지 않고서 말이죠. 만일 육군본부에서 ‘통신보안’ 대신 ‘격세유전’ 같은 뜬금없는 멘트를 하며 받으라는 지시가 왔더라도, 그러려니 하고 말았을 장병이 대부분이었을 것입니다.


언젠가부턴 ‘통신보안’이 ‘군인복무규율을 생활화합시다’로 바뀌었습니다만. ‘군인복무규율 내용이 뭔데’라고 묻자 제대로 답한 후임은 딱히 없었죠./네이버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




여러분도 아마 ‘예배 시간의 고양이’ 우화를 어딘가에서 한 번쯤은 들어 본 기억이 있을 것입니다. 어느 마을의 구루(주로 인도 지방에서 ‘스승’이나 ‘선각자’를 지칭하는 말)가 예배 시간이 가까워 오면 울음소리로 기도를 훼방 놓는 고양이를 먼 올리브나무 밑동에 묶어 두도록 지시를 내렸는데요. 그가 세상을 떠나고도 한참이 지나 마을 사람 전부가 고양이를 묶어 두던 이유를 잊었음에도, 이유 모를 오랜 관습을 깨지 못해 없던 고양이를 사 와서라도 나무에 꼬박꼬박 붙들어 맸다는 내용인데요.


군대에선 이와 비슷한 상황을 심심찮게 접할 수 있습니다. 시키는 쪽도 따르는 쪽도 지시에 내포된 의미는 알지 못하지만, 그저 상부에서 하라고 하니 어떻게든 껍데기라도 핥아 가며 이행하는 척을 해내는 그런 꼴을 말이죠. 


이를테면 그 누군가는 자기 부대 경례 구호인 ‘독거미는 우리 육군’이 상당히 이상하다 싶었으나 아무튼 위에서 시키고 남들도 다 하니 일단 부지런히 따라 외쳤으며, 한참이나 지난 나중에야 그것이 사실 ‘돕고 믿는 우리 육군’의 뭉개진 발음이었음을 비로소 깨달았다는 이야기도 있는데요.


육군에선 고급 지휘관 재량에 따라 경례 구호를 바꿀 수 있는데요. 말로만 들어선 당최 뭔 소리인지 모를 구호도 적지 않은 편이죠./국방TV


사실 따지고 보자면, 비단 군이라는 곳에서만 그러하겠습니까. 구성원이 명분이나 목적 따윈 아는 바 없이 위에서 시키는 짓을 관습적으로만 행하는 모습은 여느 직장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가령 예전엔 회식 때 잔 하나를 여럿이 공유하며 술을 마시는 ‘잔 돌리기’ 퍼포먼스를 강요하는 회사가 꽤 있었는데요. 누군가는 ‘서로가 입을 댄 잔으로 술을 마시는 것조차 견디지 못하면 전우애가 형성될 수 없다’며 그 추잡한 전통을 애써 옹호했습니다만. 코로나 19가 창궐한 이래 그러한 문화가 우리 사회 전반에서 반쯤은 강제로 청산됐음에도, 동료끼리 간접키스를 못 해 와해된 회사가 존재한다는 이야기는 들은 바가 없지 않습니까. 결국엔 별다른 의의도 없는 비위생적인 퍼포먼스를 그저 힘 있는 누군가가 시켰다는 이유로 꾸역꾸역 해 왔을 뿐이라는 것이죠.


이러한 무지성적인 수행이 꼭 ‘헛짓’을 하는 때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럴듯해 보이는 캠페인을 내세우는 상황에도 비슷한 양상이야 얼마든 전개될 수 있죠. ‘애자일’을 슬로건으로 정한 조직인데도 정작 부장급이 애자일의 뜻조차 제대로 모른다거나, 출근 때마다 ‘안전 고리 좋아 좋아 좋아’ 구호를 복창하는 근로자라도 막상 업무에 돌입하면 번거롭거나 불편하다며 장구를 풀어 버리는 모습 또한, 본질 탐구나 숙지는 외면한 채 겉치레에만 급급한 우리네 회사 생활의 흔해 빠진 단면 중 하나니까요.


원칙대로만 한다면야 가정에서도 써먹기를 권장할 만큼 좋은 방법이라곤 합니다만./산업안전기술원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 2018년 10월에 발표한 '국내기업의 업무방식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상장사 직장인 4000명에게 설문한 결과 그들이 평가한 국내기업 업무방식 중 지시 명확성(업무지시 시 배경과 내용을 명확히 설명한다) 부문은 100점 만점에 고작 39점이었습니다. 우리 사회의 업무 관행상 내려오는 지시가 불명확하다 해서 따르지 않을 수도 없으니, 직장인 상당수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윗선의 요청이라도 어찌어찌 시늉만 내며 버티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 고로 선정한 슬로건이 아름답고 벌이는 캠페인에 직원들이 군말 없이 따른다는 이유로, 수뇌부에서 도모하고 추구하는 바가 손색없이 이루어지고 있으리라 쉽사리 믿어 버려선 곤란합니다. 실상 부하들은 그 원대하고도 깊은 뜻을 온전히 새기지 못했음에도 당장을 넘기기 위해 위에서 시키는 사항을 앵무새처럼 되뇌는 것일 뿐일 수도 있거든요. 뜻도 모르고서 ‘통신보안’을 무작정 내뱉거나, 대체 뭔 소리인가 하면서도 어찌어찌 들려오는 대로 ‘독거미는 우리 육군’을 따라 외치던 군인들처럼 말입니다.


그렇기에 훌륭한 기업 신조나 캐치프레이즈를 도입하기에 앞서 상하 간의 투명하고도 원활한 소통 체계는 반드시 견고한 인프라로 갖춰 둘 필요가 있습니다. 상부의 의지가 구성원 개개인에게 효과적으로 파고드는 길로서 기능하는 동시에, 팔로워 쪽에서 지시를 이해하지 못했거나 모종의 의구심이 들었다면 피드백을 즉각 보낼 수 있도록 말이죠. 일찍이 일본 최대 규모의 컨설팅 그룹인 HR인스티튜트 대표 노구치 요시아키가 “소통 능력은 회사의 생존력이며 비즈니스는 곧 소통”이라 강조했던 것도, 바로 그와 같은 맥락의 연장선에서이지 않겠습니까.



더욱 많은 이야기가, '오늘도 출근중'에서 독자 여러분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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