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만 해도 말이죠
“군에서는 계속 같은 메뉴가 반복되기 때문에 좀 더 다양화 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이것은 1999년 10월 5일자 KBS 뉴스에 송출됐던, ‘신세대 장병들, 군음식 입맛 맞지 않아 버리는 양 많아’ 제하 보도 내 현역병 인터뷰 중 일부입니다. 해당 리포트에선 “요즘 신세대 장병들의 반찬 투정이 심해졌다고 한다, 군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다며 남기는 바람에 한해 8톤 트럭 4700여 대분이 버려지고 있다”며 “이틀에 한 번꼴로 나오는 두부와 콩나물 반찬은 외면받는다”고 전했는데요.
솔직히 상식선에서 생각해 보더라도, 설령 두부와 콩나물을 어지간히 좋아한들, 2년 넘는 기간에 걸쳐 그것들이 이틀에 한 번꼴로 밥상에 오르면 물리고 지겹다는 기분이 들지 않기가 오히려 어려울 것입니다. 그것도 심지어 병영식 퀄리티로 말이죠.
임오군란 시절보단 나은 것이 자랑일 정도로 군납 비리가 만연했던 시대에 식재료 품질이야 굳이 말해 무엇하겠습니다. 심지어 그것을 조리하는 병사 대부분은 요리를 전공했던 바가 없는 일개 징집자였고요. 이러한 판국에 식단표마저 유사한 것이 이틀을 멀다 하고 반복되니 장병들로선 여간 고역이 아니었을 테죠.
그럼에도 반발하는 기색을 굳이 내비치는 복무자는 굉장히 드물었는데요. 그 시절 젊은이가 유독 인내심이 탁월하다거나 내적으로 성숙했기에 그랬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단지 불평이 허락되지 않은 시대를 살아가던 그들로선 입을 다무는 길 이외엔 선택 가능한 방도가 없었을 뿐이었습니다.
여러분께서도 익히 아시다시피, 당시엔 군은 물론 병영 바깥에서도 지금보다는 훨씬 엄혹한 기조가 사회 전반을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설령 정당한 사안으로 합리적인 반발을 제기하더라도 높으신 분들은 그것을 폭압적으로 물리치거나 찍어 눌러 버리는 꼴이 허다했죠. 그 누구라도 웬만해선 질리고 싫을 법한 짬밥을 투정이나 어리광 차원에서 거부하는 양 보도했던 기사에서 그러한 모습은 여실히 드러나고 있고요.
이러한 배경을 고려하면 “예전 군인들은 식판에 뭘 얹건 군말 없이 잘 먹었는데 요즘 녀석들은 배가 불러서 잔말이 많다”는 힐난의 허점이 곧장 눈에 들어오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선조들은 불만이 전연 없었기에 형편없는 밥을 마주하는 내내 침묵했던 것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저 말할 수 없고 애써 말해 본들 괜한 손해만 더할 뿐이었을 당대의 모질고 험악했던 분위기가 문제 제기 자체를 원천 봉쇄해 버린 탓에, 실존하는 불만 태반은 수면 위로 오를 수가 없었을 뿐이었던 것입니다. 뒤집어 말하자면 요즘 장병들이 보다 나약하기에 응석이 심해졌다 치부하기만도 어려울 테고요.
사실 한국의 직장 문화가 변해온 과정 또한 이와 별반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요즘 젊은것’들은 도통 만족을 모르고 매사에 불평불만이 많다고들 흔히 말은 합니다만. 사실 회사가 정년에 이르도록 직원의 삶을 지탱해 주리라는 믿음이 있었던, 그리고 거액 대출이라도 끼면 집을 얻을 희망이 있었기에 근로자 대다수가 일터에 삶을 저당 잡히는 길을 자발적으로 택했던 과거 시절에나 불편한 속마음을 윗선에 굳이 내비친들 유리할 구석이 드물었죠.
하지만 저성장 기조에 불황의 장기화가 겹치며 인생 전반에선 경쟁이 심화되고, 지친 끝에 레이스에서의 이탈을 스스로 택하며 연애와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는 젊은이가 속출하는 근래엔, 예전보다는 ‘물주’의 눈치를 볼 필요가 확연히 줄어 버리게 됐습니다. 설령 지출 규모를 어느 정도 유지하는 사람일지라도 과거에 비해선 이직이 자유로워진 덕에 지금 몸담은 기업에만 충성하며 잘 보이고 목을 맬 필요 자체는 이래저래 희박해졌고요.
이러한 각종 환경 변화가 중첩된 결과 ‘요즘 젊은것’들은 더 이상 언행을 사리지 않게 된 것입니다. 군에서의 식단에 대한 항의와 마찬가지로, 옛날에는 없었던 불만이 해이하고 방종한 신세대 청년들 틈바구니에서 새로이 돋아난 것이 아니라, 그들을 억압하고 짓누르던 제약이 엷어지자 세태를 막론하고 상존했던 언짢음이 틈새를 비집고 표출되는 셈이죠.
이러한 시대의 흐름을 무시하고 ‘나는 너희만 할 때 참았는데 너희는 왜 참지 않느냐’고 꾸짖으면 존중을 받을 길은 한층 더 요원해질 것입니다. 천지 분간을 못 하고 이미 바뀌어 버린 세상에 본인의 체험을 들이미는 행위는 대표적인 ‘꼰대질’ 중 하나로 꼽히니까요. 실제로 지난 2018년 7월 사람인이 국민일보와 함께 진행했던 설문에서 ‘기성 꼰대의 가장 주요한 꼰대질’로 지목됐던 것이 바로 ‘자기 경험이 전부인 양 충고나 지적을 하며 가르치려 들기’(52.4%·복수 응답)였습니다.
물론 불만을 표출하는 어린 세대가 모두 옳거나 정당한 것만도 아니고, 급변하는 사회에 뒤처지는 바가 전혀 없도록 웃어른들이 온전히 발맞춰 바뀌라는 것도 너무 가혹한 처사입니다만. 적어도 문화 지체가 명백히 관찰될 정도로 지나 버린 세상의 사고 체계에만 흠뻑 젖은 모습을 보여선 곤란할 것입니다. 현시대에 어긋나는 언행을 남발하는 인물은 어차피 기업 입장에서도 지대한 쓸모가 있으리라 기대하긴 어려울 테니까요. ‘요즘 것들’에게만 일방적으로 부조리에 적응하는 노력을 강요하기보다는, 기성세대 역시 변해버린 현실에 조금이라도 더 적응하려는 노력은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