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를 너무 일찍 빼지 않기, IC 칩이 위로 가도록 카드 넣기, 시간이 지나면 화면이 다시 초기화되니 당황하지 말고 처음부터 천천히 하기….’
충남교육청이 지난달 20일 충청남도문해교육센터 및 롯데지알에스와 협력해 발간한 ‘무인 주문기 길라잡이’ 책자 내용 중 일부입니다. 키오스크와 같은 디지털 기기를 다루는 데 어려움을 겪는 고령층을 위한 안내서입니다.
대다수 디지털 기술은 젊은이들에겐 굳이 설명할 필요조차 느끼기 어려운 상식의 영역입니다. 그러나 노년층 상당수는 이러한 일상적인 서비스 이용조차 버거움을 느끼곤 합니다. HP코리아가 지난달 수도권에 거주하는 만 20∼59세 600명, 60∼79세 400명 등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디지털 문해력 실태 조사에서 노년층 중 65%는 디지털 기술 미숙으로 일상에서 불편을 겪었다고 응답했습니다. 이는 20~59세(13%)보다 다섯 배 높은 수치입니다.
물론 노인이 청년에 비해 최신 문물을 다루기 어려워하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한 보편적 현상입니다. 문제는 그러한 세대차를 유발하는 기술 발전과 변화 속도가 지나치게 빨라졌다는 점입니다. 인간은 주변과의 급격한 ‘기술 격차’에 심한 소외감을 느끼곤 합니다. 이를테면 제가 군 복무를 하던 때 연대장이 훈시 도중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내가 소위로 임관했던 80년대 초반보다, 지금 여러분들이 군 생활을 하기가 훨씬 괴로울 것이다.” 훈련 난이도나 병영 내 괴롭힘 수준의 차이를 논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요지는 군대와 사회 간의 기술 격차였습니다. 가령 요즘엔 누구나 손쉽게 쓰는 PC나 스마트폰 등을, 군대에서는 특정한 시간에나 제한적으로 만져볼 따름입니다. 과거에도 당연히 병영과 바깥 간에 생활 수준 차이는 있었지만 지금만큼이나 극적이진 않았습니다. 예전에 비해 훨씬 심해진 민간인과 장병 사이 누릴 수 있는 기술의 격차. 이것이 현시대 군 복무자들을 보다 우울하고도 괴롭게 한다는 게 연대장의 말이었습니다.
노년층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상에서 접할 수는 있을지언정 젊은이만큼 능숙하게 다루긴 어려운 기술이 예전에 비해 너무나도 많아졌습니다. 이러한 현실에 노인들은 심적 위축과 소외감을 느낍니다. 그렇기에 국가인권위원회에서도 지난해 2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에게 디지털에 익숙지 않은 노년층의 소외 방지를 위해 노인 맞춤형 교육 시행, 디지털 기기 개발·보급 지원, 아날로그 접근권 보장, 헬프데스크 설치 등을 권고했던 바 있습니다.
지난 7월 통계청이 발표한 ‘2024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에 따르면 내국인 중 65세 이상 비율은 전체 인구 대비 19.5%에 달했습니다. 많은 어르신들이 현대 문물을 따라잡지 못해 소외감을 느끼는 나라에선 건전한 성장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기술 자체의 발전도 물론 중요하지만, 뒤처지는 사람들을 받쳐 주는 배려 또한 결코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될 일입니다.
원문은 2025년 9월 5일자 조선일보 지면에 기재된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