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 4등이지만, 자퇴하고 싶습니다.

픽션|나는 여름이 두려웠다

by 문현웅

나는 고등학교가 싫다. 20년 넘게 지난 지금도 싫다. 기숙사 기상나팔 소리에 눈을 뜨면 아침구보를 해야 했던 나날도, 매일 아침 7시부터 저녁 11시에 이르는 동안을 그저 교실 안에 머물러야만 했던 세월도, 툭하면 사감이 규정위반을 명분으로 사내들 가랑이를 매만지던 기억도, 나는 무엇 하나 추억으로 포장할 수 없다.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의대, 치대, 한의대, 간호대, 교대. 우리는 명문대에 03학번으로 합격한, 자랑스러운 선배들의 이름이 즐비한 플래카드 밑으로 첫 등교를 했다. 새로 취임한 교장은 선대의 성과에 만족하지 않았다. 갓 입학한 1학년부터 특별히 관리할 것을 선언했다. 배정받은 학급과는 별개로 심화 A반을 편성한다. 상위 30명 학생은 그 반에 따로 모아 이른 시기부터 수능 머신으로 육성한다. 더불어 승강제를 실시해 성적이 떨어질 경우 차상위로 마련한 심화 B반으로 강등한다. 전략의 요지는 대략 그러했다. 목표치는 03년도 입시 성과의 두 배. 고로 서울대는 6명, 연고대는 도합 20명을 보낸다는 계획이었다. 지방 평준화 일반고에서.


통학 거리가 상당했던 데다 입학 배치고사에서 최상위권에 들기까지 했던 나는, 교장의 입시 전략에서 선봉에 서게 될 정예 요원 중 하나인, 기숙사 우선 입소 대상으로 자동 지정됐다. 2층 침대 3개가 놓인 3평 남짓한 방에서 지내며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공부 이외엔 그 무엇도 허락받지 못하는, 어떤 면에서는 군대보다 더했던 3년에 걸친 통제는 입학식 당일부터 시작됐다.


수면은 자정부터 허락됐다. 기상 시간은 일괄 6시. 기숙사 1층에 판옵티콘 구조로 배치된 컴퓨터 12대는, 인터넷 강의를 듣는 때에만 제한적으로 이용할 수 있었다. TV는 없었고, 서적류는 검열을 받아야만 반입 가능했다. 스마트폰 같은 것은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시절이다. 기숙사에선 숙식을 제외하면 공부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공부라도 하지 않으면 미쳐 버릴 것 같았다. 물론 그것은 학교가 바라 마지않던 바였다.


전교 1등부터 30등이 일요일 단 하루를 제외한 매일을 같은 반에서 마주친다. 그들 중 대다수는 기숙사에서 먹고 자는 순간까지 함께한다. 잔혹하다. 실시간으로 피가 마른다. 게다가 불운이면 불운이랄까. 우리 시대에, 우리 학년은, 시험 때마다 서열이 흔히 뒤집히는 대난전 기수였다. 워낙 서로가 서로를 물고 늘어지며 등수가 뒤엉켰던 탓에, 결국 서울대를 지역균형전형으로 지원할 수 있는 학생을 배출하지 못했을 정도였다. 내신 최상위를 독보적으로 유지하는 에이스가 없었는지라, 지역균형전형 환산점수로는 서울대 최하위권 학과마저도 충족 가능한 인물이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대학 진학이 삶의 전부일 시기에, 아직은 미숙하기 짝이 없는 학생들이, '내신'이라는 지극히 눈에 보이는 경쟁을 거듭하는 동안, 서로를 질투하고 견제하지 않으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이러한 고통스러운 무질서 속에서, 동창들은, 친애하는 나의 적들은, 시험 결과가 벽보로 나붙을 때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분위기를 자아냈다. 인간을 대하는 기술이 굉장히 미숙했던 나는, 한 달에도 몇 번은 발표가 나는 내신과 모의고사 성적에 주변이 요란하게 울고 웃을 때, 어떠한 대응이 처세에 좋을지를 적절히 가늠하질 못했다. 집으로 도망갈 수도 없다. 이미 나의 집은 기숙사였으니.


상위권 학생들 사이에선 육체적 폭력은 아무래도 덜했다. 하지만 정신적인 압박이나 괴롭힘에서 오는 고통은 결코 무시할 수준이 아니었다. 나는 우리 지역에 최상위권 중학생이라면 누구나 발을 들이는 엘리트 학원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예전엔 미처 알지 못했다. 자연히 고교에서도 성적 우수자 대부분은 그곳을 중심으로 인맥이 형성돼 있다는 것 또한 알아챌 도리가 없었다. 심화 A반 학부모와 학생 태반은 이미 중학생 시절부터 친구며 지인이었고, 나는 그들 사이에서 물을 흐리는 공공의 적일 뿐이었다. 더군다나 같은 중학교에서 진학한 7명 중 대부분은 내가 예전 학교에서부터 눈치 없는 왕따였다는 소문을 즐기듯 살포할 따름이었다.


비아냥이나 모욕에 견디는 내성은 중학생 시절에 비해 그리 대단히 나아지진 않았던 시절이었다. 학교나 기숙사 안에는 몸을 숨기고서 울 만한 공간도 없었다. 일요일 내내 울며 잠들기를 반복하다, 개그콘서트가 끝날 즈음이면 기숙사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갓 낳은 알을 뺏긴 닭처럼 멍해지는 일상에, 나는 어느덧 닳아져만 가고 있었다.


/Nano Banana Pro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봄의 끝자락에 이르렀다. 본격적인 지옥은 그때부터 눈앞에 아른거렸다. 머지않아 여름이다. 교실에는 에어컨이 없었다. 일과 중에 씻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리고 일과는 오전 7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이어진다. 심화 A반 학생에게 주어지는 방학은 단 5일. 주말 포함이다. 나머지 여름날은 열외 불가한 '특별수업'과 '자율학습'으로 가득하다. 망가진 나의 육신은 이미 황폐해진 정신과 더불어 그것을 버텨내리라 기대할 수 없다. 공포. 당시 내가 가장 생생하게 느꼈던 감정은, 인간으로서의 삶이 진지하게 위협당하는 공포였다.


"자퇴하고 싶어요."


짐을 챙겨 돌아가던 어느 토요일 오후, 나는 운전대를 잡은 아버지께 그렇게 말했다. 아버지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침묵을 깬 쪽은 동승석에 앉은 어머니였다.


"여름 때문이니?"


"네."


물론 그간 부모님과 학교 생활의 어려움을 논하며, 최상위권 학생들과의 갈등에서 비롯한 정신적 피폐까지 세세히 읊었던 바는 달리 없었다. 하지만 부모님은 나의 몸에 대해, 그리고 그것이 수반하는 고통에 대해선 익히 잘 알고 계셨다. 수술이 실패한 이래 부모님께서도 매년 여름이면 목도해 왔던, 내가 필사적으로 견뎌야 했던 괴로움의 크기만을 감안하더라도, 고등학교 생활이 결코 순탄할 수 없다는 사실은 어려움 없이 전할 수 있었다.


"그래도, 전교 4등이잖니. 성적 유지하면 수시도 해 볼 만할 거고. 입시를 떠나서도 나이 먹으면 고등학교 인맥이라는 것이 사는 데 도움이 많이 되고 그래."


"그렇다 해도. 당장 여름을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어차피 집에도 에어컨은 없잖니."


"그래도 집에선 자주 씻을 수 있고, 다른 사람들 신경 쓸 필요는 없으니까요. 공부만 하면 되고."


이윽고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미안하다."


"......"


"네 체질이 그런 것은 다 내 유전이고, 수술 때문에 그렇게 된 것도 다 내가 수술하자고 해서 그런 거니까. 그래서 난 솔직히, 네가 서울대보다 훨씬 못한 대학 가도 뭐라 하지 않을 거다. 다 내 잘못이고 업보인데. 어떻게 너한테 내가 그럴 수 있겠어."


잠깐의 침묵이 이어졌다. 어머니께서 숨죽여 우는 듯했다. 아버지는 다시 힘겹게 입을 열었다.


"그래도. 순전 내 생각만 말하자면. 나는 그래도 학교에서 견딜 수 있을 만큼은 견뎌 보면 좋겠다 생각한다.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라. 아빠는 네가 평범하게 살면 좋겠다. 남들처럼 학교 다 나오고. 남들처럼 직장 다니고. 특별한 사람이 아니어도 괜찮으니까. 나는 그냥 나 때문에 사는 데 지장 많은 우리 아들이, 그럼에도 조금 더 견뎌 줘서 남들만큼은 평범하게 살 수 있었으면 싶다."


아주 납득한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적어도 그날만큼은 자퇴 이야기를 더 이상 꺼내지 않았다. 아무튼 아버지의 입장도, 아버지의 소원도, 아버지의 미안함도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기에. 조금만 더 시험해 보자. 본격적인 여름을 맞이하는 때, 나의 생명력이 고등학교의 삶을 버텨낼 수 있을지를. 그러한 마음으로 나는 한 발짝을 물러섰다.


그러나 신체와 정신 이슈 따위를 넘어, 진정으로 서울대를 목표로 하는 학생이라면 고등학교에 남을 수밖에 없었던 사건이, 바로 다음 순간 나의 인생으로 운명처럼 찾아 들어왔다. 자퇴라는 말을 입에 올린 지 불과 2주도 지나지 않았던 때였다.



#이 이야기는 픽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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