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션|그 거짓말은, 어쩌면 진실이었을까, 아니, 그럴 리는 없겠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건대 복선이랄 것은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조금씩 드러나고 있었다. 그것은 아마도 전교생을 대상으로 실시했던 IQ 테스트 직후, 담임이 나를 비롯해 단 두 명만을 교무실로 남몰래 불러냈던 순간부터 시작되지 않았을까.
"너희 둘 IQ가 전교 최고점이다."
당황했다. 이 무슨 얼토당토않은 말인가. 나는 물론 그 친구도 결코 전교 최상위권 성적은 아니었다. 교내에서 두뇌로 정평이 나 있던 아이들은 따로 있었다. 그러나 선생님은 농담이라 말하지 않았다.
"너희들은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야. 자신감을 갖고 공부해 봐."
담백하게도, 그러한 말만을 남기고선, 선생님은 우리를 돌려보냈다. 설레지 않았다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가슴이 뛰었다. 가능성이 있다니. 공부 쪽으로 가망이 있는 머리라니. 한때는 희망을 잃고 집으로, 그리고 내면으로 달아나 침잠했던 내게도, 아직은 역전의 실마리가 존재하고 있었다니.
물론, 아마도, 그 검사 자체가 반쯤은 엉터리였을 것이다. 선생님께서 일러 준 나와 친구의 IQ 결괏값은 150이었다. 말 같지도 않은 수치다. 요즘 같았으면 그런 업체는 이미 인터넷 방방곡곡에서 조리돌림을 전방위로 당했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당시는 정보가 턱없이 부족한 시대였다. 더군다나 어리기까지 했던 우리는, 그것이 우스울 정도로 비현실적인 값이란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다.
의욕이란 것은 때론 사소한 동기에도 격렬한 자극을 받기 마련이다. 설령 그것이 터무니없는 거짓이라 할지라도. 허황된 IQ에 한껏 기댄 나는 다시금 커다란 꿈을 틔우고야 말았다. 그날부터였다. 마구잡이로 흐르는 땀에 맞서, 겨드랑이에 손수건을 끼우고, 배에는 수건을 두르고 공부에 매진하기 시작한 것은. 점심시간이 지나면 수도꼭지에 머리를 박고서 땀을 털어내고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그러한 꼬락서니를, 다른 아이들이 어떠한 표정으로 쳐다보건, 나는 상관하지 않았다. 이미 파탄난 인간관계는 차라리 복이었다. 무엇 하나 신경 쓸 이유가 없었다. 오로지 학업에만 집중하면 그만일 따름이니.
성적은 기대 이상으로 빠르게 올랐다. 3학년 기말고사 즈음엔 전교 20위권 이내로 재진입했다. 물론 감히 서울대를 논하기엔 여전히 가엾고도 딱한 수준이다. 하지만 60위 안팎을 한참이나 맴돌다, 단기간에 40 계단을 넘게 뛰어 오른, 폭발적인 성장세 그 자체가 내게는 적잖이 고무적이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의 꿈은, 나의 꿈은,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고등학교는 집에서 굉장히 먼 곳으로 배정됐다. 버스를 타고 가더라도 편도로 40분은 넘게 걸렸다. 불행은 그렇다 치고, 무엇이 다행이었냐 하면, 워낙 뚝 떨어진 학교였던 만큼 같은 중학교에서 배정된 동기는 불과 7명뿐이었다는 것이다. 초등학교에서 비롯해 중학교로 이어지는 과거의 악연이나 질척한 기억을 어느 정도 청산할 기회를 자연스레 얻게 된 셈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아주 순탄하진 않았다. 신입생이 개학을 앞두고 일괄적으로 응시하는 국영수 과목 한정 반배치 고사에서, 나는 뜬금없이 전교 9등을 기록해 버렸던 것이다. 그나마도 저것은 중학교 내신성적을 합산 반영한 조정값이었다. 시험 점수만 놓고 보면 320명 중 전교 4등. 난생처음 목도하는 한 자릿수 서열이었다.
등수가 높으면 그저 좋을 일이지, 순탄치 못할 것은 또 무어란 말인가. 이 또한 나름의 배경이 있었다. 당시 우리 고등학교는 새로 취임하신 교장선생님이 굉장한 의욕을 보이며, 명문고 도약을 목표로 삼고서 지역에서 공부로 이름을 날린 아이들을 하나하나 핀포인트로 스카우트해 1지망 지원을 유도하던 상황이었다. 그들을 위해 종전까진 3학년과 축구부에게만 개방하던 기숙사 90석 중 30석을 1학년에게 배정해 주었을 정도였다.
평준화 일반고 배정은 추첨제였던 시절이다. 섭외에 피치 못할 제약은 분명 존재했다. 그럼에도 헤드헌팅 타깃이었던 아이 중 상당수는 실제로 우리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섭외 대상이긴커녕 존재하는 줄도 몰랐던 학생이, 어렵게 모셔 온 올스타 대부분을 밀어내고 선두권에 올라앉아버린 것이다.
나도 놀랐고, 학교도 놀랐지만, 더욱 놀란 것은 학부모들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최상위권 학부모들은 입시를 대비하는 때 그려 두는 큰그림이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다. 그들 사이에선 자녀의 내신 관리 계획 정도는 획득 가능한 정보 내에서 설계가 마무리된 상황이었다. 그것이 갑작스레 예고 없이 튀어나온 다크호스의 난동에 어그러질 위기를 맞이한 것이다. 첫 시험부터 소란을 피운 검은 말이 나 하나에 그치진 않았다는 사실이 그나마 위안이긴 했으나, 아무튼 학교 측의 삼고초려에 응해 1지망을 적었던 학부모들의 눈에, 그리고 학생들의 눈에, 그런 무엄한 복병들이 고와 보일 수는 없었던 노릇이다.
나의 학창 생활은 그렇게, 또다시 미움으로 첫걸음을 뗐다. 내 잘못이라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내 운명이라 말하기엔 부족함이 없다. 매번 형태를 달리할 뿐, 나의 삶은 어느 곳에 다다르건 결국엔 시련의 연속이다. 아무렴 어떤가. 그쯤 되니 그러한 고통을, 그러한 숙명을, 이제는 덤덤히 받아들일 때도 된 것이라 생각하고 말았다. 열일곱이었다.
여담으로, 중학교 시절 검사를 '완전'이 아닌 '반쯤' 엉터리라 했던 것은 무슨 의미였던 것일까. 나름의 근거는 있다. 도출한 결괏값 자체는 터무니없긴 했어도, 아무튼 우리의 미래를 아주 그릇되게 예측하진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물론이거니와, 나와 더불어 IQ 최고점이었다는 친구까지도. 사실 예언은 나보다도 친구 쪽에서 훨씬 정확히 들어맞았다. 그는 훗날 05년도 수능 광주·전남 이과 수석 타이틀을 거머쥐는 파란을 일으킨다. 서울대를 비롯한 주요 의대와 치대 합격증을 석권해 버린 것은 당연지사다.
더불어 IQ 검사와 동시에 진행된 EQ 검사에서, 나는 200점 만점에 85점을 기록했다. 이는 정서와 감정 능력의 부족으로 문제를 겪을 우려가 있는 수치라 한다. 그 검사가 결과로 제시하는 숫자는 다소 극단적이었을지언정, 응시한 아이들의 경향성만큼은 나름 타당한 수준으로 읽어냈다는 것이다. 그것이 과학적 근거와 합리에 기댄 분석이었는지, 그저 스쳐 지나는 우연의 극치에 불과했을지는, 아직도 모를 일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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