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선생님도 실수를 한다

픽션|선생님은 경험이 부족했고, 나는 운이 모자랐다

by 문현웅

"암행어사라는 것을 해 볼 거야."


중2병이 중학교 2학년 때 오는 것도 복이라는 말이 있다. 나는 불행히도 그러한 행운을 타고나지 못했다. 중2병이라는 것은 사실 따지고 보면 타인과의 관계성 속에서 발현되는 질환의 일종이다. 연령대에 어울리는 정상적인 인간관계를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유예해 버린 나로서는, 내재된 중2병을 주변에 한껏 표출할 기회마저도 제때 얻어내지 못했다.


당시 중2병을 가장 지독하게 앓았던 이는, 굳이 따지자면, 오히려 우리 반 담임 선생님 쪽이 아니었을까 한다. 선생님은 임용고시에 갓 통과한 신출내기였다. 발령과 동시에 담임을 맡은 그에게선 눈에 띌 정도로 의욕이 흘러넘쳤다. 아마도 사범대 재학 시절부터 밑그림을 그린 듯한 실험적인 운영안을, 실제 교육 현장에 적용해 보려는 시도를 줄기차게 거듭했다. 2학기 초 즈음 불쑥 제안했던 '암행어사'라는 시스템도 그러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그런 표정 하지 말고."


담임의 설명을 듣는 동안, 나는 어지간히도 안색이 좋지 않았던 모양이다. 당연하다면 당연할 것이다. 반 아이들의 행동을 남몰래 지켜보고 문제가 될 만한 내용을 보고하는 역할이라니. 말이 좋아 암행어사지, 엄밀히 따지자면 학급 내에서 교사의 끄나풀 노릇을 도맡으라는 소리가 아닌가.


"암행어사가 나쁜 사람 잡는 일만 하는 게 아니거든. 착한 일 하는 사람 찾아내서 보고하는 것도 암행어사 임무였어."


나는 줄곧 말이 없었다. 벌을 내릴 아이와 상을 줄 아이를 구분하고 추천할 권리를 부여받는 것은, 분명 학생 수준에선 학급 임원조차 웬만해선 기대하기 어려운 막강한 혜택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도무지 내키질 않았다. 권력 따윈 조금도 관심 없었다. 그저 어떤 식으로건 다른 아이들과 얽히고 싶지 않다는 마음뿐이었다.


"고자질 같아서 싫어요."


"그렇게 생각하지 말고. 선생님은 선생님이라서 잘 안 보이고 못 보기도 하는 부분이 분명 있을 것이거든. 그것을 도와주는 일이다 하고 생각하면 돼."


의도는 좋았다. 담임 말대로 아이들과 더불어 지내며 같은 눈높이에서 관찰해야 비로소 보이는 것은 분명 존재한다. 선생님 본인 선에서 어떻게든 해결해 보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다. 때로는 학급 아이들을 조리실에 불러 모아 직접 만든 간식을 나누어 주기도 했다. 어떤 날엔 삼겹살을 반 전체가 먹고도 남을 정도로 잔뜩 사들고 와서는 운동장에 불판을 깔고 한참을 굽는 모습을 보였다. 그럼에도 교사와 학생 사이의 좁힐 수 없는 심리적인 간극은 분명했을 것이며, 결국엔 나름대로 고안한 작전 중 하나를 도입해 보는 상황까지 이른 것이다.


"근데 왜 하필 저인가요."


"너무 친한 친구가 잘 없으면서도, 눈에 별로 띄지 않는 편이고, 판단도 공정하게 내릴 수 있는 사람이 맡아야 하거든. 선생님이 보기엔 우리 반에서 그 조건에 제일 잘 맞는 학생이 너인 것 같아서."


머리가 지끈거렸다. 절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선생님은 분명 좋은 사람이었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론 그랬다. 방향이야 어찌 됐건 학생들을 최대한 깊이 파악하고 이해해 보려는 마음씨와 노력 자체는 적잖이 가상했다. 그런 사람의 제안을 굳이 끝끝내 거절해 가며 실망을 선사하고 싶진 않았다. 물론 행여라도 선생님과의 사이마저 틀어지는 바람에 닥쳐올지도 모를 후폭풍 또한 계산을 아니할 순 없다. 얼굴을 잔뜩 구긴 채 나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선생님은 내 손을 꼭 잡고서 맑게 웃었다.


그렇게 나는 한동안 밀정으로 살았다. 눈에 띄는 인상적인 사건이나 아이들의 행동을 남몰래 수첩에 차곡차곡 적어 두었다. 다만 그것을 선생님께 전하려 하면, 그는 언젠가 한꺼번에 처리할 날이 있을 것이라며 확인을 번번이 보류했다. 어차피 거듭 묻는다 해서 답을 얻어 낼 가망이 있었겠는가. 나는 그저 말없이 물러나 기록을 계속해 나갈 따름이었다.


이것만으론 중2병을 지독하게 앓은 쪽이 다름 아닌 선생님이었다는 표현을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다. 당연하다. 진정으로 사달이 난 시점은 지금부터이기 때문이다. 지령이 떨어진 이후 한 달 즈음이나 지났던 때였을까. 종례를 진행하던 담임은, 문득 근엄한 표정을 짓나 싶더니 이내 말을 이었다.


"얘들아, 실은 말이야. 선생님이 암행어사라는 것을 해 보았어. 암행어사 알지? 조선 시대에 임금님이 파견하는, 나쁜 짓을 한 관리를 찾아내거나 착한 일을 한 백성들을 추천하는 그거."


어리둥절한 아이들 사이로, 나는 순간 얼굴이 창백해졌다.


"자, 그럼 우리 반 암행어사가 한 조사 결과를 들어 볼까? 다 같이 외쳐 보자, 암행어사 출두야!"


오마패.jpg /위키백과 유저 'singme'


그는 미친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지금 벌어지는 상황을 온전히 설명할 길이 없다. 도대체 사람에게 중2병이 어떻게 깃들면 이런 식으로 엇나가는 발현이 돼 버릴 수 있단 말인가. 공인된 밀고자를 감시 대상들 앞에서 당당히 공개하는 카타르시스는 대체 어떠한 사고 회로에서 비롯할 수 있는 발상인 것인가.


"암행어사 출두야!"


아이들은 어안이 벙벙한 와중에도 선생님을 따라 외쳤다. 선생님은 내게 일어나라는 손짓을 했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온몸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어지러웠다. 교실이 빙빙 돌았다.


"자, 고생한 친구에게 박수! 암행어사에게 이제, 이번 달에 잘 한 학생과 잘못한 학생은 누가 있는지 물어보도록 할까?"


공허한 박수, 건조한 눈빛, 쏘아보는 쉰여덟 개의 눈동자. 나는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순간 머릿속에서 울컥이며 차오르는 무언가가 느껴졌다. 귓가에선 삐 하는 소리가 울렸다. 동시에 눈앞은 전파가 끊긴 텔레비전처럼 회색빛 잔상으로 물들었다.


"아...... 으아...... 아......"


그 이후로는 기억이 없다. 어쩌면 흠뻑 젖은 몸뚱이가 별안간 실이 끊긴 마리오네트처럼 맥없이 앞으로 넘어졌던 것은 아닐까. 선생님과 아이들은 아마도 무어라고 다급히 외쳤겠지. 모르겠다. 알고 싶지도 않다. 벌어졌던 모든 일들은 내겐 그저 못내 지워내고픈 비참한 기억의 편린들일뿐이다.


미처 발설을 하기도 전에 정신을 놓아 버렸던 탓일까. 사건 이후로도 아이들은 예전보다 살짝 더 병신 취급하며 무시했을 뿐, 나를 대하는 태도가 큰 틀에서는 아주 드라마틱한 수준으로 달라지진 않았다. 밀정으로서 상응하는 보복을 염려했던 나는 그만하면 꽤 넉넉한 선방이라 생각했다. 설령 내가 의식을 붙들 수 있었다 한들 차라리 일부로라도 기절한 척을 해 버리는 것이 처세라는 관점에선 아마도 훨씬 유리했으리라. 그러한 나름의 깨우침마저 내겐 있었다.


훗날 대학 입시를 마무리한 직후 나는 담임 선생님을 찾아갔다. 복수 같은 것은 딱히 생각하진 않았다. 그저 대관절 무슨 생각으로 그러한 일을 벌였던 것인지가 궁금했을 따름이었다. 선생님은 여전히 그 중학교에 있었다. 전근을 목전에 둔, 5년차를 꽉 채운 공립학교 교사로서. 선생님은 서울대 합격을 축하하며 점심을 대접했다. 그리고는 고개 숙여 사과했다.


"정말 미안했다. 그때는 내가 정말 잘못했어. 나는 그저 아이들이 자기들 중 누군가가 암행어사로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앞으로는 그것을 의식하고 행동을 조심할 것이라고만 생각했던 거야. 암행어사한테는 학생의 시각으로 학급 상황을 파악할 수 있을 거라고 계산했고. 생각이 짧았던 거지. 아이들이 암행어사를 어떻게 생각할지, 암행어사를 맡은 애의 학교 생활이나 교우 관계는 어떻게 될 것인지를 고려에 넣질 않았으니. 그런 것들이 담임교사로선 훨씬 중요했을 문제일 텐데도."


갓 스무 살이 된 나는 선생님을 흔쾌히 용서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담임의 초임 발령 시절과 동갑이 된 스물 다섯 때에는, 그리고 그 이후로도 세월이 흘러 나이를 훨씬 더 먹은 시점엔, 나는 오히려 선생님을 한층 더 깊이 이해하며 훨씬 너그러이 용서할 수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예외는 없다. 암만 나이를 많이 먹건, 직급이 올라가건, 풍부한 경험을 쌓아 나가건. 나 역시 그러했고, 지금도 그러하고 있다. 그렇게 사회 속에서 부딪히고 닳아지는 과정에서 더욱 절실히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이다. 선생님 역시 그 누구와도 다를 바 없는 삶의 궤적을 거쳤던, 한낱 미숙한 어른에 불과했음을.


#이 이야기는 픽션입니다.

이전 08화공부 잘하던 사춘기 아들이 게임에만 빠져든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