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잘하던 사춘기 아들이 게임에만 빠져든다면

픽션|수술은 실패했다. 사춘기를 맞이한 나는 한층 더 망가져 버렸다.

by 문현웅

41(312). 312명 중 41등. 중학교에 입학해 처음 기록한 석차였다. 국민학교 시절엔 전교 20위권 안팎, 심지어 국영수사과만 추려 계산하면 교내 최상위권을 구가했던 성적이 불과 한 해 만에 급속도로 추락한 것이다. 괴롭힘이나 따돌림 때문은 아니었다. 그것은 내 유년기 전반에 고루 분포한 일종의 기본값일 뿐, 적어도 중학교 1학년 무렵을 기준으론 국민학교 때에 비해 별달리 격해지거나 빈번했다 말할 만한 바는 딱히 없었다.


나의 학업을 위협하는 새로운 변수는 미처 예상치 못한 곳에 도사리고 있었다. 중학교에 진학하며 처음으로 다루게 된 'OMR카드'가 바로 그것이었다. 나는 다한증이 굉장히 심했다. 주요한 발병 부위는 손바닥이었다. 펜을 오래 쥐고 있으면 OMR카드가 축축해질 정도로 땀이 배어 나오기 일쑤였다. 그러한 때에 물기를 먹는 것은 OMR카드 종이뿐만이 아니다. 그 위에 기록된 수성 사인펜 자국 또한 젖은 자국을 따라 번져 나가기 마련이었다.


국민학교에선 연필을 쓰는 것이 보통이다. 답안을 기록하다 멈춰서 손을 말려야 하는 상황은 예전엔 생각해 볼 여지조차 없었던 일이었다. 갑작스레 직면한 시련을 나는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다. 한동안 성적 하락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며 감내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부모님께선 아들이 질환 때문에 시험을 제대로 못 치는 상황을 마냥 방치하지 않으셨다. 고심 끝에 찾은 해결책은 수술이었다. 이른바 '흉부교감신경절제술'. 가슴 부근의 신경을 절단해 손바닥에 나는 땀을 멎게 하는 조치라 한다.


"다만, 보상성 다한증은 반드시 고려하셔야 합니다."


수술을 상담하는 자리에서, 표정이 근엄한 의사는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경고했다.


"보상성 다한증이요?"


"손으로 가는 신경을 끊었을 때, 신체 다른 부위에서 땀이 나는 부작용입니다. 주로 상반신입니다. 등이나 가슴 등등."


"부작용이 발생할 확률은 얼마나 되나요?"


"60% 정도입니다."


지금은 그러한 확률이 10% 정도로 떨어졌다 한다. 그러나 당시는 현재에 비해 의학 수준이 훨씬 미진했던 2000년대 초반이었다. 말이 좋아 60%지, 부작용은 확정적으로 발생할 것이라 생각하는 편이 차라리 나았다. 수술을 받는 쪽에선 그것을 감수할 각오와 다짐이 필요할 뿐이었다.


"부탁드립니다. 손바닥보다야 다른 부위가 낫겠지요."


그렇게 수술은 결정됐다.


그리고 부모님은 그 결정을, 평생에 걸쳐 후회하게 된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심한데......"


수술을 마치고 경과를 살피는 때, 의사는 내내 안색이 좋지 않았다. 일개 중학생인 나마저도 그러한 이유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실패의 규모는 예상 범위를 너무나도 벗어나는 수준이었다. 더워지면 등과 가슴과 겨드랑이에서 땀이 폭포처럼 쏟아지고, 매운 것을 먹으면 얼굴에서 땀이 흐르며, 인공조미료가 많이 든 음식을 접하면 두피에서 땀이 배어 나오고, 과일산이 함유된 새콤한 음식을 입에 대면 목덜미에 땀이 맺히는, 의학 사상 유례가 없는 기괴한 체질로 나는 변해 있었다. 더군다나 신경에 무슨 교란이 온 것인지 체온 조절 기능마저 상당한 수준으로 상실해 버렸다. 기온이 조금만 높아지면 상반신에서 땀이 주체할 수 없을 만큼 흐르고, 반대로 살짝 추워지는 순간엔 온몸이 통제가 불가할 정도로 떨려 오기 십상이었다.


"굉장히 실례되는 말입니다만, 혹시 허락해 주신다면, 자녀분의 사례를 논문에 인용해도 되겠습니까?"


어머니는 통곡했다. 나는 웃어 버렸다. 병원에서 겪을 수 있는 최악의 상황 중 하나는 자신의 이름이 붙은 병명이 생겨나는 것이라는데. 사람들 대부분은 평생에 어디 유머집에서나 흘긋 볼까 말까 한 일을 나는 이렇게 겪는구나. 한국 나이로 불과 14살을 지나고 있던 때였거늘, 중첩되는 인생의 무게는 이미 어지간한 드라마의 주인공을 가볍게 넘어섰다. 이성으론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삶의 고통이 깊게 박혀 들어오는 때엔 버티고 견딜 만한 다른 방법이 별달리 없다. 어쩌겠는가. 그저 웃을 수밖에.


"대신이라 말하긴 뭣하지만, 이 정도면 병역검사에선 4급이 나올 것입니다. 군대 염려는 하실 일이 없습니다."


그나마 남길 수 있었던 일말의 위로였을까, 혹은 당장의 난처함을 모면하려는 임기응변에 불과했을까. 그러한 약속을 의사는 내게 했다. 다만 그가 장담했던 바와는 달리 나는 훗날 병역판정검사에서 보기 좋게 3급을 얻어맞고 만다. 몸의 이상은 인정하지만 군 복무 자체는 현역으로 하라는 처분인, 별다른 장애 없는 사람이 기대할 수 있는 급수 중 가장 최악이라는 바로 그것이다. 실제로 3급은 1~2급에 비해 신체 조건이 열악할지언정 군생활에서 받을 수 있는 보호나 배려 따윈 무엇 하나 없다. 나 역시 제3보병사단 FEBA 지역에서 보병으로서 다른 장정들과 다를 바 없는 군복무를 수행했다. 신체 질환에 관련된 서류를 제출하지 않았던 것은 결코 아니다. 일단은 외관상 멀쩡히 붙어 있던 내 팔다리가 문제라면 문제였을 뿐.


아무튼 가느다란 희망을 걸어 보았던 수술마저 이렇게나 거창하게 실패해 버렸다. 내가 집 바깥에서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은 그때를 기점으로 대부분 상실했다. 반면 사람들 속에서 평범하게 살아가기 위해 경계하고 주의해야 할 요소들은 예전에 비해 몇 배는 족히 늘어나 버렸다. 가뜩이나 아이들과 사이가 좋지 못한 판에 강렬한 땀냄새를 대량으로 풍기기라도 하면 학급에서 사람 취급을 받을 길은 요원해질 것이 뻔하다. 입에 들어가는 것은 물론 일상적인 움직임 또한 땀샘을 자극하지 않도록 부단히 신경을 써야만 했다. 그럼에도 망가져 버린 체온 중추는 시도 때도 없이 필요 이상으로 땀을 배출하며 탈수 증세를 유발했다. 특히나 별 수 없이 땀에 젖는 여름이면 의식이 흩어지지 않도록 정신을 한층 더 바짝 조일 필요가 있었다.


이른바 질풍노도라는 사춘기 시기가 도래했으나 이성을 향한 관심은 조금도 내비치지 않았다. 자신이 없었다. 이토록 고장 난 몸뚱이로 연애를 바란다는 것 자체가 분에 넘은 욕심이라 생각됐다. 사실 우연이 겹치며 어느 누군가와 서로 간에 호감을 품게 되리라는, 자못 낙관적인 가정을 아예 해 보지도 않았던 것까진 아니다. 다만 그것을 키워 나가는 과정에서 내가 신체적으로 조심하고 또 유의해야 할 것들을 생각하면 짊어질 부담은 하릴없이 아득할 따름이었다. 오르지 못할 나무는, 입에 대지 못할 포도는 애초에 쳐다보지도 않는 편이 옳다. 그 시절의 나는 그것이 스스로 내릴 수 있는 최선의 판단이라 믿었다.


남들과 함께하는 자리에서 나는 바랄 만한 것이 무엇 하나 없었다. 타인과 마주치는 공간에선 살아 숨 쉬는 모든 순간이 피로할 뿐이었다. 온도를 자유로이 조절할 수 있는 내 방만이 유일한 위안이며 안식처였다. 그렇기에 배경이 되는 이유가 조금은 달라지긴 했을지언정, 국민학교 시절과 마찬가지로 학원은 가지 않았다. 아니, 가지 못했다. 벗이라고 부를 만한 것은 방에 가득한 책더미와 컴퓨터 한 대뿐이었다. 게임에 손을 대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수순일 수밖에 없던 것이다.


사람이 맑고 건전한 정신을 유지하며 살아가기 위해선, 가슴이 벅차 오르는 성취감을 이따금 느낄 수 있는, 노력에 상응하는 만큼의 산출값이 눈에 보이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내게 한때는 그것이 공부였다. 그러나 다한증 수술을 전후로 컨디션 난조에 따른 슬럼프를 맞이한 이상 학업 성과는 더 이상 위안이 될 수 없었다. 정성을 쏟는 만큼 그에 비례한 성과를 안겨 주는 것은 당시로선 게임뿐이었다. 시간을 투자할수록 게임 속 나는 강해졌다. 머리를 써서 승리를 하면 만족할 만한 보상을 반드시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나마도 실제 사람을 상대로 하는 멀티 플레이 게임은 아예 손을 대지 않았다. 타인과 맞서거나 소통하는 상황은 온라인에서도 피하고 싶었다. 아직은 인공지능 수준이 고만고만했던 컴퓨터를 압도하며 알량한 자존감을 누리는 것이 그 무렵의 유일한 낙이었다.


성적은 1학기 기말고사 즈음부턴 전교 60등을 오가는 선에 머물렀다. 수술을 권했던 부모님께선 사태의 책임을 통감했던 만큼 방황하는 아들을 애써 질책하지 않으셨다. 나는 그렇게 초등학교 6학년 때 소란스러운 사건이 터졌던 이래, 그리고 당시 같은 반이었던 아이들 대부분이 동일한 중학교로 진학하면서 자연스레 이어진, 또래 관계에서의 소외와 고독을 남몰래 즐기며 사춘기의 문턱을 넘어서고 있었다. 장래가 촉망받는 모범생으로 다시 돌아가는 반전의 서막은, 영영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시절이었다.



#이 이야기는 픽션입니다.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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