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션|갈등이 최고조에 이른 때, 나는 더 이상 참지 않았다
보다 넓고도 높은 세상을 나는 상시 갈망했다. 기실 그렇게까지 화려한 말로 포장할 거창한 바람은 아니었지만. 그저 동네 으슥한 곳에선 국민학교 고학년 학생이 나무젓가락에 끼운 담배를 피우고, 노는 애들이 교실에 놓인 나무 책상 위에 커터칼로 성인 사이트 주소를 새겨 놓아도 모두가 흐린 눈을 뜨고 외면하고 마는 답답한 촌구석을 서둘러 벗어나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서울을 동경했다. 전국 각지에서 우수한 인재가 쉼 없이 몰려든다는, 우리나라 제일가는 바로 그 도시. 그곳에서라면 과목마다 올림피아드 레벨의 수업을 듣고, 방과 후엔 총명한 또래들과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를 주제로 심도 깊은 토론을 벌일 수 있으리라 나는 믿었다. 그리고 담임으로부터 서울대를 갈 수 있을 듯하다는 평가를 받은 이래, 동경은 현실이 될 수 있다는 희망에 나는 이따금 가슴이 벅차올랐다.
하지만 그러한 소망을 되새길 때면 지금 발을 담그고 있는 현실이 한층 더 암담하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국민학교 6학년 교실에서 발표 도중 '뉘앙스'라는 표현을 썼다는 것이 어떻게 지독한 놀림거리가 될 수 있는지를 나는 도무지 이해하질 못했다. 중학교 입학을 목전에 둔 학생이 방학 숙제로 제출한 삼국사기 독후감에, 저자명을 김부식이 아닌 출판사 이름으로 써 놓고선 부끄러움을 모르는 꼴에도 아주 환멸이 났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주변과 잘 지내려는 노력을 그만두었다. 비단 1학년 시절부터 줄기차게 이어져 온 또래의 괴롭힘과 외면 때문만은 아니었다. 언젠가는 등지고 떠날 결심을 확고히 세운 이상, 나를 둘러싼 모든 공동체는 에너지와 열정을 쏟을 만한 의미를 더 이상 지닐 수 없었다. 대화의 주제와 수준을 또래에게 애써 맞추지 않았다. 수비수 머릿수나 채우기 위해 불러 내는 공놀이 자리에 들러리 서는 것 또한 거부했다. 수프 접시를 몸 바깥쪽으로 기울이며, 구운 갈치를 뒤집는 대신 등뼈를 들어내고 먹으며 교양인들의 일원으로 편입되는 훗날을 남몰래 꿈꾸었다. 그렇게 나는 서구권에서 흔히 묘사되는 'Nerd'에 한없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물론 학교 생활에서 맞닥뜨리는 고통과 불이익 또한 'Nerd' 무리가 흔히 겪는 그것과 흡사했다. 조 편성을 하는 때엔 마지막까지 뽑아 주는 곳이 없었다. 방학 과제로 제출해 전시된 조형물은 어느덧 내 것만 홀로 박살 나 뒹굴기 십상이었다. 학급에서 일어나 발표를 하는 때엔 어김없이,
"으, 재수 없어."
"목소리 x 같네."
"나대지 마, 죽을래 xx끼야?"
"죽닥쳐 x신아."
등등, 조롱하고 위협하는 목소리가 사방에서 나지막이 들려오곤 했다. 소풍이나 견학을 가면 마지못해 찍은 단체 사진에서 나는 늘 다른 아이들 무리와 한 발짝 떨어져 있었다. 잊을 만하면 실내화는 신발장을 벗어나 화단 어딘가를 뒹굴고 있었고, 책상과 교과서엔 내가 하지 않은 낙서가 빈자리마다 가득했다.
아무래도 좋았다. 융화할 생각을 완전히 버린 이후론, 나는 그러한 배척에 오히려 날을 바짝 세워 맞받아치기 시작했다. 조 편성을 하다 결국 남은 자투리 꼴로 장애아 등과 함께 묶여 버리면, 굳이 다른 아이들 힘을 빌리지 않고서 나 혼자 힘으로 과업을 모조리 수행해 발표까지 끝마쳐 버렸다. 나를 내쳐 버린 아이들보다 평가 점수를 월등히 높게 받아 내는 것은 최고의 복수 중 하나였다. 발표를 하는 때 야유가 들려오면 나는 오히려 글을 읽는 목소리를 높였다. 때론 '빈축'이나 '긍휼'처럼 연령대 기준으론 제법 어려운 단어를 보란 듯 태연히 사용했다. 그리고선 알아듣지 못하는 아이들을 향해 멸시하는 듯한 표정을 거리낌 없이 던졌다.
내가 기죽거나 굴종하는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던 만큼, 아니꼬움을 억누르지 못했던 일진 패거리가 학급엔 있었다. 한 번은 그들 중 하나가 계단을 오르는 내 뒤에서 시비를 걸었다.
"야, 너 거기 서."
멈춰 선 나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나보다 계단 아래 칸에 선 그 녀석은 내 머리채를 콱 잡았다.
"x나 나대네, x만한 새끼가."
나는 몸을 홱 돌리며 머리카락을 잡은 팔을 거세게 쳐냈다.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는지 움켜쥔 손아귀는 의외로 가볍게 풀렸다. 손이 완전히 떼어진 것을 느낀 순간, 나는 곧장 온 힘을 다해 녀석의 가슴팍을 걷어차 버렸다.
"어어?"
당황한 표정을 한 일진이 계단 밑으로 붕 날아가는 모습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쾅, 하는 둔탁한 소리가 뒤이어 울렸다. 일진이라 한들 기껏해야 열두셋에 불과한 어린 아이다. 급격한 상황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해 잠시 멍하던 녀석은, 오래지 않아 온몸으로 밀려드는 아픔을 이기지 못했는지 널브러진 자세 그대로 엉엉 울기 시작했다. 나는 잠시 경멸하는 눈으로 녀석을 보았다. 그리고는 몰려드는 아이들을 뒤로하고선 교실로 들어가 내 자리에 앉았다. 곧이어 일진 무리들이 내게로 다가왔다.
"야 이 시xx끼야, 빨리 일어나 사과해."
"뭘?"
"미친 xx가, 사람 쳐 놓고 뭘?"
나는 큰 소리로 비웃어 버렸다. 본심이 짙게 섞인 도발이었다.
"x신이냐, 니들은 언제 사람 치고서 사과했냐?"
바로 주먹이 날아왔다. 나도 참지 않았다. 옆에 있던 책을 잡아 휘두르며 모서리로 녀석의 얼굴을 찍어 버렸다. 격렬하게 맞서는 기세에 상대는 주춤했다. 하지만 그들 패거리는 여럿이었다. 내가 얻어맞는 구도로 바뀌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하지만 내 나름대로 믿는 구석은 있었다. 이 정도로 소란이 벌어지면 선생님들 귀에까지 이야기가 전해질 것은 명백하다. 더군다나 바로 옆은 교무실이다. 어차피 장기전이 될 수가 없다. 아니나 다를까, 앞문이 벌컥 열리는 동시에 선생님이 외치는 소리가 교실을 울렸다.
6학년 담임 앞에서 나는 꿀릴 것이 없었다. 내 책상이 상시 눈에 띄게 더럽혀져 있어도, 발표를 하는 때에 주변에서 대놓고 조롱과 비웃음을 날려도, 단체 활동에 앞서 조를 짜는 동안 누구 하나 나를 받으려는 눈치가 없어도, 아무 개입 없이 그저 손 놓고 있던 이가 다름 아닌 우리의 스승이셨다. 말마따나 몰랐다면 무능이고 알았다면 공범이다. 이제와 입바른 소리를 암만 늘어놓은들 한낱 애새끼인 내 귀에도 설득력 있게 다가올 턱이 있겠는가. 나는 똑바로 선 자세로 담임의 얼굴을 거침없이 쏘아보았다.
"친구를 발로 차면 되냐?"
"친구 아닌데요."
"말장난하지 말고, 죽거나 다쳤으면 어쩌려고 했어?"
"걔들이 저 차는 건 되고요?"
"언제?"
"학교 다니는 내내요."
"말을 했어야지!"
"선생님은 지금 말해서 말리러 왔고요?"
"너 자꾸 말장난할래?"
"장난은 지금 선생님이 하고 있고요, 저 새끼들이 절 찼을 때 선생님은 뭐 하고 있었냐고요!"
급기야 나는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담임은 얼굴을 잔뜩 구기며 오른손을 높이 들었다. 그 순간 나는 웃었다. 아아. 유쾌하다. 그래, 후려쳐라. 후려쳐 버려라. 오늘 나는 아주 끝장을 보리라. 오라, 달콤한 고통이여. 그 한 방에 귓방망이가 날아가고 청력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학교를 모조리 뒤엎어 버릴 파도를 이 자리에서 일으킬 수만 있다면, 나는 차라리 후회하지 않으리라.
담임의 오른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그리고는 이를 악물며 주먹을 꾹 쥐었다. 담임은 파르르 떨리는 손으로 내 목덜미를 쥐고는 교무실로 향했다. 나는 그가 끝내 이성을 놓아 버리지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했다.
"너, 친구를 계단에서 밀어 버린 게 얼마나 큰 문제인지..."
의자에 털썩 앉은 담임이 짐짓 화가 난 어조로 내뱉자, 나는 바로 말허리를 끊어 버렸다.
"신고할게요."
"뭐?"
"경찰한테 신고할 거라고요. 제가 이제까지 학교 생활 어떻게 해 왔는지 다 말하고, 저도 벌 받을 거 있으면 받고 그 대신 걔들도 벌 받게 할 거라고요."
담임은 표정이 굳어졌다. 내 아버지는 법원 공무원이다. 판사나 검사 같은 존재는 아니지만, 아무튼 법적인 문제가 발생하면 다른 사람보다는 훨씬 일이 복잡해질 가능성이 큰 직역이다. 담임인 그는 내 아버지의 직업을 모를 리 없다. 나 역시 그러한 사실을 나름대로 꿰고 있었던 만큼 쐐기를 박듯 한 마디를 덧붙였다.
"이젠, 부모님께도 다 말할 거예요."
지금까지의 평화는 그저 나의 인내 위에 기반했던 것임을, 그렇게 분명히 못 박아 두었다. 잠시 표정을 구기던 선생님은 5학년 시절 내 담임이었던 분을 불러왔다. 선생간의 짧은 대화가 이어졌고, 이내 그는 우리 반 아이 몇몇을 불러 모아 다른 교실로 이동했다. 대신 5학년 시절 담임이 내 앞으로 조용히 앉았다.
"미안해. 6학년이 돼서 이런 일이 처음 있었던 것은 아니지?"
"......"
"예전에 우리 반에 있었을 때에도 더 신경을 썼어야 하는데."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어느새 돋아나는 눈물만 뚝뚝 흘릴 뿐이었다.
"경찰이 오면 쟤들도 혼은 나겠지만. 너도 계단에서 친구를 밀어 버린 것은 그냥 넘어가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지?"
"네."
"...... 그리고 네가 경찰서에 가는 건, 부모님께서 직장 생활하시는 데에도 좋진 않다는 걸 알고 있지?"
"......"
"책 많이 읽어서 아는 것도 많잖니. 알고 있었을 것이라 생각해, 선생님은. 이번 일, 없던 걸로 하자. 사과하라고도 하지 않을 거야. 선생님이 약속할게. 앞으로는 애들이 너 못 건드리게 할게. 대신 그냥, 우리끼리만 알고 넘어가자. 어때?"
나의 두 손을 꼭 감싸 쥐며 선생님은 말했다. 나는 슬펐다. 미숙한 나였지만 눈치챌 수 있었다. 앞으로는 애들이 너를 못 건드리게 할 것이라는 말은, 그것도 쌍방간의 증언을 미처 듣지도 않은 상황에서 하는 그런 장담은, 그간 누가 나를 어떻게 건드리고 있었는지를 선생님들은 이미 속속들이 알고 있었기에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번 소동에서 표면적으로 드러났던 갈등은 내가 어떤 아이를 계단에서 날려 버렸다는 것뿐이다. 그것이 단순한 단발성 다툼이 아니라 그간 누적된 '건드림'의 반동이라는 결론은, 사건의 전말을 파악하고 있지 않다면 결코 쉽사리 구체적으로 추리할 수 없다.
서러웠다. 그들은 알면서도 왜 오랜 시간에 걸쳐 나를 그렇게 두어야만 했을까. 또다시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나는 고개를 조용히 끄덕이고 말았다. 어찌 됐건 강경한 폭로와 그에 따르는 공방전이 나와 내 가족에게 꼭 유리할 수만은 없다는 것은, 선생님 말마따나 나 역시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기에. 폭발했던 아드레날린도 이제는 차츰 가라앉는다. 나는 조금씩 지쳐 가고 있었다. 선생님은 웃으며 내 어깨를 감싸 주었다.
"그래, 이제 중학교에 갈 날도 얼마 남지 않았잖니. 아주 조금만 참고 지내면 되는 거니까."
6학년 담임이 그날 불러 모은 아이들과 무엇을 했는지는 나로선 알 도리가 없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적어도 그 이후로는 중학교에 진학하는 날까지, 내게 걷어 차인 녀석을 비롯한 모두가 별다른 해코지를 하진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나를 의식적으로 피하고 꺼리는 기색은 뚜렷했다. 하지만 내겐 오히려 좋을 일이었다. 어차피 스무 살이 되는 순간 촌락을 배회하는 짐승들과는 영원히 안녕이다. 나를 괴롭게 하던 인간 군상들과 어설픈 인연을 맺을 바엔, 아예 남겨둘 미련조차 없이 척을 져 버리는 편이 차라리 상쾌할 것이었다.
#이 이야기는 픽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