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션|의도는 좋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전에는 담임 선생님 생일이 다가오면 학급에서 돈을 모아 선물을 마련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적어도 내가 5학년 때까진 그런 풍습이 국민학교에 실재했다. 물론 선생님 쪽에서 미리 거절하는 경우도 아주 드물진 않았다. 우리 담임도 그러했다. 그럼에도 반장은 학급 아이들이 모인 자리에서 깜짝 선물 준비를 제안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건대 그는 일을 꽤 잘하는 아이였다. 반장은 선물 액수와 종류는 물론 크기까지 세세하게 제한을 두었다. 유달리 튀거나 폭주하며 위화감을 조성하는 아이가 나오지 않도록 제어하기 위한 조치였다. 그렇기에 각자가 준비하는 물건은 좋게 말해 상당한 수준으로 균일해졌고, 나쁘게 말하자면 꽤나 천편일률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는 역시나 사회성이 심각할 정도로 모자란 꼬맹이였다. 행사 기획자가 강경책을 동원해 통제를 시도하는 상황에선, 더군다나 이벤트를 주도하는 인물이 영향력도 있는 데다 향후로도 리더 역할을 유지할 인물이라면, 그것에 순순히 따르는 것이 평온한 학급 생활에 도움이 되리라는 것은 자명하다. 게다가 굳이 제약을 두는 명분이 모두가 납득하고 동감할 만큼 뚜렷하다면 더욱이나 그러하다. 그럼에도 나는 창의력을 발휘해 의외성 있는 선물을 마련하고 싶다는 치기 어린 욕심에 휘둘리고 말았다.
5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학기 초에 지나가듯 남편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특수교육에 종사하시는 분이라 했다. 그 지점에 나는 착안했다. 동화를 쓰자. 특수교육을 받는 학생들을 위한 내용으로. 소설가가 되고 싶은 나의 꿈과 다른 아이들을 향한 배려를 융합한 작품인 만큼, 교육자께 드리는 선물로는 그만한 것도 없으리라 믿었다.
학교 어딘가엔 컴퓨터가 몇 대 놓인 교실이 있었다. 교육기관에서 번듯한 컴퓨터실을 구성할 만한 성능의 제품들은 아니었지만, 사무용 프로그램을 실행하기엔 큰 무리가 없는 수준이었다. 나는 한동안 수업이 끝난 직후부터 그곳에 머무르며 집필에 전념했다. 서로 다른 동물들이 상호 간의 결점과 불완전한 부분을 메워 주며 공존하는 내용의 우화였다. 해가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때 시작된 작업은 노을마저 사그라지는 시간대에 마무리되기 일쑤였다. 매일같이 저물어 가는 논둑길을 홀로 걸어야 했지만 두려움은 없었다. 하염없이 상상을 거듭하며 쓰고 또 고치는 일련의 과정 내내 나는 벅차오르는 희열과 생동감에 젖어들 따름이었다.
그렇게 열흘이 흘렀다. 선생님의 생일날 당일엔 아침부터 교탁 위로 선물이 가득했다. 컵, 필기구, 화분, 손수건 등등. 나이에 비해 제법 카리스마가 있던 반장의 통제에 아이들이 잘 따라 준 덕인지, 놓인 물건은 전부가 여러 모로 고만고만한 것들이었다.
선물더미 사이로 내가 놓은 것은 플로피 디스크 한 장뿐이었다. 수수했던 만큼 오히려 더 눈에 띄었다. 교실에 들어온 선생님은, 깜짝 선물을 해 준 아이들에게 고마움과 감사를 표한 뒤, 탁자 위에 얹힌 디스크를 집어 들고서 물었다.
"혹시 이건 누가 가져온 거니?"
나는 손을 들며 말했다.
"제 선물이에요."
"어떤 게 들어 있니?"
"제가 동화를 썼어요. 선생님 남편 분께서 특수교육 선생님이라 하셔서, 가르치는 아이들한테 보여줄 수 있는 내용으로요."
"동화를? 어떻게?"
"제가 생각해서요. 소설로 썼어요."
선생님은 굉장히 놀란 표정이었다. 잠시 내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는가 싶더니, 이내 한 걸음 다가서며 나를 와락 안았다.
"선생님 진짜 감동했어, 살면서 받아 본 선물 중 이게 최고인 것 같아."
아마도 순간 터져 나온 진심이었을 것이다. 물론 숱한 학생들을 고르게 공정히 대해야 하는 교사로선 특정 학생을 편애하는 듯한 제스처를 보이지 않는 편이 옳다. 그럼에도 그러한 원칙을 순간 잊게 하는 강렬한 자극이 나의 선물엔 존재했던 모양이다. 선생님은 나를 안았던 손을 풀고 난 이후로도 여전히 조금은 들뜬 모습이었다. 컴퓨터 전원을 켜고 부팅을 하는 동안에도 담임은 내게 질문을 계속했다.
"쓰는 데 얼마나 걸렸니?"
"열흘 정도 걸렸던 것 같아요."
"혹시 점자로 돼 있니?"
"그렇게까진 못 했어요. 남편 분께서 바꿔 주셔야 할 것 같아요."
교실 내 대형 TV에 윈도우 첫 화면이 떠올랐다. 플로피 디스크가 철컥 소리를 내며 컴퓨터 본체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A 드라이브에 파일이 떠올랐다. 파일명은 내가 쓴 소설 제목 그대로다.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는 부끄러움을 느끼는 동시에, 무언가 뭉클한 것이 가슴팍을 한껏 채우는 감각이 전해졌다. 그리고는 선생님이 마우스를 파일 쪽으로 옮겨 실행 버튼을 누르는 순간.
"어?"
"아?"
오류 메시지가 출력됐다. 실행할 수 없는 파일이라는 것이었다. 때는 정부가 주도하는 데스크톱 컴퓨터 대중화 사업인, 이른바 '국민 PC' 프로젝트가 시작되기 이전 시대였다. 학생은커녕 선생님조차 대부분은 심각한 수준의 컴맹이었다. 우리 담임 역시 영문을 몰라 당황하는 표정이었다. 나라고 해서 상황을 제대로 파악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떤 식으로든 타개책을 모색하고 싶은 마음이 급했다. 떨리는 손을 내밀어 여전히 어리둥절한 선생님으로부터 마우스를 넘겨받았다.
사실 문제는 명확했다. 워드프로세서였다. 나는 삼성전자에서 개발했던 워드프로세서인 '훈민정음'을 활용해 글을 작성했다. 컴퓨터에 설치돼 있던 프로그램이 메모장을 제외하면 그것뿐이었기에. 하지만 교실에 마련된 컴퓨터에 존재하는 워드프로세서는 단 한 가지뿐이었다. 바로 '한글'이다. 그렇기에 그곳에선 플로피 디스크 안에 들어 있는 .gul 파일은 정체가 불분명한 데이터 덩어리로 인식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내게 그나마 존재했던 어설픈 지식은 오히려 독이 됐다. 마우스를 받은 내가 즉각 취한 조치는, 파일 이름 바꾸기 기능을 활용해 확장자를 .gul에서 .hwp로 변경한 것이었다. 한글이 설치된 컴퓨터에서는 .hwp 확장자만이 정상 작동한다는 것까진 어찌어찌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 문서 파일이나 .hwp로 바꾼다 한들 제대로 출력되진 않는다는 사실은 미처 깨닫지 못했다.
문서가 열리는 순간 스크린을 가득 채운 것은 박살 난 문자 더미였다. 형체조차 없이 무너진 텍스트 덩어리에선 원문의 흔적조차 추정할 수 없었다. 극도로 당황한 나는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 뒤에서 풋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이내 인위적인 웃음소리로 번져 나갔다. 여전히 같은 공간에 있던 선생님의 존재조차 아랑곳하지 않고서 던지는 노골적인 비웃음이었다. 스크린에 붙박은 시선을 들어 올릴 용기를 도무지 낼 수가 없었다. 교실을 메운 조소에 둘러 싸인 나는 아이들의 미소가, 그리고 표정이 두려웠다.
"얘들아, 왜 웃어?"
선생님은 교탁 위에 있던 종을 가볍게 치며 시선을 모았다. 아이들이 흘리던 소리가 잦아들자 선생님은 단호하게 말했다.
"저기 텍스트 있는 거 보이지? 지금은 뭔가 오류가 나서 깨져 보이지만, 분명 글을 썼으니까 저렇게 문자 자체는 있는 거야. 여기서는 못 봐도 집에 가서 보려고. 선생님은 이거 가져가서 남편한테 줄 거야. 선생님 남편은 컴퓨터 잘하니까 복구할 수 있을 거고."
그리고선 선생님은 내 쪽을 돌아보며 싱긋 웃었다.
"살면서 받아 본 선물 중 최고야. 여전히 그래. 고마워."
나는 그제야 비로소 고개를 들었다. 쏘아보는 눈길이 사방으로 가득했다. 반장 역시 달리 말은 없었으나 적잖이 화가 난 표정이었다. 분명 내 잘못이었다. 애초에 행사를 준비할 때부터 룰을 명확히 정한 것은, 빈부격차나 정성의 차이로 발생하는 위화감을 최대한 틀어막아 보려는 반장의 장절한 노력이었다. 심지어 그러한 의도를 내 쪽에서 알지 못한 것도 아니었다.
물론 엄밀히는 원칙 자체를 어긴 바는 없었다. 하지만 샛길로 둘러 가는 방식으로 선물 평준화의 궁극적인 목표를 박살 내 버린 것만큼은 사실이다. 그것은 나 역시 통렬하게 인정하는 바였으며, 사사로운 공명심의 발로였다는 점 또한 부정할 여지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미성숙하고도 이기적인 나를 향하는, 모두의 시선은 고울래야 고울 방도가 없었다.
하지만 선생님이 나의 작품을 기대해 주었던 순간, 그리고 내가 창작물을 제공한 것에 감사를 표해 주었던 순간. 그것들이 선사해 준 황홀한 감정만큼은 세차게 끼얹어진 부끄러움과 죄책감으로도 지워낼 수 없었다. 선생님이 남편에게 파일을 전해 확장자를 복구했는지, 더불어 내가 적은 우화를 실제 점자로 바꾸어서 아이들에게 선물해 주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어쩌면 내 생애 첫 소설은 결국 어딘가에서 의미 없는 데이터 무더기 신세를 벗어나지 못한 채 무심히 휘발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나는 소설을 쓰고 싶다, 소설을 써야만 하겠다는 생각을 마음속 한편으로 더욱 굳게 품었다. 소설로 인해 느낄 수 있었던 한 순간의 강렬한 고양감을 나는 결코 잊을 수 없기에. 그토록 벅찬 희열을 세상 모두와 고루 나눌 수 있는, 그러한 사람이 언젠가는 되고 싶었기에.
#이 이야기는 픽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