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수시 전형 지원 자격을 얻었습니다

픽션|하지만 소설가는 포기했습니다

by 문현웅

2003년 8월 7일. 만 16세 생일로부터 이틀이 지난날. 나는 충남 천안시 계성원 대강당 연단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은상 수상작, 수몰."


울려 퍼지는 박수 소리 속에서 나는 생각했다. 이것으로 자퇴라는 선택지는 완전히 막혔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수밖에 없다. 진정으로 서울대를 꿈꾼다면 내게 열린 길은 사실상 그 하나뿐이다.


나는 모의고사 점수가 애매했다. 물론 고등학교 1학년 시절 모의고사 성적표만으로 향후 입시를 가늠하기엔 여러모로 이른 감이 있었으나, 그럼에도 시험을 거듭할수록 선명해지는 약점이 내겐 분명히 존재했다.


일단 성향이 문과라는 것만큼은 명백했다. 언어와 사회탐구 영역 점수는 1학년 때부터 이미 평범한 3학년 수준을 넘어서 있었다. 실제로 3학년 모의고사를 가져다 풀어도 언어영역과 사회탐구 중 공통사회 영역에선 만점 내지 1~2문제를 틀리는 정도에 그쳤다.


문제는 영어와 수학이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학원을 다니지 않았던 나는 영어와 수학의 '킬러 문항'에 굉장히 취약한 편이었다. 물론 재능 있는 학생이라면 학원을 운운하는 것은 아무 의미 없는 불평일 따름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그 과목들에 언어나 사회탐구 영역만큼의 소질은 아무래도 갖추질 못했던 듯하다. 비록 교내에서야 최상위권 성적이라 한들, 전국 단위에서 경쟁하며 서울대를 노리려면 보강해야 할 구석이 너무나도 많았다. 달리 말해, 수능에서 만점 획득 내지는, 기껏해야 5~10점 만을 실점하며 명문대 주요 학과 자유이용권을 얻어가는, 서울대 하면 딱 떠오르는 오소독스한 학생 수준에는 한참이나 미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설령 자퇴를 결심하더라도 극복을 장담할 수 없는 결함이었다. 내가 살던 지역은 입시학원이 그리 발달하진 않았던 도시였다. 과외강사는 더욱이나 희박했다. 적잖이 빠듯했던 집안 살림살이 문제는 일단 제쳐 두더라도, 영어와 수학을 제대로 가르쳐줄 만한 사람 자체가 학교 바깥에는 애당초 드물었다는 것이다. 그다지 멋은 없는 이야기지만, 내가 결국 검정고시행을 보류하게 된 과정에는, 실상 부모님의 간곡한 설득보다도 오히려 그것이 훨씬 더 큰 요인으로 작용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날 은상을 받은 것을 계기로, 나의 입시 로드맵 판도는 지대한 변화를 겪게 됐다. 당시 대산청소년문학상 수상자에겐 서울대 특기자전형에 지원할 수 있는 자격이 자동으로 부여됐기 때문이었다. 물론 지원과 합격 여부는 철저히 별개였다. 그렇기에 실질적으로는 '대산청소년문학상을 받은 성적 우수자'여야만 서울대 입시에 도전할 수는 있었다. 하나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굉장히 희귀하고도 강력한 특혜였던 것만큼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다만 기괴했던 점은, 문학상임에도 불구하고 지원 가능 요건은 '서울대 인문대를 제외한 모든 인문계열 학과'였던 것이다. 즉, 대산청소년문학상을 활용해선 서울대 국문과에는 도전할 수 없었다. 그토록 기이한 제약을 둔 이유는 알지 못했으나, 어차피 내겐 크게 의미 있는 요소는 아니었다.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한 이래 줄곧 진학을 희망했던 학과는 다름 아닌 '사회학과'였기에.


무릇 사람은 결국엔 자신에게 가장 결핍된 것을 갈망하기 마련이다. 내게는 그것이 '사회'였다. 나는 인간으로서 실격인 존재였다.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십칠 년을 살아오는 내내 공동체란 것은 늘 나를 혐오하고 경멸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럼에도 나는 사람 속에서 살고 싶었다. 한때는 사람이 밉고 사람에 지쳐 그들을 피하고 멀리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언젠간 모두와 소통하고 화합하며 일상의 평범한 일원이 될 수 있기를 마음 깊은 곳에선 남몰래 소망했다. 세상은 나를 배척했지만, 나는 언제나 그들이고 싶었다. 사회성이 천부적으로 희박한 탓에 타인의 영역에 자연스레 섞여들 수 없었노라면. 좋다. 머리로라도 이해해 주리라. 그리고서 남은 생애는 엄연한 인간 군상 중 하나로서 살아가 보리라. 그러한 연유로 나는 사람과 더불어 그들이 이루는 제도와 구조를 연구하는, 사회학과를 동경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자퇴를 완전히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어떠한지를 잘 알지 못하나, 당시로선 수시를 차질 없이 지원하려면 학교생활기록부에 이름을 남겨 둘 필요가 있었다. 검정고시나 그에 기반한 비교내신을 수시에서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굉장히 많았기 때문이었다. 정시 성적이 불안한 만큼, 수시는 반드시 도전해야 한다. 그렇다면 좋건 싫건 학교엔 남아야 한다. 내가 얼마나 외롭든, 얼마나 괴로웁든. 그나마 희망의 불씨가 늘어난 만큼, 종전에 비해선 조악한 삶을 견디게 하는 마음의 버팀목이 조금씩 단단해지는 것은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서울대학교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제법 오랜 꿈이었던 소설가 등단은, 정작 대산청소년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아주 접어 버리게 됐다. 상을 받고 연단을 내려오는 때, 다른 사람들 눈을 피해 나를 불러 세우는 심사위원이 있었다. 그리고는 내게 물었다.


"네가 백일장 때 늑대를 애완동물로 키우는 이야기 쓴 학생이니?"


"네."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당시 대산청소년문학상은 출품작으로만 최종 수상 서열을 결정하지 않았다. 예심에서 시와 소설 부문 수상 후보자를 우선 60명 선발하고, 그들을 불러 모아 백일장을 실시해 역량을 평가하는 구조였다. 서울대는 그렇다 치더라도 주요 대학 문예창작과에선 대산청소년문학상 수상이 사실상 합격 티켓과 동일시됐던 시절인 만큼, 학원은 물론 대필까지 성행해 출품작만으로는 제 실력을 도저히 판별할 수 없었던 사연이다. 훗날 사회인이 된 이후 들었던 이야기지만, 대회가 열릴 때마다 특정 학원이나 문인들이 자신들의 제자를 왜 뽑지 않았냐며 대산문화재단에 항의전화를 해 대는 통에, 객관적인 전형을 궁리할 유인은 더욱이나 차고도 넘쳤다 한다. 실제로 우리 기수에도 백일장 결과 대필 출품 의심을 받아 심사 대상에서 원천 제외된 학생이 둘이나 있었으니, 시스템을 도입한 명분은 물론 효용까지도 충분하다 말하기에 부족함은 없었다.


아무튼 그러한 사정으로 금번 대회에서도 백일장은 열렸고, 제시된 소설부문 주제는 '애완동물'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와중에 애완동물로 늑대를 키우는 노인 이야기를 써서 제출해 버렸던 것이다. 보다 정확히는, 어미 잃은 늑대를 거두어 기르는 노인이 있었는데, 동네 사람들은 암만 가축으로 키웠다 해도 야생의 동물은 마을을 위협하는 화근이 될 것이라 지레짐작해, 누명을 씌워 가며 그것을 죽여 없앴다는 내용이었다.


"특이한 주제를 떠올려서 잘 써내긴 했는데 말이다. 네 재능은 딱 여기서 상 받을 정도인 것 같아. 소설로 밥 먹고 살 정도는 아니고. 그러니 소설가는 안 하는 편이 좋겠어."


그뿐이었다. 다른 설명은 없었다. 이상했던 것은, 나 역시 의외일 정도로 그의 말을 순순히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그렇구나. 나는 소설에 재능이 없구나. 그랬다간 굶겠구나. 먹고살려면 다른 것을 해야 할 사람이구나. 현역 소설가께서 해 주는 조언이니 그것이 옳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미련이랄 것을 조금도 보이질 않았다. 그저 묵묵히 끄덕이고는 소설가 이외의 진로를 새로이 고민하며 모색했던 것이다.



#이 이야기는 픽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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