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학생회장이 되어버린 슬픔

픽션|견뎌 내야만 했다, 입시를 위해서라면

by 문현웅

상상할 수 있겠는가. 동년배에게 사랑받는 경험 없이 책상물림 외톨이로 자라온 학생이, 하루아침에 고등학교 재학생 1000여 명을 대표하는 총학생회장 자리에 오르게 되는 상황을. 그것은 인간 승리와 같은 미담 계열은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내게 있어선 그마저도 학창 시절의 넌덜머리나는 참혹한 기억의 일부일 따름이다.


나는 2학년이 되던 해에 이변 없이 문과를 선택했다. 성적이 높았던 동기 몇몇이 이과로 향한 덕에 전교 등수는 자연스레 차석으로 뛰어올랐다. 이로서 나는 자연스레 진학 관련해서는 명실공히 학년 최고 수준의 특별관리대상에 선정될 수밖에 없었다. 교내에서 입시 경험이 가장 풍부한 선생님들은 머리를 맞대고서 나를 서울대로 보내기 위한 전략을 구상했다. 그러한 결과 도출된 답안지는 다름 아닌 '총학생회장 출마'였다.


"싫습니다. 당선될 리도 없고, 맡아도 잘해 나갈 자신도 없습니다."


"단독 출마하게 해 줄게. 어차피 하는 일도 별로 없어."


"제가 진짜로, 잘하지 못할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생각해 봐라."


진학을 담당했던 선생님께선 답답하다는 듯, 적잖이 간곡한 어조로 설득을 시작했다.


"너, 사회과학대 가고 싶은 거잖아? 사회과학대에 특기자 전형을 지원하는데 소설로 상 받은 것만 가지고서는 경쟁력이 있겠어, 없겠어?"


"......"


"그런데 총학생회장 경력은 특기자전형에서 리더십 분야 지원 자격이 되잖아. 네가 이걸 가져가면 남들은 하나 채우기도 힘든 특기자전형 조건을 두 개나 가져가게 되는 거지?"


"...... 네."


"학교 입장에서도 그래. 너 말고 다른 애가 학생회장이 된다 쳐 보자. 학생회장 경력 하나만으론 그렇게 특별하다고 말하기 어렵지. 학교마다 한 명씩은 있으니까. 근데 너도 문학상만 가지고서는 사회과학대가 애매해. 그러면 학생 둘이 애매하게 서울대에 지원하게 되는 것이겠네? 그렇게 확률 낮은 둘을 보내는 편이 나을 것 같니, 아니면 한 명한테 몰아주고서 합격 가능성을 확실하게 높이는 편이 낫겠니?"


차마 대답을 하지 못하는 내게, 선생님은 조곤조곤한 말투로 설명을 이었다.


"학교 입장이라고는 이야기했지만, 아무튼 너로서도 좋은 것이지 않겠니. 서울대 갈 확률을 엄청 높여 주겠다는데 뭘 자꾸 빼려고 그래."


사실 그때부터도 나는 이미 알고는 있었다. 선생님이 태연히 행하는 거짓말 중 하나를. 그것은 바로, 학생회장은 하는 일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학교마다 학생회 운영 방침은 조금씩 다르기 마련이다. 나의 모교는 주어지는 자치권이 거의 없는 상명하복식 권위주의 체제였다. 달리 말하자면, 학생이 주체적으로 무언가를 해낼 여지는 거의 없이, 위에서 내려오는 업무를 받아 수동적으로 처리하는 조직으로서 기능할 뿐이었다. 그렇게 떠맡는 일 대부분은 자질구레하면서도 번잡하기 짝이 없는, 그러면서도 분량 측면에선 결코 적지만도 않은, 수능을 준비하는 학생 입장에선 솔직히 무겁고도 거추장스러운 잡무 덩어리에 불과했다.


그것들은 이를테면 다음과 같다. 각종 행사 때 학생 대표로서 원고를 쓰고 낭독하기, 장학사나 외부 손님 등 바깥에서 오는 귀빈들 접대, 등하교 혹은 급식 시간대에 질서 유지, 축제나 체육대회 등 단체활동 기획 및 준비, 선배 수능 응원 준비 및 진행, 학생 민원 처리, 졸업 앨범 촬영 보조 등. 학업에 도움 될 만한 것은 무엇 하나 없는 허드렛일의 총체였다. 그렇기에 입시에 집중해야 할 학생에겐 총학생회장 자리를 맡기지 않는 것이 일종의 관례였고, 실제로도 선대 학생회장들은 서울대에 진학한 사례가 극히 드물었다. 내가 선생님들로부터 학생회장 출마 권유를 받았던 2004년만 해도 전대와 전전대 학생회장은 모두가 전남대에 진학해 있었다. 물론 의대나 치대와 같은 특수한 학과 소속은 전혀 아니었다.


이쯤 되면 그 누구라도 익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내 모교의 총학생회장 자리는 정시로 서울대를 노릴 수 있는 학생에겐 결코 허락되는 곳이 아니었다는 것을. 인망이나 리더십, 기획력과는 전혀 상관없는 문제였다. 학업에 전념해야 마땅할 인물이 거기에 앉아선 곤란했을 뿐이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1학년때 부회장을 맡았던 동급생은 친구들 사이에서 평판이 좋고 카리스마도 탁월했음에도 성적마저 서울대를 바라볼 정도로 우수했다. 부회장이 가장 유력한 차년도 학생회장 후보군이라는 것은 어느 학교에서나 통하는 상식이다. 입시 효율 극대화를 위해선 상식은 박살 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특기자전형 티켓은 일찍이 거머쥐었으나 모의고사 성적은 다소 애매했던 나는, 그러한 재편 시나리오에 감동스러울 정도로 적확히 들어맞는 장기말이었을 따름이었다.


물론 내가 끝까지 저항할 수 없으리라는 사실은 자명했다. 서울대 하나만 바라보고 학교에 남았는데, 서울대 진학 가능성을 한층 더 높여줄 패를 감히 거절할 도리가 있었겠는가. 그것도 학교에서 사실상 떠먹여 주겠노라고 회유를 하는 상황에서. 나는 결국엔 출마를 결정했고, 선생님들이 약속한 대로 선거는 단독후보로 진행됐다. 결과는 60% 찬성. 당선은 당선이었으나 단독 후보로서는 유례가 없을 정도로 낮은 지지율 기록이었다. 그나마도 러닝메이트로 함께했던 1학년 부학생회장 후보가 두루 신망을 얻은 유능한 학생이었기에, 홀로 출마해 놓고도 지지를 절반조차 얻지 못해 낙선해 버리는 치욕만은 간신히 피했던 것이리라 나는 믿는다.


/Unsplash


나는 그렇게 총학생회장이 됐다. 12년에 걸친 의무교육 시절 동안 거칠었던 인간관계에서 기인하던 나의 정신적인 괴로움은, 그것으로 인하여 비로소 절정에 달하기에 이른다. 본인 앞가림도 미끈하게 해내질 못했던 풋내 나는 어린애가 교권과 학생 집단 간의 미묘한 알력을 능숙하게 조율해 낼 리는 만무했다. 사실 자치권이 없는 학생회 주제에 학생을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일 수밖에 없긴 했다. 그러나 여타 학생들 입장에선 그러한 학생회의 사정과 고충을 이해해 줄 이유도 의무도 없기는 매한가지였다.


나는 자연스레 학생들로부터 교무실의 개 취급을 당하게 됐다. 적어도 같은 학년에선 나를 좋게 보는 학생 숫자가 열 손가락 안에도 들지 못하리라 확신하는 때도 있었다. 한 번은 자리를 비우고 돌아왔더니, 교과서와 독서대에 유성펜으로 욕설이 가득 적혀 있는, 드라마나 웹툰에나 나올 법한 잊지 못할 경험을 선사받기까지 했다. 나의 적은 그것을 끄적인 당사자뿐만이 아니다. 내 자리 주변에서 그 광경을 보고도 방관했던 아이들까지 전부가 사실상의 공범이었지 않았겠는가. 나는 외로웠다. 그리고 두려웠다.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내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공포의 연속이었다.


그러한 와중에도 어떻게든 제정신을 붙들고서 나아갈 수 있었던 유일한 동력은, 서울대 특기자전형에 거는 막연한 기대일 따름이었다. 아무래도 좋다. 이 또한 지나갈 것이다. 올해만 넘기면, 한 해만 견디면, 장장 12년에 걸쳐 나에게 괴로움을 주었던 그 모든 것들과 이제는 작별할 수 있다. 그러한 희망을 나는 믿고서, 생애를 좌우하는 결전의 무대가 될 2005년을 누구보다도 간절한 마음으로 맞이했던 것이다.



#이 이야기는 픽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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