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심으로 인해 녹아내린, 12년에 걸친 꿈

픽션|면접을 그렇게 임해서는 안 됐다

by 문현웅

좋다. 나의 생을 오래도록 점철했던, 우중충한 학교폭력 이야기는 할 만큼 했다. 슬슬 이쯤에서 집어치우도록 하자. 그토록 비루하게 늘어놓았던 심신을 유린하는 숱한 고난과 오욕 속에서도, 아무튼 나는 서울대에 수시 특기자 전형으로 도전할 권리를 부여하는 티켓을 어떻게든 손에 넣고야 말았다. 이쯤이면 그래도, 비록 평생을 이 모양 이 꼬락서니로 살아온 나라고는 해도, 운명이란 것에 조금이라도 감사하는 마음을 품어줄 때가 되긴 했다.


아닌 말로 본인 이름이 적힌 서울대 최종면접 응시 안내장을 수령할 수 있기만 한다면, 장장 12년에 걸친 나의 혐오스러운 학창 시절보다 오히려 더한 수난과 치욕을 당하더라도, 가뿐히 웃어 주며 감내하겠다는 사람이야 늦가을 밤하늘의 별무리 개수쯤은 아득히 넘어서 버리지 않겠는가. 밟아 온 지난한 과정이야 어떠했건 의무교육 기간 동안에 그것을 얻어냈다는 것은 결코 무시 못할 거대한 운명의 특권이다.


물론 알고는 있다. 합격자를 비정하는 마지막 문턱을 넘지 못한다면 그 모두가 결국엔 의미 없는 이야기일 뿐이라는 것을. 하지만 어쨌든 윌리 웡카의 초콜릿 공장으로 가는 황금 티켓을 거머쥔 것만도 사람으로서 염치라는 것이 있다면 충분히 고마워할 행운이니. 그곳에서 분발해 최후의 1인이 되느냐 마느냐는 그저 오롯이 내게 달린 문제일 따름.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실패했다.


오만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러했다. 대산청소년문학상에 총학생회장을 더한 경력. 이 정도면 따 놓은 당상까지는 아니더라도 승률은 상당할 것이라 예단하고 말았다. 실제로 서류전형을 무난히 통과하며 교만은 나의 내면에서 한층 더 부풀어 올랐다. 평생을 셋으로 나눠 그중 둘은 자존감이 바닥인 채로 살았으니, 아주 가끔은 방자하더라도 설사 만인의 지탄을 받을 중차대한 흠결까지야 되겠느냐만은, 그것도 때와 장소를 가려야 하는 법. 적어도 그 타이밍은 옳지 못했다.


더군다나 나는 작문에 자신이 있다고 지나치게 믿어 버렸다. 비단 스스로의 자평만은 아니었다. 학교에선 논술전형이 존재하는 대학에 응시할 가능성이 큰 학생들을 모아 주기적으로 모의시험을 보았고, 나는 거기에서 번번이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언어영역은 내신과 모의고사 전부가 거의 상시 만점을 달렸고, 문학은 아예 대외에서 큰 상을 받기까지 했다. 논술전형은 나를 위한 무대일 것이라 기대했다.


그리하여 간과한 것이 무엇이었겠는가. 그것은 다름 아닌 면접이었다. 당대 또 다른 주요한 수시 전형이었던 지역균형전형과는 달리, 특기자 전형은 매 단계가 제로베이스에서 다시 시작한다. 100점 만점에 논술 50점, 면접 50점으로. 지역균형전형은 내신점수만 독보적으로 크고 아름답기만 하다면 막말로 면접관 앞에서 애국가만 열창한들 합격할 가능성은 존재했지만, 특기자 전형은 문턱을 하나 넘어설 때마다 맞대결을 번번이 새로이 시작한다는 심정으로 전력투구를 해야 옳았던 것이다. 인과의 관계에서 바람직한 성과를 내 본 경험이 희박한, 커뮤니케이션 스킬에 다소간의 장애가 있는 미성년자라면 더더욱이나.


/Unsplash


그럼에도 나는 대단한 준비 없이 면접실 안으로 들어섰고, 그리하여 면접관을 맡은 교수의 첫 질문부터 여유로운 대응에 실패하고는 반쯤 패닉에 빠지고야 말았다.


"먹을 텐가?"


교수가 가리키는 끝엔 사탕 바구니가 있었다. 먹어야 합격인가 사양이 정답인가. 쓸데없는 상념에 초장부터 시간은 부질없이 허비됐다.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나는 사탕을 한 줌 쥐고선 어정쩡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면접관은 2인 1조였다. 다른 교수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만 앉으세요."


그때까지도 나는 생각하고 있었다. 먹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잡념은 원활한 사고의 적. 지나간 일은 빠르게 떨치고서 생각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었다. 나는 그것이 부족했다. 요령의 관점에서건, 경험 측면에서건. 그리고 이어지는 상황에의 대처는 더욱 나빴다.


"사회과학대를 지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사회학과를 전공하고 싶어서입니다."


"사회학과?"


"네. 저는 늘 사회의 구조와 사람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상호작용을 탐구하길 원했으며, 그렇기에 그것을 가장 깊이 배울 수 있는 학문인 사회학을 전공하길 희망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나는 그 질문을 받았을 때 아마도 조금은 망설였던 것 같다. 아무튼 대답은 했다. 다소, 어쩌면 필요 이상으로 솔직하게.


"저는 교과목으로서의 사회탐구는 잘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사회를 이해하고 있다는 느낌은 아니었습니다. 그 괴리감을 사회학을 전공하며 해소하고 싶었습니다."


교수님 중 한 분이 웃었다. 그리고는 말했다.


"학생. 서울대는 우리 국민 모두에게 기여할 수 있는 인재를 교육하는 학교라네."


짤막한 지적이었지만, 나 역시 퍼뜩 깨달을 수 있었다. 속된 말로 개념이 없었던 것이다. 개인적인 상념과 고민은 혼자서 해소할 일이다. 학교가 개개인의 그것까지 고려해 줄 이유는 없다. 그렇기에 설령 그러한 마음을 품고서 상급학교 진학을 희망하는 사람이라도 면접장에서 내세울 만한 이야기는 전혀 아니었다. 모의면접이라도 했다면, 사전에 진지하게 연습이라도 몇 차례 해 보았다면, 필터링이 그렇게까지 어렵지는 않았을 만한 실수다. 게으르고도 불손했다. 나는 그러했다.


"국문과를 쓸 수 있었다면 국문과를 썼을 텐가?"


나의 후회와 한탄 따위는 아랑곳하는 바 없이 면접은 계속됐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그래도 사회학과를 지망했을 것입니다."


"왜지?"


"현직 작가분께 너는 소설가가 될 재능이 아니라는 평을 들었습니다."


면접관들은 웃었다. 그들의 웃음이 합격에 반드시 좋은 징조일 수는 없다. 나는 특기자 전형 면접 덕분에 그것을 일찍이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럼 혹시나 소설가가 될 재능이라는 소리를 들었으면 국문과를 갔을 것이고?"


"......"


답변이 궁색했다. 몹시도 궁색했다. 상대가 서울대 교수였기에 발휘했던 날카로움인가. 아니면 그 시점엔 고졸조차 되지 못했던 풋내 나는 애송이였던 나의 허술함이었을까. 준비가 부족한 구석을 면접관들은 절묘하게 색출해 치명타를 연속으로 꽂아 넣었다. 문답이 이어지는 내내 스스로도 납득할 만한 답변은 손에 꼽을 정도를 밑돌았다. 어느덧 나는 종말을 예감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자네는 대관절 사회학을 전공하면 무엇을 하고 싶고, 무엇이 되고 싶은 겐가? 학생 개인이 혼자 품었던 궁금증을 해소하고서 개운해지겠다는 것만으로는 우리가 지향하는 교육 목적과 맞진 않을 텐데."


"그건......"


나는 잠시 주저하다 답했다.


"학자가 되고 싶습니다. 제가 하였던 고민을, 그리고 그 답안을 확장해 세상을 조금 더 나은 곳으로 바꾸는 데 기여하고 싶습니다."


"흐음."


짧은 시간 종이 위로 볼펜 스치는 소리만이 울렸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무어라 답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렇게 면접은 끝을 맺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나는 당연하다는 듯 불합격을 통보받는다. 큰 일을 앞둔 사람이라면 누구나 준비랄 것이 필요하다. 나는 그것에 너무나도 소홀했다. 12년에 걸친 설움을 한 방에 뒤집을 수 있었던 절호의 패를 스스로 방심해 놓인 버린 것이다.


누구 말마따나 그저 인생의 좋은 경험이려니 하고 넘기기엔 찌꺼기로 남은 회한이 너무나도 무거웠다. 혹시라도 저것이 서울대에 떡하니 합격해 버리진 않을까 노심초사하던 주변의, 내 귀에 필히 닿기를 희망하며 부지런히 흘려 대는 안도 섞인 이죽거림은 수능 이후의 등교를 한층 더 힘들게 했다. 결국 나는 학교 바깥에서 정시전형을 준비한다는 명분으로 선생님과의 합의하에 교실을 향한 발길을 끊었다. 그리고는 주황색 천막을 두른 이름 모를 포장마차에서 매일을 부질없이 소진했다. 수능 직전에 백일주를 핑계로 갓 배웠던 음주만이 그 시기의 나를 달래는 유일한 위로였다.



#이 이야기는 픽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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